음악이 서서히 잦아들 때가 있다. 마지막 음이 공기 속으로 희미하게 흩어지고, 먹먹한 정적이 찾아온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그 여운은 아직 우리의 귓바퀴와 심장 사이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한 시대의 종언도 이와 같다. 지난 며칠은 마치 신(神)이 자신의 오래된 서재에서 한 시대의 책장을 통째로 뜯어낸 시간과도 같았다. 잘 짜인 각본처럼, 세 거장의 부고가 연이어 들려왔고, 세상은 거대한 커튼콜을 받은 듯 잠시 침묵했다.
헤비메탈의 무대에서 박쥐를 물어뜯던 '어둠의 왕자' 오지 오스본이 파킨슨병과의 긴 싸움 끝에 눈을 감았다. 그의 포효는 단순한 음악이 아니었다. 그것은 기성세대의 위선에 맞서는 청춘의 분노였고, 제도권의 질서에 편입되길 거부하는 야성의 외침이었다. 그의 죽음으로 록 음악이 품고 있던 순수한 반항의 시절이 막을 내리자마자, 노란색과 붉은색으로 세상을 물들이던 헐크 호건마저 심장마비로 쓰러졌다는 소식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티셔츠를 찢고 포효하며 절대 선의 힘을 과시하던 그의 ‘헐크매니아’는 80년대의 불안과 냉전의 공포를 이겨내게 한 유치하지만 강력한 주문이었다. 그는 우리에게 ‘미국적인 영웅’의 가장 원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척 멘지오네가 고향에서 조용히 영면에 들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트럼펫을 빼닮았지만 화려함 보다 부드러움에 강점이 있는 그의 플루겔호른 소리는 언제나 해질녘의 벨벳 같았다. 그의 ‘Feels So Good’은 팍팍했던 하루의 끝에, 우리가 기어코 찾아내고 싶었던 부드러운 위안 그 자체였다. 그의 마지막 숨결과 함께, 재즈가 카페의 배경음악으로 전락하기 전, 대중의 마음을 어루만지던 낭만의 세월이 우리에게서 멀어졌다.
▲ 그래픽 : 박주현
분노의 영웅, 선의의 영웅, 위로의 영웅. 이 세 명의 동시 퇴장은 우연일까. 아마도 이것은 아날로그 시대가 디지털 시대에게 보내는 마지막 인사이자, 낭만이 효율에게, 신화가 현실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거대한 전환의 신호탄일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전설적인 스타들의 죽음을 가십으로 소비하고, 곧 새로운 아이콘을 찾아 나설 것이다. 그것이 이 망각을 강요하는 시대의 생리다.
이 거대하고 도도한 망각의 강물 한가운데서, 한 남자가 홀로 조각배를 띄운 채 역류를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매일 아내의 무덤을 찾는다는 구준엽의 소식. 그의 이야기가 내 심장의 어느 부분을 이토록 저릿하게 만드는 것일까.
그의 발걸음이 유독 안타까운 까닭은. 전화기 속에서, 혹은 낡은 수첩 한구석에서 간직하고 있던 그 불확실한 번호하나를 간직하며 20년을 버틴 사연 때문만은 아니다. 기적처럼 그 신호가 다시 연결되었을 때, 멈췄던 시간은 비로소 흐르기 시작했으리라. 그러나 신은 어렵게 되찾은 사랑에 긴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의 발걸음은 단순히 무덤을 향한 길이 아닐 것이다.
▲ 그래픽 : 박주현
그것은 하나의 세계를 향한 순례길아닐까?. 그녀가 존재함으로써 완성되었던, 오직 두 사람만이 알고 있던 그 고유한 세계. 그의 매일 같은 방문은 슬픔의 과시나 자기 연민의 탐닉이 아니다. 그것은 소멸에 저항하는 가장 적극적이고 가장 필사적인 건축 행위다. 그는 어쩌면 무덤가의 잡초를 뽑는 것이 아니라, 기억의 정원에 돋아나는 망각의 잡초를 매일같이 뽑아내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봉분 위로 스치는 바람결에서 그녀의 웃음소리를 듣고, 따스한 햇살에서 그녀의 온기를 느끼며, 그는 매일 그녀의 세계를 재건한다.
이 행위는 얼마나 비효율적이고, 비생산적이며, 비이성적인가. 심리상담사들은 ‘애도 5단계’를 들먹이며 그가 ‘수용’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할지 모른다. 경제학자들은 그의 시간이 창출할 수 있는 기회비용을 계산하며 혀를 찰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사랑과 기억을 효율성의 잣대로 재단하려는 시도만큼 오만한 것이 또 있을까. 그의 순례는, 이 세상의 모든 효율과 합리성에 맞서는 가장 위대한 비합리다.
세 영웅의 죽음이 한 시대의 물리적 ‘종언’을 고하는 마침표라면, 구준엽의 행보는 기억을 통해 그 시대에 영원이라는 ‘숨’을 불어넣으려는 의지적 투쟁이다. 그는 자신의 슬픔을 통해, 오지 오스본의 음악이, 헐크 호건의 환호가, 척 멘지오네의 선율이 한때 우리에게 주었던 그 모든 것들의 가치를 증명하고 있다. 그것들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살아 숨 쉴 수 있다고.
그의 발자국은 흙 위에 찍히는 것이 아니라, 시간 위에 새겨지는 문장이다. ‘나는 그녀를 잊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만든 세계를 포기하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이곳에 있다.’ 그의 사랑은 그녀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죽음을 통해, 이 망각의 시대에 맞서는 가장 강력하고 아름다운 형태로 진화했다. 어떤 세계는, 누군가 기억하는 한,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