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7차 아세안 정상회의 (AFP 연합뉴스)
리더십은 편안한 연설대가 아니라 불편한 협상 테이블에서 증명된다. 지지자들의 환호가 아니라 적대자의 날 선 눈빛 앞에서 그 진정한 가치가 드러난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지금 말레이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재명 대통령의 외교는 리더십의 완전한 파산을 선언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외교가 아니라, 국익을 인질로 잡고 벌이는 한 편의 비겁한 도주극이다.
무대는 말레이시아 아세안(ASEAN) 정상회의. 며칠 뒤 APEC에서 마주할 도널드 트럼프가 그곳에 있었고, 다들 알지만 우리와 미국의 협상 테이블 위에는 3,500억 달러짜리 관세 협상의 운명이 놓여 있다. 이런 절체절명의 순간, 이재명 대통령은 트럼프가 주재하는 실무 만찬 대신 한인 동포 간담회장으로 숨어들었다. 이것은 외교적 선택이 아니라 명백한 책임의 방기다.
이재명 대통령, 말레이시아 동포간담회 참석 (연합뉴스)
물론 조만간 한국 땅에서 열릴 APEC에서는 어차피 트럼프를 마주할 수밖에 없다는 안일한 계산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이번 방문의 목적은 더욱 명확했어야 했다. 동맹이 흔들린다는 평가가 나오는 바로 이 민감한 시점이야말로, 공식 회담 이전에 단 한 번이라도 더 얼굴을 마주하고 인간적 교감을 쌓는 '스킨십 외교'가 절실한 순간이 아니었던가. 만약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면, 대체 무엇 때문에 국민의 혈세를 써가며 1박 2일의 강행군으로 말레이시아까지 날아갔는지 그 이유를 설명할 길이 없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라는 구호가 가장 공허하게 들리는 곳을 꼽으라면, 단연코 정글 같은 정치판일 것이다. 특히 자신의 사법 리스크를 막기 위해 집권당을 방패 삼아 사법부의 근간을 흔드는, 삼류 국가에서나 볼 법한 장면들이 바로 날마다 국회에서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그런 현실을 등 뒤에 두고, 그는 교민들 앞에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다짐했다. 그 말을 듣는 교민들의 심정은 과연 어땠을까.
솔직히 말해,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은 이미 문화예술인들이 세계 무대에서 충분히 잘 만들어내고 있다. 대통령이 할 일은 그들의 성과에 숟가락을 얹는 것이 아니다. 제발, 가랑이를 기든 맞서서 허세라도 부리든, 트럼프와 자신의 사법 리스크 앞에서 스스로나 좀 당당해져라. 그들이 애써 쌓아 올린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에 더 이상 누를 끼치지 않는 것, 그것이 대통령이 해야 할 최소한의 도리다.
이 한심한 도주극은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지난 UN 총회에서도 그는 트럼프가 주최한 만찬을 외면하며 똑같은 행태를 보였다. 이것은 실수가 아니라, 그의 본질에 새겨진 비겁한 패턴이다. ‘국익을 위해 가랑이도 기겠다’던 호언장담이 왜 그토록 기만적으로 들리는가. 트럼프 앞에만 서면 각 잡힌 이등병처럼 굳어버릴 스스로를 너무 잘 알기에 벌인, 예측된 도피로밖에 안보이기 때문이다.
이 도망의 대가는 참혹하다.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적 안위를 지키기 위해 말레이시아의 안전지대에서 시간을 죽이는 동안, 관세 폭탄의 뇌관은 타들어 가고 있다. 일본과 유럽의 경쟁자들은 이미 미국과의 협상을 끝내고 우리 기업의 숨통을 조인다. 수많은 협력업체들은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고, 1400원대의 환율은 경제의 기초체력을 좀먹는 암세포처럼 번져간다. 이 모든 것이, 대통령 한 사람의 '불편하지 않을 권리'를 위해 국민과 기업이 받아 든 청구서다.
대통령의 침실이 편안하다고 해서 국가의 밤이 평안한 것은 아니다. 지금 이재명이 피하고 있는 것은 트럼프 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서 마땅히 짊어져야 할 책임의 무게, 국익을 위해 감수해야 할 정치적 위험 그 자체로부터 도망치고 있다.

박주현 칼럼니스트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사에 6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회피형 무능력 최고다 최고
하루빨리 끌어내야하는데 진짜 미치겠네요
우리나라 어쩌나요...저런 게 대통이라니
안 방에서 밥상만 뒤엎을 줄만 알고 나가서는 찍소리도 못하는.
미국이 정상회담 장소를 경주가 아닌 부산으로 발표한 것도 있고..핵심은 미중관세협상의 골든타임 이기도 해서 여자저차 핑계대고 안방 에서도 도망 다닐것 같은데요
"대통령의 침실이 편안하다고 해서 국가의 밤이 평안한 것은 아니다. 지금 이재명이 피하고 있는 것은 트럼프 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서 마땅히 짊어져야 할 책임의 무게, 국익을 위해 감수해야 할 정치적 위험 그 자체로부터 도망치고 있다. "
UN에 이어 ASEAN 트럼프 주최 만찬도 불참했군요?
이재명의 본질을 봅니다. 국가와 국민의 비극입니다.
국사에 그의 출현이 참사가 되지 않기를 빌 뿐입니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