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않고 달릴 권리를 달라"… 5만 청원 무시한 국회 향해 라이더들 '직접 행동' 선언
"내 아들이 전용도로로 갔다면 죽지 않았을 것"… 유가족의 눈물 섞인 절규
'대한이륜자동차 실사용자협회 설립위원회' 발족… 입법 투쟁 및 인식 개선 본격화
"국민청원 5만 명이 달성됐지만, 국회와 언론은 침묵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유리병 속의 벼룩'이 되기를 거부합니다. 220만 실사용자의 목소리를 하나로 모아 우리의 정당한 권리를 직접 되찾겠습니다."
지난 28일 저녁 7시, 서울 금천구 동남빌딩 대회의실. 평일 저녁임에도 불구하고 각지에서 모인 이륜차 운전자들의 표정은 비장했다. 이날 열린 '이륜차 실사용자 간담회'는 지난 10월, 이륜차의 자동차전용도로 통행 허용을 촉구하는 국회 국민청원이 5만 명의 동의를 얻어 성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정치권과 행정부를 성토하고 실질적인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륜자동차 실사용자 협회를 만들자는 구체적인 움직임이 시작됐다 (사진제공=rec_riders_zz)
◇ "5만 명의 목소리에도 꿈쩍 않는 국회… 분노를 넘어 행동으로"
이날 간담회는 단순한 친목 도모가 아니었다. 사회를 맡은 김남훈 씨는 "5만 1,669명이 서명했지만, 국정감사 기간이라는 핑계로 정치권은 아무런 연락조차 없었다"며 "우리가 직접 거리로 나가 1인 시위를 하고 이렇게 모인 이유는, 더 이상 가만히 기다리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포문을 열었다.
참가자들의 발언대에서는 그동안 쌓여온 울분과 구체적인 피해 사례들이 쏟아져 나왔다. 닉네임 '윈디'는 "이륜차 사고가 나면 언론은 사실관계와 상관없이 '폭주족', '과속'이라는 자극적인 단어로 라이더를 악마화한다"며 "심지어 국가 통계청의 인구총조사 통근 수단 항목에 230만 대가 등록된 이륜차가 아예 빠져 있다. 이는 정부가 우리를 국민으로조차 여기지 않는다는 증거"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김성훈 변호사는 이륜자동차 선진화법을 제안했다사진제공=rec_riders_zz)
◇ "전용도로가 더 안전하다"… 유가족의 눈물
이날 장내를 숙연하게 만든 것은 한 유가족의 발언이었다. 자신을 '푸른 꿈'이라고 소개한 참가자는 "아들이 출근길 교차로에서 신호 위반 차량에 치여 세상을 떠났다"며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는 "아들의 통근로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만약 자동차전용도로를 이용할 수 있었다면, 복잡한 교차로와 신호등이 없는 안전한 도로로 출근했을 것이고, 그랬다면 지금 살아있었을 것"이라며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이어 "이동 수단의 선택은 국민의 기본권이다. 더 이상 내 아들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잘못된 제도로 국민을 사지로 내모는 현실을 바꿔야 한다"고 호소해 참가자들의 눈시울을 붉혔다.
참가자들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는 협회 준비위원회 (사진제공=rec_riders_zz)
◇ "50년 묵은 낡은 법, 뜯어고쳐야"… 김성훈 변호사 '선진화법' 제안
감정적 호소를 넘어 법적, 제도적 대안도 제시됐다. 자문을 맡은 김성훈 변호사는 '이륜자동차 선진화법' 발제를 통해 "현재 이륜차 분류 체계는 50년 전 기준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배기량에 따른 면허 체계 세분화 및 교육 강화 ▲상업용과 레저용의 명확한 구분 및 관리 ▲전용도로 통행의 단계적 허용 등을 골자로 하는 구체적인 입법안을 제시하며 "단순히 도로를 열어달라는 떼쓰기가 아니라, 국가가 방치한 국민 안전과 기본권을 되살리는 헌법적 책무를 다하라는 요구"라고 강조했다.
현장의 실사용자들도 다양한 제안을 쏟아냈다. 현직 배달 라이더이자 노조 활동가인 한 참가자는 "영업용 이륜차에 별도의 번호판 색상을 부여하고 공제조합을 통해 관리해야 한다"고 제안했고, 또 다른 참가자는 "운전면허 학원에서는 기어 변속조차 가르쳐주지 않는다. 실질적인 주행 교육 의무화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무허가 정비 업체의 난립으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정비 수가 표준화와 자격 제도 강화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대한 이륜자동차 실사용자협회 설립위원회가 출범했다 사진제공=rec_riders_zz)
◇ '대한 이륜자동차 실사용자협회 설립위원회' 출범… "이제는 조직된 힘으로"
이날 간담회의 결론은 '조직화'였다. 참가자들은 산발적인 개인의 목소리로는 거대한 관료주의와 편견의 벽을 넘을 수 없다는 데 공감하고, '대한 이륜자동차 실사용자협회 설립위원회(가칭)'를 발족하기로 뜻을 모았다.
설립위원회는 앞으로 국토교통부 산하 사단법인 설립을 목표로 ▲이륜차 관련 불합리한 법규(전면 번호판, 지정차로제 등) 개선 활동 ▲잘못된 언론 보도에 대한 정정 요구 및 대응 ▲상업용·레저용 라이더를 아우르는 안전 문화 캠페인 ▲메이커사의 불공정 행위(일방적 쿠폰 삭제 등)에 대한 소비자 권리 보호 활동 등을 전개할 예정이다.
청원팀 관계자는 "우리는 라이더들의 뜨거운 연대를 통한 강력한 단체가 될 것"이라며 "230만 이륜차 실사용자들의 권익을 대변하고, 대한민국 교통 문화를 선진화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침묵하는 국회와 정부를 향해 던진 라이더들의 승부수가 '협회 설립'이라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어지면서, 향후 교통 정책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남훈 기자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