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팡 인증한 조국, 이번엔 대형마트도 탈퇴할까?
격투기 경기중 상대를 마주할 때 가장 비겁한 행동은 상대의 뒤통수를 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세운 규칙을 스스로 어기며 관객을 기만하는 것이다. 사실 이 땅에서 민주당과 진보가 관여한 유통 정책의 역사는 한 편의 거대한 '내로남불' 서사시와 다름없다.

그 서사의 정점에는 최근 벌어진 기괴한 퍼포먼스가 있다. 쿠팡 심야노동 및 정보유출 이슈가 불거지자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를 비롯해 민주당 의원들과 이른바 ‘개념 셀렙’들은 기다렸다는 듯 SNS에 ‘탈팡(쿠팡 탈퇴) 인증샷’을 올렸다. 스마트폰 화면 속 회원 탈퇴 버튼 하나로 그들은 노동자의 인권을 수호하고 거대 자본의 횡포에 맞서는 도덕적 투사가 되었다. 하지만 이 화려한 세리머니 뒤편의 진실은 민망하기 그지없다. 정의로운 탈퇴를 선언한 의원실 문 앞에 여전히 쿠팡 박스가 쌓여 있다는 목격담은 링 위에서 반칙을 쓰지 말라고 고함을 지르던 선수가 코너에서 몰래 금지된 약물을 들이키다 걸린 장면을 연상케 한다.
이들의 '탈팡'이 비논리적인 코미디로 읽히는 이유는 그들이 지난 14년간 견지해온 고집스러운 규제 철학 때문이다. 민주당과 진보 진영은 2012년부터 ‘전통시장 보호’라는 명분 아래 대형마트의 팔다리를 묶어왔다. 월 2회 의무휴업과 심야 영업 제한은 그들이 내세운 성역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대형마트라는 '골리앗'을 억제하는 사이 그 공백을 파고든 것은 온라인 플랫폼이었다. 정치가 오프라인 유통의 손발을 묶어둔 14년은 역설적으로 쿠팡이 아무런 방해물 없이 전력 질주하여 시장을 독식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헌납한 셈이다. 자신들이 키운 괴물이 비대해지자 이제 와서 '탈퇴 인증'이라는 값싼 면피용 퍼포먼스를 벌이는 모습은 무책임의 극치다.
더욱 기막힌 모순은 이제부터다.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쿠팡’을 두 번이나 언급했고 총리는 마피아잡듯이 쓸어버리라고 했다. 국정원, 검찰, 국세청, 공정위 등 대한민국 모든 사법,행정 기관이 총집결했다. 민주당은 ‘쿠팡 바로잡기 TF’도 출범시킨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미국 부통령이 직접 이 사태를 언급하고 미국 하원 법사위에서 쿠팡 로저스 대표를 소환하겠다고 하자 이들은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민주당은 돌연 대형마트의 새벽배송을 허용하겠다고 선언했다. 한때는 새벽배송을 ‘2급 발암물질’이라 부르며 노동자의 건강권을 위협하는 악으로 규정하더니, 이제는 쿠팡이라는 괴물을 잡기 위해 대형마트라는 또 다른 대자본의 손을 빌리겠다고 한다. 이는 자신들이 향유하던 ‘밤의 편리함’은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욕망의 고백이자 그동안 소상공인을 볼모로 잡았던 명분이 얼마나 얄팍했는지를 스스로 폭로하는 꼴이다.
묻고 싶다. 쿠팡을 탈퇴했다는 조국 대표와 그를 추종하던 진보셀렙들은 이제 정말 장바구니를 들고 전통시장 바닥을 밟으며 상인들과 흥정할 마음이 있는가?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에는 불편을 기꺼이 감수하며 골목 구멍가게를 찾아다니겠는가? 대형마트도 새백배송을 할텐데 탈퇴를 할 것인가?
조지 오웰은 1984에서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고 썼다. 좌파진보들은 자신들이 망쳐놓은 유통 생태계의 과거를 지우기 위해 '새로운 악역'을 설정하고, 자신들의 내로남불을 '시대의 변화'라는 말로 세탁하려 한다. 하지만 무너지고 텅 빈 전통시장의 풍경은 결코 그들의 변명을 용납하지 않는다.
장바구니는 무겁다. 하지만 위선은 그보다 훨씬 더 무겁게 우리 사회의 신뢰를 짓누른다. 쿠팡을 탈퇴하든 마트를 가든 그것은 개인의 자유다. 그러나 그 자유를 '정의'라는 이름으로 억압하며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 했던 이들은, 이제 자신들이 묶어놓았던 대형마트의 빗장이 풀릴 때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다.
혹시 그때도 슬그머니 스마트폰으로 장바구니를 채우며 "이것은 합리적 소비"라고 우길 것인가. 관객들은 이제 안다. 누가 진정으로 민생을 고민하는지 그리고 누가 화려한 가운 뒤에서 비겁한 퇴장을 준비하고 있는지를 말이다.
김남훈
김남훈 기자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