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비영어 쇼 부문 주간 1위 차지한 '폭군의 셰프' [투둠 갈무리. 재판매 및 DB 금지]
요즘 우리는 화면 속 한 폭군에게 매료되어 열광한다. 그의 고뇌에 찬 눈빛, 잔혹함 이면에 숨겨진 인간적 결핍, 그리고 그의 식탁에 오르는 음식을 통해 그의 텅 빈 내면을 상상한다. 드라마는 폭군을 ‘미치광이 살인마’라는 단편적인 이미지에서 입체적인 인간으로 복원하며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물론, 즉각적인 비판이 뒤따랐다. ‘역사상 최악의 폭군을 미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는 타당하다. 그의 이름 아래 스러져간 수많은 생명을 생각하면, 그의 고독을 논하는 것 자체가 사치일지 모른다.
하지만 바로 이 ‘미화 논란’이야말로 우리가 역사의 이면으로 들어가는 흥미로운 입구가 된다. 우리가 연산군에 대해 알고 있는 거의 모든 정보의 출처는 『연산군일기』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결정적인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그 일기를 쓴 자들은 누구인가? 바로 연산을 왕좌에서 끌어내리고 중종을 옹립한 반정(反正)의 공신들, 즉 승자다.
그들의 입장에서 반정의 성공은 그 자체로 역모였다. 이 역모를 혁명으로 바꾸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폐위된 왕을 인간 이하의 ‘괴물’로 만드는 것이다. 연산이 상식을 벗어난, 구제 불능의 미치광이여야만 그를 몰아낸 자신들의 행위가 정당화될 수 있었다. 이런 관점에서 『연산군일기』를 다시 보면, 그의 기행과 전횡이 필요 이상으로 과장되고 악의적으로 편집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어머니의 피 묻은 손수건을 보고 ‘눈이 해까닥 돌았다’는 극적인 서사는, 그의 모든 폭정을 비이성적인 ‘광기’ 탓으로 돌리려는 정교한 장치였을지도 모른다. 드라마의 상상력이 사실은 승자의 기록이 감추고 싶어 했던 ‘인간 연산’의 빈틈을 파고든 셈이다.
그렇다고 연산이 폭군이 아니었다는 말이 아니다. 그는 분명 폭군이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왜 폭군이 되어야만 했는가이다. 그의 광기는 타고난 기질의 문제가 아니라, 그를 둘러싼 ‘시스템’과의 처절한 투쟁이 낳은 비극적 결과물이었다.
즉위 후 단 한 달. 20세의 젊은 왕 연산이 겪었던 일들을 들여다보면 그를 짓누르던 시스템의 실체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왕위에 오른 지 며칠도 되지 않아 그는 대간(臺諫)들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첫째는 돌아가신 아버지 성종의 장례 절차였다. 할머니 인수대비의 뜻에 따라 관례대로 불교식 제사를 치르려 하자, 대간들은 ‘이단의 제사’라며 떼로 몰려와 결사반대 농성을 벌인다. 두 번째는 성종의 묘호(廟號) 문제였다. 연산이 아버지의 인덕을 기려 ‘인종(仁宗)’을 주장하자, 대간들은 명나라 황제 중에 인종이 있다는 이유로 ‘사대에 어긋난다’며 길길이 날뛰었다. 이 두 사건에서 연산이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왕의 뜻이나 왕실의 전통보다 자신들의 유교적 명분이 절대적으로 우선하는 시스템이었다. 대간들은 집단으로 사직을 하고 왕의 양보를 얻어 복귀 하길 수없이 반복하며 무기처럼 휘둘러 젊은 왕의 기를 꺾고, 성종 시대처럼 자신들의 통제 아래 두려 했다. 연산은 이 숨 막히는 기 싸움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어 보았다. 문제는 ‘장례’나 ‘묘호’가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신하가 왕을 가르치고 평가하며 길들이려 하는 이 시스템 자체였다.
사진제공 (CJENM.)
여기에 연산의 비극적 한계가 있다. 그는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는 탁월했지만, 그것을 개혁할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시스템의 위선과 비효율을 정확히 비판하면서도, 그는 더 나은 시스템을 설계하는 대신 오직 파괴만을 택했다. ‘패비 윤씨 사건’이라는 완벽한 명분을 손에 쥔 그는, 어머니의 복수를 넘어 자신을 억압하던 관료 시스템 전체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사림의 정신적 지주 김종직의 시신을 꺼내 목을 베고(부관참시), 언론기관인 삼사(三司)를 무력화한 것은 광기인 동시에, 시스템을 향한 절망적인 반격이었다.
그러나 파괴 이후 남은 것은 폐허뿐이었다. 그는 괴물 같은 시스템을 부수기 위해 스스로 더 끔찍한 괴물이 되었고, 결국 자신이 만든 공포 속에서 고립되어 몰락했다.
진짜 비극은 그 이후에 시작된다. 연산을 몰아낸 세력은, 무너진 왕권을 바로 세운 것이 아니라 더욱 강력하고 교조적인 사림의 시스템을 부활시켰다. 연산이라는 절대악을 제거한 ‘순교자’이자 ‘구원자’라는 후광까지 업은 사림은 이제 누구도 견제할 수 없는 권력이 되었다. 김종직을 정신적 시조로 삼은 이들은, 현실과 동떨어진 명분 싸움(붕당정치)으로 국력을 소모했고, 상공업을 천시하며 나라를 가난으로 몰아넣었으며, 국제 정세의 흐름을 외면한 채 오직 ‘중화(中華)의 질서’에만 매달리다 전란이라는 국가적 치욕을 자초했다. 연산의 10년 칼부림보다, 그 후 수백 년간 이어진 사림의 ‘도덕적 독선’이 조선을 더욱 깊은 병폐로 몰아넣은 것이다. 폭군은 사라졌지만, 폭군을 탄생시킨 시스템은 더욱 강고해져 나라 전체를 질식시켰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기자 유성운의 2021년 작, 『사림, 조선의 586』을 통해 우리에게 던지는 날카로운 질문과 정확히 일맥상통한다. 그는 조선을 몰락으로 이끈 사림의 정치적 DNA—선악 이분법, 족보와 정통성에 대한 집착, 명분 우선주의, 그리고 도덕적 우월감 이면의 위선—가 놀랍도록 오늘날의 586세대 정치와 닮아있음을 방대한 사료를 통해 입증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드라마 속 폭군의 고뇌가 단지 한 개인의 비극을 넘어, 500년의 시간을 관통하며 우리를 맴도는 거대한 시스템의 비극이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정치적 혼란의 기원을 알고 싶다면, 그 해답은 연산이 아닌, 그의 가면 뒤에 숨은 진짜 설계자들에게 있다.
사진 : 유성운 기자의 저서 사림, 조선의 586

박주현 칼럼니스트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사에 13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글 재밌게 잘읽었습니다
50대후반 80년대 대학 다니고 60년대생 사람들아
흥미롭습니다.
읽고 싶네요
잘 읽었습니다.
결국 나라 팔아 먹은 것들도 사회주의에 동화되어 나라를 개판 만든것도 어쭙잖은 먹물들이 한 짓이지. 이 나라는 문과가 말아 먹는 다는 이국종교수의 말에 깊이 동감하는것도. 그런 인간들을 선망하고 똑같은 괴물을 키워내는 국민
오,, 한 번 읽어봐야겠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미쳐 돌아가는 586들의 종북 종중이 조선 사림과 이런 접점이 있다니 흥미롭네요
깊이 생각하게 되는 글이에요. 잘 읽었습니다.
이번 추석 연휴에 읽어보고 싶어지는 책이네요
좋은 칼럼입니다
이렇게 통찰렉있는 분들 덕에 사태를 바로 보는 안목이 생깁니다
책도 흥미롭네요
구매 목록에 담이 놓겠습니다
흥미롭고 소름 돋는 글 잘 읽었습니다. 연산군 이 후의 시대 터널에 들어섰음을 암시하는 책과 기사네요. 그저 암담할 뿐입니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정치적 혼란의 기원을 알고 싶다면,
그 해답은 연산이 아닌, 그의 가면 뒤에 숨은 진짜 설계자들에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