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박주현>
특활비 부활과 내로남불의 예술
회사 회의실에서 벌어진 일이다. 과장이 신입사원의 기획안을 보더니 "이런 건 필요 없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런데 한 달 후, 같은 과장이 똑같은 아이디어를 자신의 제안인 양 발표하고 있었다. 그 신입사원의 표정이 어땠을지 상상해보라.
이런 일이 국회에서 105억 원을 두고 벌어졌다.
특활비. 이 돈의 정체부터 알아보자. 1961년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킨 후 만든 '비밀공작금'의 후예다. 누구를 매수하고, 누구를 감시하고, 누구를 회유할 것인가. 군사독재 시절 권력자들이 이 돈으로 정치공작을 벌였다. 민주화 후에도 이 돈은 '국정운영의 필요'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달고 살아남았다.
영수증이 필요 없다. 뭘 샀는지, 누구에게 줬는지 증명할 필요가 없다. 권력자들에게는 마법의 지갑이다.
31조 8천억 원짜리 추경안.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실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이 거대한 예산안 속에 105억 원을 조용히 밀어넣었다. 전체에서 0.033%에 불과한 돈이지만, 절대 허투루써도 되는 돈이 아니다. 이 돈을 둘러싼 그들의 행동을 보면 웃음이 나온다.
작년 11월 국회. 박찬대가 목소리를 높였다. "대통령실 특활비를 삭감해도 국정이 마비되지 않습니다!" 그 옆에서 이재명이 더 신랄했다. "어디다 썼는지도 모르는 특활비 때문에 살림을 못 하겠다고요? 조금 당황스럽네요."
그런데 올해 7월, 같은 사람들이 조승래 의원을 앞세워 이렇게 말했다. "원활한 국정운영을 위해 특활비 증액이 필요합니다."
7개월. 정치인에게는 전생을 잊을 만큼 긴 시간인 모양이다.
대통령실 41억, 검찰 40억, 경찰 16억, 감사원 8억. 이 돈들이 어디로 사라질까? 고급 한우일 수도 있고, 비싼 과일일 수도 있고, 어쩌면 단체 회식비일 수도 있다. 아니면 다른 용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영원히 알 수 없다.
진보진영 내부에서 균열이 일어났다. "검찰 특활비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조국혁신당의 황운하 의원이 날카롭게 물었다. "정권이 바뀌었으니 검찰의 칼도 정의로운 칼이 됐나요?"
민주당은 묘책을 내놓았다. "검찰 개혁 완료 후 집행."
검찰 개혁이 언제 완료되는가? 그 기준은 무엇인가? 아무도 모른다. 결국 "우리 마음대로 하겠다"는 뜻이다.
국민의힘도 가만있지 않았다. 송언석 원내대표가 "후안무치한 내로남불"이라며 비판했다. "야당일 때는 불필요하다고 하더니, 집권하니까 꼭 필요하다고 하네요."
우상호 정무수석이 그나마 솔직했다. "입장이 바뀐 것에 대해 국민께 죄송합니다. 운영해보니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적어도 변명을 늘어놓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런 변절이 계속 반복될 것이다. 로버트 미헬스가 100년 전에 이미 예견했다. '과두제의 철칙'이라고 불리는 그의 이론이다. 아무리 민주적인 조직이라도 권력을 잡으면 기득권을 옹호하게 된다. 민주당의 변신이 이를 증명한다.
야당일 때는 모든 게 문제로 보인다. 여당이 되면 모든 게 필요해진다. 이것이 한국 정치의 숙명이다.
도스토옙스키가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서 던진 질문이 떠오른다. "모든 것이 허용되는가?" 권력을 잡으면 말을 바꾸는 것도, 과거를 부정하는 것도 허용되는 건가?
그나마 다행한 건 국민들의 눈이 점점 예리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정치인들의 말에 쉽게 속지 않는다.
105억 원이 어디로 사라져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들이 또 말을 바꿀 것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