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 박주현 IMF가 경고하는 경제 위기의 현실
다시 12월이다. 여의도의 빌딩 숲 사이로 살을 에는 칼바람이 불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1년 전 그날 밤의 공포를 기억해 낸다. '비상계엄 선포'. 2024년의 대한민국에서 그 단어가 튀어나왔을 때, 우리는 경악했다. 그것은 낡은 시대의 유물이었고,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폭거처럼 보였다.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은 "독재의 부활"이라며 길길이 날뛰었고, 국민들도 그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결국 계엄은 6시간 만에 제압됐고, 정권은 바뀌었다.
그렇게 민주당은 집권 여당이 되었다. 바야흐로 '이재명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승리감에 취해 있어야 할 국민들의 표정은 1년 전보다 더 어둡고 참담하다. 우리가 지켜냈다고 믿었던 민주주의의 성적표가 국가 부도 위기 수준의 경제지표와 전체주의적 공포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지금 외환시장의 전광판을 보라. 환율은 심리적 마지노선을 비웃듯 1,475원을 찍었고, 이제 1,500원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IMF는 연일 한국 경제의 기초 체력 붕괴를 경고하는 서신을 보내오고, 7월부터 타결됐다던 관세 협상은 아직도 오리무중. 여러 산업분야가 여전히 높은 관세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 정부는 경제를 살릴 대책은커녕, "중국인을 혐오해서는 안 된다"는 뜬금없는 도덕 선생 노릇이나 하며 굴종적인 대중(對中) 외교에만 골몰한다.
그래픽 : 박주현 내란이란 용어자체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국민이 많다.
더 기가 막힌 것은 내부를 향한 서슬 퍼런 칼날이다. 정부의 무능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올 때마다, 정치영역으로 끌고 가 전가의 보도처럼 내란 동조 딱지를 꺼내 든다. 법원의 최종 판결은커녕 1심 결과도 나오지 않은 단어를 확정된 사실인 양 휘두르며 국민을 겁박한다.
도덕과 법치는 시궁창에 처박혔다. 전임 정권을 향해 그토록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던 장경태 의원은 본인의 성비위 의혹 앞에서는 "정치 공작"이라며 뻔뻔하게 고개를 든다. 심지어 대통령 자신이 공범으로 적시된 사건을 지휘하는 검사들에 대해 감찰을 요청하는 저 후안무치함 앞에서는 할 말을 잃게 된다.
상황이 이토록 처참하게 흘러가자, 시중에는 기묘한 기류가 감지된다. 1년 전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 선포에 대해 단순한 비난을 넘어선 동정론이, 아니 더 나아가 불가피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이다.
국민들은 비로소 복기하기 시작했다. 당시의 상황을 냉정하게 되돌아보자.
그때 윤석열 정부는 살아있었으나 죽은 것과 다름없었다. 거대 야당 민주당은 국회 해산권이 없는 대통령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특활비를 전액 삭감해 대통령실과 검찰, 수사 기관의 손발을 묶었고, 마음에 안 드는 국무위원은 밥 먹듯이 탄핵 소추해 행정 기능을 마비시켰다.
국민 소환제도 없는 현실에 저들의 폭주를 막을 방법은 전무했다. 입법 독재로 행정부를 뇌사 상태로 만들고, 국가 시스템을 인질로 잡아 정권을 흔드는 그 숨 막히는 '식물 정부 만들기' 작전. 헌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는 도저히 이 거대한 벽을 돌파할 방법이 현실적으로 없었다는 사실을, 국민들은 이제야 깨닫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1년 전 우리가 그토록 혐오했던 '계엄'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는 기현상이 벌어진다.
"그때 그 주사가 비록 독(毒)이었을지언정, 독을 써서라도 제거했어야 할 암덩어리가 실재했구나."
의학적으로 말하자면, 항암제는 본질적으로 '독'이다. 암세포를 죽이기 위해 정상 세포의 희생까지 감수해야 하는 맹독성 물질이다. 1년 전 윤석열의 계엄은 분명 우리 헌정 질서에 주입하기엔 너무나 위험하고 독한 항암제였다. 그래서 우리는 부작용을 우려해 그 거친 링거를 우리 손으로 뽑아버렸다.
"항암제는 독이다. 하지만 암은 죽음이다."
국민들은 이제 이 잔인한 딜레마를 이해해 버렸다. 계엄이라는 급성 독약은 6시간 만에 끝났지만, 통제받지 않는 이 암적인 권력의 6개월 폭주를 바라보고는, 남은 임기 내내 아니, 어쩌면 그마저도 자기들 마음대로 바꾸고 연장해가며 우리 삶을 파괴할 것이라는 공포. 환율판의 붉은 숫자와 내란 몰이의 광기 속에서, 국민들은 1년 전의 그 '독'을 유일했던 '치료제'로 다시 보게 되는 서글픈 역설에 빠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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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3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벌써 계엄발동한지 1년이 지났다니 놀랍네요. 내란몰이 장사도 1년을 끌었네요. 갈수록 민주당의 폭주는 점점 심해지고 있으니 막막하기만 합니다. 폭주열차는 언제나 멈출까요?
전 이렇게 무서운데 이재명 찍은 49%들은 행복하실까요?
나라꼴이 이 지경이니 계엄이 정당했다 어쩔 수 없었다.. 이에 동의는 못하겠지만 그런 말까지 나오는 것이 이해는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