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치사의 기록적 압승: 465석 중 316석 확보
1월 23일 중의원 해산 이후 2월 8일 투개표가 실시된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이끄는 자유민주당(자민당)이 단독 316석을 확보하며 역사적인 성적표를 거머쥐었다. 이는 1986년 나카소네 총리의 300석 기록을 40년 만에 갈아치운 수치로, 현행 일본의 소선거구제 도입 이후 한 정당이 거둔 최다 의석이다. 직전의 이시바 정권 당시 자민·공명 합계 215석에 그치며 과반 확보에 실패했던 것과 비교하면, 일본 정치 지형이 단숨에 보수 우위로 재편된 것이다.
지난 1월 19일, 중의원 해산과 관련하여 수상관저에서 기자회견을 가지는 다카이치 총리. (사진: 자유민주당 홈페이지)
다카이치 신드롬
이번 승리의 일등 공신은 다카이치 총리 본인의 압도적인 인기였다. 다카이치 총리도 자신의 스타성을 십분 활용해 전국을 돌며 활발한 지원유세를 펼쳤다. 유세 도중 지지자가 손을 강하게 끌어당겨 지병인 관절염이 악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손에 테이핑을 하고 유세를 이어간 '부상 투혼'이 이슈가 되기도 했다. 특히 정치에 무관심했던 2030 세대에서 지지율이 90%에 육박할 만큼 폭발하며 일본 사회에 '다카이치 신드롬'을 일으켰다. 다카이치 총리가 착용한 옷과 가방이 화제가 되며 완판되는 등 일본 최초 여성총리에 대한 대중의 호감은 컸다. "연립 과반 미달 시 즉시 퇴진"이라는 배수의 진을 쳤던 승부수 또한 통했다. 대부분의 지역구에서 자민당 후보자들은 2, 3위와 큰 득표차를 보여주며 무난하게 당선됐다.
선거 일주일차, 나가노현에서의 거리 유세 중 구급차의 원활한 환자 이송을 위해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고 두 손을 모아 유세를 이어가는 다카이치 총리. (왼쪽) 선거 5일차, 가나가와현에서의 연설 후 퇴장하는 총리를 배웅하는 인파. (오른쪽) (사진: 자유민주당 홈페이지)자민-공명 결별, 유신회와의 새 파트너십 성공
기존 공명당과의 연립정부를 구성했던 지난 26년간, 연립여당은 '비례는 공명당, 지역구는 자민당' 방식으로 선거구 조정을 해 왔으나 이번에 유신회와의 연립에서 자민당은 이를 과감히 생략하고 정면 승부를 선택했다. 자민당은 285개 지역구에 출마했으며 유신회도 주요 지지기반인 오사카부를 중심으로 한 87개 지역구에 후보를 냈다. 이것은 선거 상황에서도 연립이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안정감과 무난히 다수 의석을 차지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전략이었다. 그 결과 자민당은 표면상 목표로 제시했던 과반 의석(233석)을 가볍게 돌파하여 단독으로 개헌 발의가 가능한 3분의 2의석(310석) 을 뛰어넘는 316석을 확보했으며 단순히 선거에서의 승리를 넘어선 '부활'로 평가될 정도로 대약진했다.
선거 1일차, 도쿄도 아키하바라에서의 공동유세에 나선 다카이치 총리 (중앙). 양쪽에는 각각 유신회의 요시무라 대표 (왼쪽), 후지타 공동대표 (오른쪽) 가 함께 유세에 참여했다. (사진: 자유민주당 홈페이지)
제1야당과 진보•혁신정당의 몰락, 보수정당의 약진
이번 총선은 총체적인 '보수의 승리' 로 볼 수 있다. 진보, 혁신 색채를 띄고 반 자민당을 내세웠던 소수정당들이 몰락하고 자민당 1극 체제로의 쏠림 현상이 강화되었다.
자민당 총재선 직후 연정을 탈퇴한 공명당은 입헌민주당과 손을 잡아 '중도개혁연합'을 창당하여 '중도'라는 기치 아래 반자민 연합의 승리를 꾀했지만 선거 전의 172석에서 49석으로 추락하며 기록적인 참패를 당했다. 중도의 간부 다수와 56년간 선거 무패의 신화를 이어오던 일본 정치 원로 오자와 이치로가 이번에 낙선한 것이 상징적이다. 일본공산당과 사회민주당 같은 소수정당 또한 자민당과 다카이치 열풍에 이번 선거에서 아예 의석을 획득하지 못하는 등 궤멸에 가까운 성적을 냈다. 그동안 공산당과 사민당 등은 '소비세 폐지'나 '방위비 감액' 등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워 자민당 독주에 싫증난 젊은 층과 서민층의 지지를 얻어왔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다카이치 총리가 '식료품 소비세 2년간 면제'와 '21조 엔 규모의 대규모 경제 대책' 이라는 파격적인 공약을 내걸어 소수당이 가졌던 정책적 참신성과 선명성을 다 가져가 버렸다. 반면 소수당 중에서도 강경한 보수 색채인 참정당은 의석을 늘리며 선전했다.
선거 4일차, 아이치현에서의 거리 유세에 나선 사이토 데쓰오 (왼쪽), 노다 요시히코 (오른쪽) 공동대표. (사진: 사이토 데쓰오 공식 X)
다카이치 총리의 과제: '강한 일본'과 빨라진 '개헌' 시계
총선에서 기록적인 압승을 거둔 다카이치 총리는 이번 선거의 슬로건인 "일본 열도를 강하고 풍요롭게"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색채를 확고히 할 전망이다.
한일관계에 미칠 영향: 협력과 냉각의 아슬아슬한 동행
한국 입장에서는 안보 협력과 역사적 갈등이라는 이중적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다카이치 정권은 대중국 견제를 위해 한국과의 안보·경제 협력에는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나, 이와 별개로 개헌 추진 과정에서 터져 나올 이슈들은 언제든 한일관계를 급속도로 냉각시킬 뇌관이다. 때문에 이번 일본 총선 이후 한일관계는 표면적인 협력 속에서 큰 변화를 맞이할 우려가 크다.
김선 논설위원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