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 한-튀르키예 공동언론발표 (앙카라=연합뉴스)
국가 지도자의 말은 그 자체로 전략이자 메시지다. 적대국과 총구를 맞대고 있는 분단국가의 대통령이 공개석상에서 내뱉는 안보 관련 발언은 천금의 무게를 지녀야 한다. 그러나 지난 24일 해외 기자 간담회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보여준 인식은 가벼움을 넘어 참담한 수준이었다. 그는 50년간 대북 심리전의 핵심이었던 대북 방송을 "바보짓"이라 폄하하며, "요즘 세상에 인터넷 뒤지면 다 나오는데 왜 돈을 쓰냐"고 반문했다.
이 발언은 단순한 실언(失言)으로 치부할 수 없다. 이는 국군통수권자의 대북관과 현실 인식 체계가 근본적으로 고장 나 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다. 전 세계에서 주민의 인터넷 접속을 물리적으로, 법적으로 완벽하게 차단하고 있는 나라는 북한이 유일하다. 평양의 특권층조차 내부망인 '광명'에 갇혀 있고, 일반 주민은 스마트폰이 있어도 외부와 단절된 '디지털 감옥'에 수감되어 있다. 이런 기초적인 사실조차 모르는 대통령이 지난 반년 간 대한민국의 안보 정책을 지휘해 왔다는 사실은 공포에 가깝다.
대북 방송은 우리가 보유한 가장 강력한 비대칭 전력 중 하나다. 핵무기가 물리적 타격 수단이라면, 대북 방송은 북한 체제의 아킬레스건인 '거짓'을 타격하는 심리전의 핵폭탄이다. 백번 양보해 대통령의 착각대로 북한 주민이 자유롭게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었다면, 김정은 정권은 애저녁에 붕괴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을 것이다. 정보의 자유로운 유통과 3대 세습 독재는 결코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정은 정권이 왜 '반동사상배격법'을 만들어 한국 드라마를 본 10대들을 공개 처형까지 하겠는가. 외부의 진실이 유입되는 순간, 3대 세습 독재라는 허구의 성이 무너질 것임을 그들은 뼈저리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적이 가장 두려워하는 이 급소(急所)를, 우리 대통령은 "돈이 든다"는 천박한 장사꾼의 논리로 스스로 제거해 버렸다. 그리고는 대답이라고 내놓은 말이 "인터넷 뒤지면 다 나온다"는, 이렇게 현실파악도 안 된 사람에게 안보를 맡겨도 되나 싶은 두려움만 생기는 발언이다.
이는 마치 전방의 철책선을 걷어내며 "요즘 세상에 CCTV로 찍으면 다 나오는데 굳이 밤새워 경계 근무를 설 필요가 있느냐"고 묻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대통령의 논리대로라면 6.25 전쟁 당시 적의 전의를 꺾었던 '삐라'도, 냉전 시대 철의 장막을 녹여버린 '자유 유럽 방송'의 전파도 모두 예산 낭비에 불과했을 것이다. 역사를 모르는 지도자는 실수를 반복하지만, 현실을 모르는 지도자는 국가를 파멸로 이끈다.
더욱 뼈아픈 것은 참모들의 침묵이다. 대통령이 국제 무대에서 이런 치명적인 오류를 범할 때까지, 청와대 안보실과 국정원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대통령의 심기를 거스를까 두려워 직언(直言)을 포기했거나, 아니면 그들 역시 대통령과 같은 수준의 안보 불감증에 중독된 것이다. 어느 쪽이든 대한민국 안보 시스템의 총체적 붕괴다.
대통령은 이번 발언으로 북한 주민의 고통스러운 현실에 대한 무지를 드러냈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안보 자산을 스스로 무장해제하는 이적(利敵) 행위를 정당화했다. "몰랐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일개 촌부의 무지는 개인의 불행에 그치지만, 대통령의 무지는 5천만 국민의 생존을 위협하는 죄악이다. 지금 대한민국 안보의 최전선은 휴전선이 아니다. 현실과 단절된 채 오판을 거듭하는 대통령과 대통령실, 바로 그곳이 가장 위험한 안보의 구멍이다.
박주현 칼럼니스트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사에 4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철학도 신념도 없는 정치인이 대통렁이 되서.. 앞날이 무섭습니다.
진짜 저 얼굴만 보면 imf 곧 다가올거 같아서 너무 답답합니다.
저리 무식해도 저 혼자 잘난 줄 알고, 옆에선 아무 소리 못하고. 이거 딱 벌거벗은 임금인 아닌가요?
예리한 지적입니다. 공중파 방송에서는 절대 볼수 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