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블라인드에 올라온 A씨의 사진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는 종종 삭막하다. 연봉을 비교하며 서로를 깎아내리거나, 회사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배설의 공간이 되곤 한다. 그런데 최근 그 차가운 액정 화면 위로, 유독 온기가 느껴지는 글 하나가 올라왔다. 제목은 ‘오늘 자랑 좀 할게. 나 돈 좀 쓰고 왔어’.
글쓴이는 SK하이닉스 직원이다. 회사가 47조 원이라는 사상 최대 실적을 내면서, 직원들은 1억 원이 넘는 성과급을 받게 됐다.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목돈이다. 보통이라면 명품 가방을 샀다거나 차를 바꿨다는 자랑이 올라올 법한 시점이다. 하지만 그의 선택은 달랐다.
그는 성과급을 받자마자 세종시의 한 보육원을 찾았다. 피자 10판과 과일, 그리고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견과류를 종류별로 사서 전달했다. 미리 전화를 걸어 무엇이 필요한지 묻는 세심함도 잊지 않았다.
그가 남긴 소회는 단순한 기부 인증을 넘어선, 깊은 울림이었다.
사진 : 블라인드에 올라온 A씨의 사진
“갔다 오니까 행복하면서도 너무 슬픈, 그런 복잡한 마음이 든다.”
그는 자신의 학창 시절이 너무 힘들었기에, 취업하면 꼭 보육원에 기부하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그 약속을 지켰다는 뿌듯함 뒤로, 여전히 어려운 환경에 놓인 아이들을 보며 느낀 ‘미안함’과 ‘슬픔’이 밀려온 것이다. “나도 아이를 키우다 보니 더 마음이 쓰였다”는 그의 고백은, 돈을 쓰는 행위가 과시가 아니라 ‘공감’일 때 얼마나 아름다워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사람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성과급 500% 더 받아라”, “마인드만큼은 워런 버핏보다 더 부자다”, “너의 남은 인생에 따뜻한 온기가 가득하길 바란다”는 축복의 댓글이 줄을 이었다. 삭막한 경쟁 사회에 지친 사람들이, 이 직원의 따뜻한 마음씀씀이에서 도리어 위로를 받은 것이다.
돈은 차갑다. 하지만 그 돈을 쓰는 사람의 손길에 따라 온도가 바뀐다. 그가 건넨 것은 단순한 피자와 과자가 아니었다. “혼자가 아니다”라는 위로였고, “나도 힘들었지만 이렇게 일어섰다”는 무언의 격려였다.
1억 원이라는 숫자는 통장에 찍히는 순간 그저 ‘자산’이 되지만, 그것이 이웃을 위해 쓰이는 순간 ‘가치’가 된다. “오늘 처음으로 돈을 돈답게 쓴 기분”이라던 그의 말처럼, 돈의 주인은 그것을 움켜쥔 사람이 아니라, 그것으로 누군가의 눈물을 닦아준 사람이다.
세상이 어지럽고 경제가 팍팍하다고들 한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땀방울을 이웃과 나누는 이런 평범한 영웅들이 있기에, 대한민국은 아직 살 만하다. 47조 원의 영업이익보다 더 빛나는 건, 피자 10판에 담긴 그 직원의 따뜻한 포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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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현 칼럼니스트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