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박주현>
방탄의 진화: 개인에서 집단으로
문득 깨달았다. 방탄은 더 이상 개인용 갑옷이 아니었다. 뉴스에선 허영 민주당 원내정책수석부대표가 인사청문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는 속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방탄의 유전자는 변이했다. 더 넓은 숙주를 찾아, 집단 전체로 번지고 있었다. 청문회를 ‘공직윤리’와 ‘공직역량’으로 나누고, 도덕성 검증은 비공개로 돌리겠다는 이 아이디어. 겉으론 제도 개선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면역 체계 재정비였다.
때마침 강선우 후보자의 갑질 의혹, 이진숙 후보자의 논문 표절 문제가 불거지자 곧장 이 개정안이 나왔다. 의심을 품기에 충분한 타이밍이었다.
집권 전부터 계획된 이재명을 위한 갑옷은 중세 기사의 방어구처럼 조립되어 있었다. 투구는 언론을 가리고, 흉갑은 검찰을 튕겨내며, 각반은 법원의 칼날을 흘려보낸다. 하지만 개인만 안전한 갑옷에는 한계가 있다. 권력은 연결된 생태계니까.
문제는 장관 후보자들이었다. 강선우 후보자는 자료의 39%를, 정동영 후보자는 아예 0%를 제출했다. 청문위원들이 쏟아낸 자료 요청 목록 위에, 아무 것도 적히지 않은 빈 페이지만 남았다. 이제는 '증인 제로, 자료 맹탕'이 새로운 표준이 된 듯하다.
과거 민주당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자료를 안 내고 검증받기 싫으면 사인으로 살라.”
2014년 박근혜 정부 시절, 새누리당이 도덕성 검증을 비공개로 전환하려 했을 때, 민주당은 “자격 미달 인사를 들이려는 꼼수”라며 날을 세웠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진숙 후보자의 오탈자까지 똑같은 복사 논문에 대해 “문제는 없다”고 감싸고, “단 한 명도 낙마시키지 않겠다”는 방침이 공개됐다.
그 순간, 나는 들었다. 정치의 유전자가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소리를.
단순한 모순이 아니다. 이것은 권력의 본질이다. 이재명이 과거 “법 해석은 범죄자가 아니라 판검사가 한다”고 했던 말은, 이제 다른 의미로 들린다.
민주당은 자신들이 1955년의 유산을 잇는다고 말하지만, 권위주의 정권에 맞서던 그 시절의 얼굴은 점점 흐려지고 있다. 투명성과 책임을 외치던 이들이, 이제는 그 반대편에 서 있다.
하지만 단순한 타락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권력을 쥔 자가 처한 현실과, 야당이었을 때의 이상 사이엔 늘 긴장이 존재한다. 문제는 그 간극을 어떻게 해소하느냐다.
방탄은 전술이 아니라 체계가 되었다. 정치 면역의 완성형이다. 우리는 지금, 방탄의 집단화를 통해 권력 구조의 유전자 편집을 목격하고 있다.
허영 의원은 말했다. “지금의 청문회는 신상털기에 치중돼 있다.” 그 말, 틀린 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검증 자체를 감추는 것이 해답일까?
방탄의 진화는 계속된다. 개인에서 집단으로, 방어에서 공격으로, 예외에서 원칙으로. 그리고 그 끝엔, 완전한 면역과 영생을 꿈꾸는 어떤 정치 생명체가 기다리고 있다.
영원히 살 수 있는 괴물 같은 세포가 인간의 몸에도 있다. 그 세포의 이름은 ‘암’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 정치가 그 길로 들어서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