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햇살은 비스듬히 눕는다. 여름날 정수리를 뜨겁게 달구던 그 꼿꼿한 직사광선은 사라지고, 힘을 잃은 볕이 거실 바닥으로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며 기어 들어온다. 그 낮은 빛 속에 부유하는 먼지들을 멍하니 바라보다 보면, 덜컥 겁이 난다. 나의 일 년도 저 먼지처럼 그저 허공을 떠돌기만 했던 것은 아닐까. 맹렬하게 살았다고 믿었는데, 손에 쥐어지는 것은 모래알처럼 빠져나가는 시간뿐인 것 같아서다.

TV를 켜면 세상은 여전히 시끄럽다. 화면 속의 사람들은 서로를 향해 삿대질을 하고, 듣기 싫은 소음들이 거실의 정적을 깬다. 이상한 일이다. 부끄러움을 잊은 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저들은 저토록 당당한데, 왜 성실하게 하루를 버텨낸 우리는 밤마다 이불 속에서 "내가 뭘 잘못 살았나" 하며 스스로를 검열해야 하는가.
우리는 분명 괴로움을 느끼려 세상에 온 게 아니다. 곰곰이 생각해보자. 당신이라는 사람이 지금 이 자리에 서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의 간절한 눈빛과 따뜻한 손길이 있었는지를. 걷지도 못하던 시절 누군가는 당신을 품에 안고 밤새 흔들었고, 당신의 첫걸음마에 온 세상이 떠나갈 듯 환호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그뿐인가.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고, 밥벌이를 해내겠다고,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겠다고 당신은 스스로를 얼마나 모질게 채찍질하며 여기까지 왔는가.
그 수많은 사람의 정성과 당신이 흘린 식은땀의 목적지가 고작 이 연말의 초라한 자책감일 리 없다. 우리가 행복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기분이 좋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당신을 키워낸 그 모든 사랑과, 치열하게 버텨온 당신의 지난 시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엄중한 의무다.
창밖의 가로수를 본다. 지난 계절, 그토록 화려했던 초록을 다 떨구고 검은 가지를 드러낸 채 서 있다. 하지만 아무도 그 나무를 보며 "실패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나무 자신도 "올해 더 무성하지 못했다"며 자책하지 않는다. 그저 군더더기를 버리고, 가장 단단한 본질만 남긴 채 혹독한 겨울을 견디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이제 그만 TV를 끄자. 저 바깥의 무례하고 시끄러운 세상이 내 마음의 평화까지 갉아먹게 두지 말자. 대신 따뜻한 차 한 잔을 끓여 낡은 식탁 앞에 앉자.
행복하겠다 다짐하고 마음먹는 것. 그것은 저 무례하고 소란스러운 시대에 대항하는 가장 우아하고 강력한 응전이다. 당신은 시간을 허비한 것이 아니라, 그 시간 동안 당신이라는 나무의 나이테를 한 줄 더 그렸을 뿐이다. 그거면 됐다. 충분하다.
차도 준비가 되셨다면, 12월의 첫 날을 노라존스의 'December'로 시작해 보시길 추천한다.
박주현 칼럼니스트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사에 12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또 한 해가 지나가면서 나이만 많아지는 것에 슬픔을 느꼈는데 이 칼럼 읽고 조금은 안심이 되는 기분이 들어요
님 덕분에 위로와 힘을 많이 받은 한해였습니다. 내년에도 함께 해 주실거지요? 아자!
그동안 버텨온 시간과 저를 아껴준 분들을 생각해서도 행복해보려고 애써보겠습니다
따듯하고 정성스런 위로 감사드립니다.
차 한잔 마시며 읽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이 칼럼으로 이미 행복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콧날이 시큰해지는, 온기 넘치는 멋진 칼럼입니다.
치열했던 지난 삶에 위로와 격려
그리고 휴식의 명분과 희망을 얻습니다.
따뜻한 차 한 잔을 끓여 낡은 식탁 앞에 앉습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요즘의 저 자신과 오늘과 너무 잘 맞는 글과 음악선물 정말 감사합니다
좋은 글, 좋은 노래 고맙습니다☕️
행복하겠다고 다짐하고 맘믹는
그런 12월을 시작합니다.
노래가 넘 멋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