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의 “빚내서 집 사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라는 한마디는 실언이 아니라, 철학이다. 지금 이 땅의 모든 세대를 절망으로 몰아넣고 있는 부동산 정책의 비정한 핵심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선언이다. 이 말이 현실적으로 옳은 주장이 되려면, 빚을 안내고 집을 살만한 돈을 모을 동안 집값이 그대로여야 한다. 허나 현실은 어떤가? 공급계획은 공사현장의 사고를 "미필적고의에 의한 살인"이라던 강도 높은 대통령의 압박 발언으로 여기저기 중단되었고, 한국인은 애초에 살 방법조차 없는 중국의 아파트에 비해, 중국인들은 그 어떤 규제장치조차 없다. 결국 어제 발표된 서울 아파트는 값은 지난 주에 비해 0.54프로 상승했다.
결국 이 말속에는 청년의 미래를 딛고 선 사다리를 걷어차고, 한 가정을 버티는 중년의 대들보를 흔들며, 노년의 삶을 지탱하는 마지막 주춧돌마저 빼내려는 위험한 의도로 번져간다.
우선, 그들은 청년의 미래를 월세방에 가뒀다. 아이를 낳으라, 결혼을 꿈꾸라 말하지만, 대체 어디서 그 꿈을 펼치라는 것인가. 치솟는 월세를 감당하며 벌이의 대부분을 현재에 소모하는 삶과, 비록 오랜 시간 힘겹겠지만 미래를 담보로 내 집을 향해 나아가는 고생길. 이 기로에서 국가는 그 힘들지만 영광스런 가시밭길을 선택하려는 이들을 ‘비정상’이라 낙인찍고 대출의 문을 걸어 잠갔다. 안정적인 주거 없이는 단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는 청년들에게서 미래를 선택할 권리 자체를 박탈한 것이다. 이는 국가가 청년에게 가하는 명백한 폭력이며, 세계 최저 출산율의 가장 유능한 공범이다.
중년의 삶 역시 위태롭다. 자녀의 성장에 맞춰 더 나은 환경으로 나아가려는 인간의 보편적인 희망은 ‘잠재적 투기 수요’라는 이름 아래 억제된다. 집값이 오르면 ‘불로소득’이라며 세금으로 환수하려하고, 이사를 가려 하면 대출 규제로 발을 묶는다. 그들의 칼날은 소위 ‘부동산 부자’에게만 머무르지 않는다. 민주당 일부에선, 평생을 바쳐 마련한 집 한 채를 지키려는 1주택자의 보유세마저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공공연히 터져 나온다. 이는 특정 계층을 겨냥한 정책이 아니라, 더 나은 삶을 꿈꾸는 모든 국민을 하향 평준화하려는 시도와 다름없다. 한 가정의 대들보를 흔들면서, 집이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기만이다.
그래픽: 박주현 일반인에게 집의 의미는 투기가 아니라, 안정과 번영이다.이 잔인한 정책의 종착지는 노년 세대의 존엄마저 파괴한다. 피땀으로 집 한 채를 일군 세대. 이제 소득이 끊긴 채 그 집에 노후를 의탁한 이들에게 또한, 국가는 ‘불로소득’이라는 죄를 묻고 있다. 현금 한 푼 없는 은퇴자에게 수천만 원의 보유세 고지서를 보내는 것은, 집을 팔아 세금을 내거나 빚을 내라는 최후통첩이다. 평생 성실하게 살아온 대가가 노년의 파산이라면, 대체 이 나라에서 누가 국가를 믿고 땀 흘려 일하겠는가. 이것은 조세 정의가 아니라 사회적 배신에 가깝다.
결국 이 모든 것은 하나의 결론으로 귀결된다. 청년에게서 미래를 설계할 용기를 빼앗고, 중년에게서 더 나은 삶에 대한 희망을 꺾고, 노년에게서 최소한의 안정을 위협하는 정책. 이것은 실패한 부동산 정책이 아니다. ‘가족’과 ‘미래’라는 가치를 향한 전면전이다. 집을 투기 상품으로만 간주하고, 그 안에 담긴 한 가족의 역사를 읽어내지 못하는 이들은, 그렇지 않아도 다가온다는 국가 소멸의 각본을 앞당기려는 가장 유능한 작가들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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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2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좋은 기사 잘 읽었습니다.미약하나마 원고료 보냅니다.
중간이 없는 극과 극을 달리는 국민들의 정치 성향이 국가의 미래를 망치는 결과를 초래한 거죠. 이재명과 윤석열이 대선 후보로 주목을 받을 때부터 한국은 망하는 길로 가는 거라는 예견을 했던 분도 있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