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상주의 자리, 총리의 자리
  • 김선 논설위원
  • 등록 2026-01-31 22:35:55

  • 모친상에도 국무회의를 주재했던 이낙연 전 총리의 일화
  • 문재인대통령개헌안을 위해 모친상 당일에도 정상출근
  • 공직의 도리가 땅에 떨어진 지금, 왜 부끄러움은 우리의 몫인가

이낙연 전 총리는 총리 재직 시기이던 2018년 3월 25일에 모친상을 당했다. 이 전 총리의 모친 진소임 여사는 어려운 형편 속에서 7남매를 키우기 위해 갖은 노동을 다 했다. 가난한 살림 탓에 어머니는 새벽마다 6km 거리를 걸어 채소를 팔았다. 추운 겨울에도 법성포 해변으로 나가 게를 잡아 반찬으로 내놓았다. 집안 일과 노동에 온 몸이 아파도 학교 가는 자식들을 보면 배가 불렀다는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이 전 총리에게 정치적 스승이고 길잡이였다. 열린우리당 창당 때 노무현 대통령이 신당 동참을 권유하고 장관직 제의도 했었지만 이낙연은 결국 가지 않았다.  시골에 계신 어머니가 전화를 걸어 “나다. 신당 가지 마라. 사람이 그러면 못쓴다. 길게 봐라." 라고 강하게 만류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어머니는 먼저 태어난 아들 둘이 요절한 탓에 장남이 된 이낙연을 특히 아꼈고 이 전 총리는 성인이 된 후에도 기회 있을 때 마다 모친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표현하곤 했다. 이 전 총리는 2006년에 팔순을 맞은 어머니를 기념하기 위해 형제들과 함께 <어머니의 추억> 이라는 수필집을 냈다. 


2018년 3월 26일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이낙연 전 총리. (사진: 동아일보) 

이렇게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지극했던 이 전 총리가 모친의 별세 다음 날 아침에 정부청사로 정상 출근해 국무회의를 주재한 건 그의 처신에 대한 여러 미담 중 꽤 알려진 이야기다. 그런데 이 전 총리가 굳이 그렇게 했던 이유, 그 날이 그에게 모친상 만큼 중요했던 이유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통상 매 주 화요일 오전에 열리는 '국무회의' 는 한 번은 청와대에서 대통령이, 또 한 번은 정부청사에서 총리가 주재한다. 그런데 2018년 3월 넷째 주에 대통령은 UAE 순방 중이었고 총리가 국무회의를 주재할 순서였다. 만약 이낙연 총리가 모친상으로 향한다면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주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 날(3월 26일) 국무회의의 안건은 바로 문재인정부가 발의한 '개헌안 의결' 이었다. 문재인정부는 촛불 민심을 받들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극복하고, 민주주의를 강화하기 위해 개헌안을 발의했다. 1980년 5공화국 개헌 이후 38년 만의 대통령 개헌안 발의였다. 이 총리는 그렇게 중요한 일이고 중요한 날이기 때문에 반드시 본인이 회의를 주재해야 한다고 했다. 


"대통령께서도 국내에 안 계셨고, 내가 자리를 비우면 홍남기 부총리가 회의 주재를 해야 했는데, 잘 하겠지만 경제부총리가 '개헌안'의결을 하는 국무회의를 주재하게 한다는게 내키지가 않았어요. 내가 해야지."


이 전 총리의 모친 진소임 여사는 3월 25일에 92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이 총리는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고 다음 날인 26일 아침에 평상시와 같이 청사로 출근했다. 그리고 오전 10시에 검은넥타이 차림으로 국무회의를 주재해 대통령 개헌안을 의결했다. UAE에서 일정 중이던 문재인 대통령은 국무회의 의결을 보고받았고 당일 오후에 전자결제로 국회에 송부하고 공고를 승인했다. 


2018년 3월에 발의된 제10차 개헌, 문재인대통령개헌안은 실현되진 못했지만, 1987년 체제 이후 30년 만에 국가의 틀을 바꾸려는 구체적인 청사진을 대통령이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국민의 기본권 강화와 5·18 정신 계승 등 정파를 뛰어넘어 흔들림 없이 추구해야 할 미래 가치를 공론장으로 끌어올렸고 향후 개헌 논의의 이정표를 세운 중요한 시도였다. 


모친상 빈소에서 이낙연 총리와 가족들. 뒤로 문재인 대통령의 조화가 보인다. (사진: 연합뉴스)

이 전 총리는 국무회의를 마치고 곧바로 모친의 빈소로 향했다. 실은 그 전 주에도 브라질 방문 중에 모친의 상태가 위급해졌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일정을 다 마치고 귀국했다. 이낙연 전 총리는 모친상 부고를 내지 않았으며 조의금을 받지 않았다. 조화는 대통령과 5부 요인을 제외하고는 모두 돌려보냈다. 


삼가하고 절제하는 공직자의 도리랄까. 한 때는 그런 처신이 당연한 줄 알았다. 공직자라면 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한 고위공직자의 미담을 전하는 것으로 이 글을 끝내면 좋겠지만 참다 못해 첨언하면, 고위직에 오르자마자 자식 결혼 청첩장, 부모상 부고를 온라인으로 돌리는 요즘의 공직자들의 행태가 말이 되는 것인지 묻고 싶다. '누구누구가 축의금과 조의금을 수억씩 받았다'는 찌라시가 돌고, 화환까지 모두 받아 장례식장과 국회에 몇 바퀴를 돌린 이들이 무슨 염치로 나랏일을 한단 말인가. 

게다가 일국의 총리가 어떻게 5일 장 내내, 한 정치 원로의 상가에서 상주 노릇을 할 수가 있나. 공직의 무게도, 염치도 모르는 사람들은 따로 있는데 왜 내가 이렇게 부끄러운 것일까. 대체 지금 누가 정치를 하고 리더 행세를 하고 있나. 참 모든 것이 까마득하다.







프로필이미지

김선 논설위원 다른 기사 보기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로그인

댓글 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이 기사에 11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 프로필이미지
    lrrp04712026-02-02 18:03:01

    기사 잘 읽었습니다. 미약하나마 원고료 보냅니다.

  • 프로필이미지
    guest2026-02-02 16:13:42

    제일 윗대가리가 섞었는데 밑에 공무원들 한테 공무원다움을 강조하니. 민주당과 이재명 범죄에 눈 감고 오로지 연예인과 국힘만 욕하면  깨어있는 시민인줄 아는 개딸들도 너무 한심하다. 부도덕한 정권이 받을 지지율이 아니다

    더보기
    • 삭제
  • 프로필이미지
    guest2026-02-02 16:09:08

    전과가 없으면 공직자가 못 되는 가묘한 세상

    더보기
    • 삭제
  • 프로필이미지
    guest2026-02-02 16:09:08

    전과가 없으면 공직자가 못 되는 가묘한 세상

    더보기
    • 삭제
  • 프로필이미지
    ddongong2026-02-02 15:57:57

    공직의 무게는 내 던지고 촐싹거리는 인물들만 보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 프로필이미지
    guest2026-02-01 12:59:25

    공직의 무게는 커녕 개념도 없는 것들입니다.

    더보기
    • 삭제
  • 프로필이미지
    guest2026-02-01 11:05:29

    마자요

    더보기
    • 삭제
  • 프로필이미지
    guest2026-02-01 10:39:00

    삼가하고 절제하는게 공직자의 도리라고 저는 여전히 생각합니다. 마땅히 공직자라면. 저래야 하는줄 알고 살았건만. 이젠 저런 공직자 찾아보기가 하늘의 별따기라는것이 정말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더보기
    • 삭제
  • 프로필이미지
    guest2026-02-01 09:15:11

    더보기
    • 삭제
  • 프로필이미지
    guest2026-02-01 04:49:05

    정말 이낙연 같은 최고의 정치인을 내치고 양아치 범죄자를 선택한 국민들. 안타까운 현실이죠. 기사 감사합니다.

    더보기
    • 삭제
  • 프로필이미지
    guest2026-02-01 00:40:10

    공직자로 이 분 같은 분 찾아보기 힘든 시절이네요.
    아깝고 아깝고 아깝다는 생각만.
    이렇개 완벽에 가까운 큰인물을 두고
    아수라 지옥을 체험하는 현실

    더보기
    • 삭제
아페리레
웰컴퓨터
많이 본 뉴스더보기
  1. [칼럼] 국가는 '평론'하는 곳이 아니라 '조율'하는 곳이다 어제 29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은 현대차 노조가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의 생산 현장 투입을 막아선 사태를 정조준하고 있었다. 그는 기술의 파도를 "거대한 수레"에 비유하며 "피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19세기 영국 노동자들의 기계 파괴 운동인 '러다이트'까지 소환해 "어차피 올 세상이니 적응하...
  2. [심혈관] ‘파멸(វិនាសអន្តរាយ)’을 배달한 대통령, 당장 휴대폰을 빼앗아라 이재명 대통령의 가벼운 입이 결국 국제 무대에서 대형 사고를 쳤다. 캄보디아 내 범죄 조직을 소탕하겠다며 현지어로 올린 SNS 메시지가 주권 침해 논란을 일으키며 캄보디아 정부의 공식적인 항의를 부른 것이다. 대통령실은 “홍보가 다 돼서 지웠다”는 유체이탈 해명을 내놨지만, 실상은 타국 언론의 뭇매를 맞고 대사가 불려 나..
  3. [칼럼] 서민의 '단맛'까지 세금으로 뺏겠다는 가혹한 위선 이재명 대통령이 SNS에 “담배처럼 설탕 부담금으로 사용을 억제하자”고 띄우자마자, 민주당 이수진 의원이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일사천리다. 명분은 그럴듯하다. 비만과 당뇨를 막기 위해 설탕 들어간 음료에 ‘부담금’을 물리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보통 ‘설탕세(Sugar Tax)’라고 부른.
  4. 이재명은 집 팔라는데 시아버지 유언이라 못 판다는 민주당 "국민은 파는 게 유리할 것" 협박하는데... 민주당 의원들은 "사정 있어 못 판다" 버티기 "세입자 걱정돼서" 기상천외 변명까지"시아버지 유언이라서" 못 판다이재명 대통령이 다주택자를 향해 "버티는 것보다 파는 것이 유리할 것"이라며 사실상 '최후통첩'에 가까운 압박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국정 운영의 한 축인 더불어민주당 소.
  5. 상주의 자리, 총리의 자리 모친상에도 국무회의를 주재했던 이낙연 전 총리의 일화. 문재인대통령개헌안을 위해 모친상 당일에도 정상출근해 개헌안을 의결하고 빈소로 향해. 지금의 공직자들은 대체 무엇에 복무하고 누구를 위해 일하나.
  6. [칼럼] 권력은 고발하고, 경찰은 무혐의라 하고, 나는 쓴다 휴대전화가 울리길 기다렸다. 민주당이 나를 이재명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한 건에 대한 수사 결과가 나올 때가 됐기 때문이다. 기소면 기소, 무혐의면 무혐의, 통보가 올 줄 알았다. 그런데 연락이 없었다. 혹시나 해서 형사사법포털에 들어가 봤다. 사건은 이미 지난 1월에 종결돼 있었다. ‘불송치(혐의없음)’. 피식하고 웃음...
  7. [심혈관] "돈이 더 들어와 놀라셨죠~?' 김경, '피싱후원'의 새 장르 개척 최근 경찰 수사를 통해 드러난 김경 전 서울시의원의 이른바 '계좌 세탁' 수법은 가히 창의적이기까지 하다. 아르바이트생에게 급여를 보낸다며 90만 원 대신 900만 원을 입금한 뒤, "실수로 0을 하나 더 붙였으니 차액을 다른 계좌로 돌려달라"고 요구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그 '반환 계좌'의 주인은 다름 아닌 더불어민주당 국...
  8. 거짓으로 쌓은 권력의 몰락 : 제프리 엡스틴의 범죄와 죽음 작은 사기꾼, 결국 희대의 범죄자가 되다 제프리 엡스틴의 도약은 1970년대 중반 뉴욕의 금융회사 베어스턴스에서 시작된다. 대학을 중퇴했던 그는 인맥을 통해 명문 사립학교 돌턴스쿨의 수학교사로 채용되었고 그곳에서 만난 학부모이자 베어스턴스 의장이었던 에이스 그린버그의 눈에 들어 월스트리트에 입성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
  9. "출장 접고 와라" 이재용 팔 비틀어 받아낸 300조… 李정부의 '청구서 정치' "출장 접고 와라" 이재용 팔 비틀어 받아낸 300조… 李정부의 '청구서 정치' '실용' 가면 쓴 이재명식 관치 경제의 민낯"해외 일정을 취소하고 오셨다면서요?" (이재명 대통령) "당연합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지난 4일 청와대 영빈관. 이재명 대통령의 물음에 이재용 회장은 고개를 숙였다. 겉으로는 화기애애한 '원팀&#.
  10. [칼럼] 1억 성과급보다 빛난 '피자 10판'의 품격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는 종종 삭막하다. 연봉을 비교하며 서로를 깎아내리거나, 회사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배설의 공간이 되곤 한다. 그런데 최근 그 차가운 액정 화면 위로, 유독 온기가 느껴지는 글 하나가 올라왔다. 제목은 ‘오늘 자랑 좀 할게. 나 돈 좀 쓰고 왔어’.글쓴이는 SK하이닉스 직원이다. 회사가 47...
후원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