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뽕’이라는 단어조차 존재하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1980년대, 나의 초등학교 시절은 국가적 자부심을 강요당했지만, 정작 그 실체는 모호했던 회색빛 시대였다. 국정교과서는 끊임없이 우리가 위대하다고 가스라이팅했지만, 어린 마음에도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
우리가 자랑스러워해야 할 것들은 대개 형이상학적이거나 시대착오적인 것들이었다. ‘순혈민족’. 피가 섞이지 않은 것이 대체 어떤 경쟁력이란 말인가? ‘백의민족’. 옷이 하얀 것이 뭐가 그리 자랑인가? ‘조용한 아침의 나라’. 존재감 없다는 말을 아름답게 포장한 것에 불과했다. 버선코와 처마의 곡선미가 아름답다고 배웠지만, 그것이 우리의 삶과 무슨 상관이 있었을까. 가장 싫었던 것은 ‘한 번도 다른 나라를 침략하지 않은 평화 애호 민족’이라는 레퍼토리였다. 힘이 없어 얻어맞기만 했던 역사를 정신 승리로 포장하는 비겁함이 느껴졌다. 첨단 무기 시대에 ‘활 잘 쏘는 동이족’ 타령은 또 어땠는가.
그 시절의 국뽕은 사막에서 바늘 찾기였다. 그나마 손에 잡히는 유일한 성과는 매년 국제기능올림픽대회 종합 우승 소식이었다. 잠시나마 어깨가 으쓱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이 국가의 격을 대변하는 핵심 지표는 아니었다. 자랑거리가 얼마나 없었으면, 우리의 유일한 비교 우위가 ‘북한보다 잘 산다’는 것이었을까. 그것은 자부심이라기보다 안도감에 가까웠다.
국뽕 톤으로 생성한 AI이미지 (가피우스)
메말랐던 국뽕의 대지에 단비가 내린 것은 2002년이었다. 월드컵 4강 신화는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집단적 효능감을 처음으로 일깨웠다. 때맞춰 아시아 일부 지역에서 한류 열풍이 매니악하게나마 불기 시작했고,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해외 반응을 번역하며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하지만 2000년대의 국뽕은 여전히 어설프고 억지스러운 면이 강했다. “한국은 밤길이 안전하다”, “카페에 물건을 두고 가도 아무도 훔쳐가지 않는다”, “국민성이 친절하다” 등, 소소한 장점들을 과대 포장했다. 이는 여전히 우리가 세계 무대에서 주변부라는 불안감의 방증이었다. 오죽하면 “두 유 노우 김치?”, “두 유 노우 싸이?” 같은, 상대의 인정을 구걸하는 듯한 ‘두유노 밈’이 유행했을까. 그것은 자신감보다는 인정 욕구에 가까웠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억지가 아닌 실력으로 증명하는 시대에 도달했다. BTS의 등장은 새로운 국뽕의 제국을 열었다. 빌보드 차트를 점령한 K팝, 오스카와 칸을 휩쓴 영화, 넷플릭스를 장악한 드라마, 세계인들이 탐독하는 웹툰까지. 문화 콘텐츠뿐만이 아니었다. 반도체와 배터리 등 첨단 산업 분야에서의 독보적인 위치, K-방산의 급부상까지, 한국이 내세울 국뽕 포인트는 차고 넘쳤다.
특히 2025년 현재, 전 세계를 강타한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의 열풍은 국뽕의 정점을 찍었다. 건국 이래 최고의 한류 열풍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두 유 노우”를 묻지 않는다. 세계가 먼저 한국을 찾고 배우려 한다. 길고 길었던 문화적 사대주의가 종식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역사는 아이러니하다. 국뽕이 최대치에 도달한 2025년은, 어쩌면 국뽕이 저물기 시작한 해로 기록될지도 모른다. 우리가 이룩한 눈부신 성과는 자유와 창의, 그리고 개방성에 기반한 민주주의의 토양 위에서 피어난 꽃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 토양이 급속도로 황폐해지고 있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질식하고 있다. 민주당과 정부의 노골적인 사법부 장악 시도는 삼권분립의 근간을 흔들고 있으며, 극단적인 진영 논리에 매몰된 정치는 사회의 활력을 앗아가고 있다. 비판적 사고가 거세되고, 획일적인 사고가 강요되는 사회에서 창의적인 문화 콘텐츠가 계속 나올 수 있을까?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지정학적 위기다. 국제 사회의 보편적 가치 대신, 친중·반미 경향을 노골화하며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고 있다. 우리가 누려온 번영의 근간이었던 자유 무역 질서와 동맹 관계를 스스로 훼손하는 모습은 위태롭다. 경제적 불확실성이 커지고 사회 갈등이 증폭되면서, 우리가 그토록 자랑스러워했던 성과들은 기반부터 흔들리고 있다.
우리는 메마른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아냈고, 마침내 그곳을 풍요로운 도시로 일구어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스스로 그 도시의 수원(水源)을 오염시키고 성벽을 허물고 있다. 밖에서 보면 여전히 화려하지만, 안에서는 서서히 무너져 내리고 있는 것이다. 국뽕의 정점에서 마주한 이 불안한 예감은, 단순한 기우일까, 아니면 다가올 현실일까.
윤갑희 기자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사에 4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공감하는 한편 착잡하네요.
너무 공감되는 글이라 마음이 씁쓸합니다
무너지기 전에 멈추게 해야 하는데 걱정이 많아지네요
지금의 세상을 바르게 보는 언론 소중합니다 기우나 타협 가능한 영역이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