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광복절이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강탈당한 나라를 겨우 찾아 대한민국을 시작한 날이다.
지위고하와 상황을 막론하고 기념일에는 심리적 무결성을 지향하는 경향이 있다. 국가 간 전쟁을 하다가도 성탄절이 되면 포격을 자제하거나, 현충일에는 유흥주점도 영업을 쉰다거나, 원수 같은 사이에도 장례식에서는 예의를 갖춘다거나 하는 등이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광복절에 대한 겸양의 마음이 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런데 이 기본적인 바람마저 이번에 농락당했다.
2025년 광복절 0시, 언론은 조국의 입을 향했다. 이재명이 광복절을 기념하여 조국에 대해 특별사면을 시켜줬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조국의 발언은 대한민국 광복절을 여는 첫 메시지가 되어 버렸다. 그 자체도 불쾌한데 그 내용은 더욱 가관이었다.
조국이 구속 수감된 혐의는 입시 비리다. 자녀 입시 과정에서 허위 인턴 증명서 발급, 허위 경력 기재, 장학금 부정 수령 등이다. 이는 교육 기회의 공정성을 정면으로 훼손한 파렴치한 범죄 행위다. 일반인이라면 고개를 들고 다니지 못할 정도의 부끄러운 잡범이다. 그런데 정부는 광복절의 권위를 빌려 은혜를 내린 것이다.
그의 일성은 반성이 아니었다. 사적 감정을 검찰개혁이라는 그럴듯한 포장지를 씌워 자기 진영이 즐겨 쓰는 언어로 표출했다. 누가 보면 독립운동이라도 하다가 투옥된 줄 알겠다.
사면은 메시지다. 이재명 정부의 광복절 메시지가 입시비리와 횡령인가? (그래픽-가피우스)
윤미향에 대한 사면도 기가 막힌다.
윤미향은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한 후원금을 개인적으로 사용해 횡령하였다. 윤미향은 수사와 재판을 질질 끌면서 유죄가 확정되기 전에 국회의원 임기를 모두 누렸다. 구속 수감된 상태도 아니므로 그 죄질에 비해 현실적으로 불이익당한 것은 없다. 후원금을 반환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이재명은 마치 검찰권의 피해자인 양 사면 복권을 해주었다. 이 사건은 검찰이 아니라 위안부 피해자의 제보로 알려진 것임에도 말이다. 일제 만행의 표본인 위안부 피해자를 착취한 윤미향에게 무려 광복절의 권위를 떼어 은혜를 베푼 것이다. 이는 윤미향은 정당하고 문제를 제기한 위안부 피해자들이 문제가 있다는 선언과도 같다.
아니다 다를까 윤미향은 여전히 반성과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이번 사면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조롱했다.
윤미향은 자기에게 고분고분한 ‘소녀상’을 데리고 다니면서 여전히 활동을 하고 있다. 위안부 피해자들은 그녀에게 성가신 존재가 된 듯하다. 정부가 광복절 특사로 자신이 옳다고 보증했는데 위안부들이 뭐라 하든 무슨 상관이겠나. 영화 ‘밀양’에 등장하는, 피해자에게 사과하지 않고 신에게 용서를 받았다며 피해자에게 의기양양한 범죄자가 떠올랐다. 광복절에 윤미향을 사면한 것은 위안부 피해자들을 조롱한 처사다. 그리고 난 광복절의 권위에 똥물을 뿌린 것 같은 불쾌감을 느낀다.
대통령도 광복절의 권위를 훔쳤다. 광복의 이미지를 자신에게 투영하는 기괴한 대관식을 열었다. 자기가 선정한 사람들에게 자기를 임명하게 한다는 기발한 발상을 기어코 밀어붙였다. 코로나 지원금을 기본소득이라고 포대갈이 하던 솜씨를 광복절 이미지 도용에 어김없이 발휘했다.
이렇게 난도질된 광복절, 누더기가 된 광복의 의미를 되찾으려면 다시 얼마나 시간이 걸려야 할까, 참으로 답답하다.
조국은 2년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겨우 8개월만 복역했다. 뭐 대단하게 고난의 시간을 보낸 것처럼 생색 냈지만 형기의 절반도 채우지 않고 사면된 것이다. 운동도 하고 책도 쓰며 알뜰하게 보낸 듯하다. 책으로 돈도 많이 벌었다. 그가 옥중에서 출간한 책은 ‘조국의 공부’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 조정래 작가의 추천이라는 문구가 제목보다 도드라져 보였다. 실제 문재인 전 대통령은 이 책을 추천하면서 조국의 공부가 우리 모두의 공부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면 우리 사회가 더 살 만한 세상이 될 것이라고 부연한다. 안타깝게도 나는 이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
조국 본인은 공부가 더 필요하다. 자기가 뭘 잘못하고 있는지, 뭘 해야 하고 뭘 하면 안 되는지 배워야 한다. 거창하게 검찰개혁이니 민주주의니 이런 거 말고, 그냥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도리와 염치를 먼저 공부했으면 한다. 이것이 기반이 되지 않은 조국의 공부는 우리 사회에 위험 요소일 뿐이다. 양심 없이 지식과 요령만 가득한 사람은 사회로부터 격리되는 것이 맞다. 그를 광복절에 풀어준 일은 부끄러운 역사로 남을 것이다.
이낙연 저서 '대한민국 생존전략' (사진=연합뉴스 자료사진)
평산책방은 절대 소개하지 않지만, 지금 우리나라에 꼭 필요한 주제를 다룬 책이 있다.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대한민국 생존 전략’이다.
지금 우리나라에게 가장 절실하면서도 취약한 것이 ‘외교’다. 국제 정세 속에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 같은 시절이다. 아주 작은 국제적 사건에도 우리 경제는 출렁인다. 발가벗겨진 것처럼 국제관계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주변국의 역학관계에 가장 민감해야 할 운명을 타고 났다. 역사적 위기는 우리의 눈이 국내에 머물렀기 때문인 경우가 많았다. 중국과 일본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움직이는지 모른 채, 그저 당파싸움에 혈안이었던 결과가 얼마나 참혹했던가? 운명적으로 우리가 가장 관심이 있어야 하고, 집중해서 공부해야 할 필수 분야가 바로 외교다. 우리의 광복도 사실 국제 정세의 산물이다. 뭐 그냥 하늘에서 툭 떨어진 것이 아니다. 그 광복절에 이 무슨 해괴한 일인가?
국내용 정치인들이 범람하고, 국내 정치가 외교와 경제를 눌러 버리는 현실, 그 대가는 우리 미래 세대가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이 개탄스럽다. 입시 비리 잡범의 옥중 편지가 권장 도서가 되는 반면, 전 국무총리의 국가를 향한 고뇌와 충언을 외면하는 국가,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이런 나라에게 미래가 있겠는가?
김성훈 변호사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사에 14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당연한 주장 보기가 어렵습니다
속시원한 비판이지만 내용은 속터지네요.
어디서부터 잘못 된 걸까요.
답답하지만 이 시기도 곧 지나겠지요.
상식적인 시대가 빨리 도래하길 기원합니다.
올해 광복절 참으로 역사에 오명으로 남을 날이었습니다. 사면대상이 절대 아닌 자들에게 날개를 달아주고 위안부 할머니들에게는 더큰 설움을 주었네요. 그분들의 억울함을 어찌 풀어 드릴수 있을까요? 글 잘 읽었습니다.
기본적 도리와 염치를 배워야 한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그쵸. 광복절 사면은 대국민 메시지죠.
좋은 글 감사합니다.
너무 공감되는 글입니다.
광복절에 큰 모욕을 당했습니다. ㅠ
너무나 내마음을 대변하는 글입니다
범죄자들의 세상이 되었다는게 너무 슬프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