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회의 주재하는 이재명 대통령
국무회의가 ‘과일가게 회의’로 바뀐 모양이다. 국정 현안이 산더미인데 대통령이 느닷없이 바나나 가격을 꺼내 들었다. 물론 바나나자체보다 유통 구조를 바로잡으라는 것이라 여긴다해도 절대 국무회의에 어울릴만한 주제는 아니다. 장관들은 아마 ‘이걸 받아 적어야 하나’ 잠시 헷갈렸을 것이다.
대통령께 ‘수입 과일의 여정’을 잠시 설명해 드려야 할 것 같다. 바나나는 우리 땅에서 저절로 솟아나는 물건이 아니다. 필리핀의 농장에서 수확해, 달러로 값을 치르고, 기름값이 오르내리는 배에 실려 태평양을 건너온다. 시시각각 변하는 환율, 배삯, 현지 작황, 계약 시점과 물량까지, 수백 가지 변수가 두 나라의 가격표를 다르게 만든다. 이 모든 걸 무시하고 “왜 옆 나라랑 가격이 다르냐”고 따지는 건, 옆집 밥값과 우리 집 밥값이 왜 다르냐고 화내는 것과 같다. 이건 복잡한 경제학이 아니라 산수(算數)의 문제다.
이런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면, 현실이라도 봐야 한다. ‘물가 안정 우등생’이던 일본조차 최근 바나나 가격 상승을 피하지 못했다. 세계적 인플레이션과 물류비 급등에 시달린 필리핀이 2022년 일본에 가격 인상을 공식 요구하자 두 손 들었다. 일본 정부도 어쩌지 못하는 국제 시세를 우리 대통령이 유통상 몇 군데 윽박지른다고 잡을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건 용기라기보다 만용(蠻勇)에 가깝다.
결국 ‘과일가게 회의’를 자처한 이유는 뻔하다. 복잡한 현실 경제를 설명하고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고된 길 대신, ‘나쁜 유통업자’라는 손쉬운 적을 만들어 국민의 분노를 그쪽으로 돌리려는 얄팍한 계산이다. 이것이 바로 나라를 좀먹는 ‘바나나 포퓰리즘’의 민낯이다.
이런 인식은 단순한 말실수가 아니라 대통령의 뿌리 깊은 반(反)기업 철학의 연장선이다. “매점매석은 조선 시대엔 사형감”이라며 시장을 겁박하고, 건설현장 사고는 ‘미필적 고의 살인’이라며 기업인을 잠재적 살인자로 몬다. 노란봉투법, 상법 개정 같은 법안들로 기업의 팔다리를 묶어놓고는 이제 와서 물가가 비싸니 유통상이 문제라고 한다. 그렇게 기업을 위축시키는 발언과 정책을 늘어놓는 것이 과연 물가 안정에 도움이 되겠는가.
진단이 틀렸으니 처방도 틀릴 수밖에 없다. 높은 물가라는 열병을 앓을 때, 경제 체력을 키워 버티게 할 생각은 않고 엉뚱한 곳에 침을 놓는 격이다. 지금처럼 고환율, 고물가 시대에 경제의 펀더멘탈이 버티려면 길은 하나뿐이다. 성장의 파이를 키우는 것이다. 기업이 신나게 뛰고 투자할 환경을 만들어 경제의 기초체력을 키워야 국민도 고물가의 고통을 견뎌낼 수 있다.

박주현 칼럼니스트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사에 7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한심합니다
입 좀 다물었으면
기사내용에 공감합니다
왜 다른 나라랑 가격이 다른지 본인이 미리 알고 있어야 하는거 아닌가 아님 짐작이라도 해야지 싶고 그 무지를 오하려 일침 놓는답시고 드러내는게 넘 웃기네요
'대통령과 바나나' 감동 에세이일 것 같은 제목인데 현실은 헛웃음 나는 시트콤이네요..(헛헛헛)
대통령이란 작자의 시야가 고작 바늘구멍 밖에 안 되는....
요즘 수요 공급 그래프는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데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