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투자은행 JP모간과 모건스탠리가 다음 달 해외 투자자 수십 명을 이끌고 이례적으로 한국을 찾는다. 이재명 정부 출범 두 달 만에 '상생'을 명분으로 국민성장펀드, 배드뱅크 출자, 교육세 인상 등 금융권을 향한 압박이 쏟아지자, 외국인 투자자들이 직접 리스크를 점검하기 위해 나선 것이다. 외국인 지분율이 70%를 넘나드는 국내 금융사들의 주가는 이미 급락세로 돌아섰다.
'K밸류업'으로 한국 증시의 고질병인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겠다며 외국인 투자자들을 불러 모은 것이 불과 몇 달 전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그 투자자들의 뒤통수를 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가 시장 원리를 무시하고 금융사의 팔을 비틀어 수조 원의 돈을 내놓으라고 압박하고 있으니, 해외 큰손들이 "한국 소식 진짜냐"며 화들짝 놀라 달려오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이것은 정상이 아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세금 몇 푼이 아니다. 그들이 진짜 무서워하는 것은 예측 불가능한 '정치 리스크'다. 어제는 '밸류업'을 외치며 주주 환원을 독려하던 정부가 오늘 갑자기 돌변해 이익을 통째로 환수하겠다는 식의 정책을 밀어붙이는 나라에 누가 안심하고 투자하겠는가. '상생'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했지만, 그 본질은 기업의 자율성을 짓밟고 시장 경제의 근간을 흔드는 '관치금융'의 망령일 뿐이다.
그래픽 : 박주현 외국인 투자자를 내 쫒으면서 그런 줄도 모르고 있는 정부
역사는 이런 식의 포퓰리즘이 어떤 파국을 불러오는지 똑똑히 보여준다. 2000년대 초 아르헨티나는 재정 건전성을 무시한 채 선심성 정책을 남발하다 결국 국가 부도를 맞았다. 외국 자본은 썰물처럼 빠져나갔고, 경제는 회복 불능의 상태에 빠졌다. 당시 아르헨티나 정부도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고 강변했지만, 그 결과는 모든 국민의 고통이었다. 지금 우리가 가는 길이 그 길과 무엇이 다른가.
시중에서는 "이 정부는 시장을 너무 모른다"는 말이 나온다. 밸류업 프로그램의 핵심은 정부 정책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에 대한 '신뢰'다. 그 신뢰가 무너지면 아무리 좋은 정책을 내놓아도 사상누각일 뿐이다. 리더십의 역할은 단기적 인기에 영합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위해 욕을 먹더라도 원칙을 지키는 것이다. 지금의 정책 방향은 명백히 국익을 해치고 있으며,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심화시키는 역주행이다.
해외 투자자들이 비행기에 몸을 싣는 것은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기본 원칙을 지키는 '정상 국가'인지, 아니면 정치 논리가 모든 것을 압도하는 '비정상 국가'로 회귀하는 것인지를 말이다.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한다면, 한국 금융 시장을 떠나는 외국인들의 행렬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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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3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진짜 큰일이네요 ㅠㅠ
기사 감사합니다.
무서운 상황인데 되돌릴 수 있는 선에서 멈추길 바랄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