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에게 보좌진은 그림자이자 가장 가까운 정책 파트너다. 보좌진은 의원이 개인적으로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국회사무처에서 세금으로 급여를 받는 엄연한 공무원이다.
그러나 상당수의 의원들이 보좌진을 개인집사나 하인처럼 부리고 있다. 가족의 심부름을 시키고, 집의 프린터, 심지어 ‘변기 수리’를 지시하고 입에 담지 못할 폭언에 불법적인 일을 시키는 등 ‘갑질’ 에 대한 증언이 계속 터져 나오고 있다. 그런 의원들도 한 때는 전문성과 정의감으로 국민과 민생을 외치며 국회에 들어왔을 터, 한 때 멀쩡했던(최소한 그래보였던) 이들은 왜 저토록 안하무인으로 변하는 것일까?
인사청문단 사무실로 출근하는 이혜훈 전 의원, 인턴직원에 대한 갑질 폭언과 보좌직원들에 대한 다양한 갑질, 재산증식 과정에서의 불법 의혹이 터져나오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1. 권력은 '공감 회로'를 끄는 스위치다
심리학자 대커 켈트너(Dacher Keltner)는 20년간의 연구 끝에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마치 '외상성 뇌 손상' 환자처럼 행동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권력을 얻으면 타인의 감정을 읽고 상황을 살피는 '미러 뉴런(Mirror Neuron)' 계통의 활동이 현저히 줄어든다는 것이다. 특히 뇌의 안와전두피질(Orbitofrontal Cortex) 에 변화가 생긴다. 이곳은 사회적 적절성을 판단하고 타인에 대한 공감을 조절하는 곳인데, 권력이 비대해지면 이 기능이 마비된다. 한 마디로 남의 ‘눈치’를 보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손상이 지속되면 타인을 '인격체'가 아닌 자신의 목적을 위한 '도구'로 보게 되며, "내가 이 정도 위치인데 이쯤이야 어때?"라는 특권의식에 젖게 된다.
권력 중독에 의한 안와전두피질 손상을 설명하는 개념도. 타인의 감정을 읽는 미러 뉴런은 마비되고 사람을 자신을 위한 '도구' 로 인식하게 된다.
최근 정치권에서 파묘되는 '갑질'은 권력에 의한 뇌 손상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그 권력을 감당할 인격적 기초 체력이 바닥난 미성숙의 발로다. 성인이 되었지만 인격이 성숙되지 않고, 내면의 열등감을 해소하지 못한 이들이 갑자기 권력을 쥐었을 때 뇌의 공감 회로는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훨씬 더 빠르고 처참하게 무너져 내린다.
*감정의 전이 차단: 타인의 감정을 읽는 감각이 둔해진다. 어쩌면 그럴 필요를 못 느끼는 것일지도 모른다. 의원은 자신의 분노를 폭언과 표정으로 보좌진에게 쏟아내면서도, 그가 느낄 모멸감에는 무감각해진다. 상대의 감정보다는 자신은 ‘이렇게 해도 되는 사람’ ‘ 나는 나랏일을 하는 중요한 사람’ 이라는 특권의식이 우선되기 때문이다.
*충동 조절 장애: 화를 참지 못하는 것은 전두엽 기능이 약화되면서 가장 두드러지는 변화다. 참아야 할 순간에 폭언(“내가 널 죽였으면 좋겠다!”)을 내뱉거나, 공적 자원을 사적으로 유용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사라진다. 심하면 다른 사람들 앞에서 고성을 지르며 분노를 표출하는 몰상식한 사태가 벌어진다. 내가 만난 시민단체 출신 국회의원은 자기가 배정받은 방한용 유세점퍼의 사이즈가 맞지 않다며 행사장에서 그것을 갈기갈기 찢어 보좌관에게 던지기도 했다.
*규범 무시: 종종 국회의원이나 고위공직자들이 공중도덕을 지키지 않아 망신을 당하는 사례가 있다. 장애인주차장에 관용차를 주차한다거나 빨간 불일 때 횡단보도를 건너가 보좌진을 기겁하게 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명단 등록이 필요한 장소에 입장할 때 기다리기 싫다며 ‘저 국회의원이예요!’ 라고 핏대를 올리는 의원도 있었다. 타인에게는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면서 정작 자신은 특별하며 모든 규제에 예외라고 믿는 ‘내로남불’ , ’도덕적 이중잣대’를 당연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2. "이래도 괜찮네?" 권력자들의 '간 보기'
권력자들의 갑질은 또한 그들도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정교하고 꾸준하게 진행되는 '권력 확인 실험'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승자의 뇌’ 를 집필한 신경과학자 이안 로버트슨(Ian Robertson)은 ‘권력을 행사하고 승리하는 실험이 반복될 때 뇌의 구조가 물리적으로 변한다’고 주장한다. 로버트슨은 이것을 ‘승자 효과’ (The Winner Effect) 라고 이름 붙였는데 이는 ‘권력자들의 간 보기 과정’ 이다. 권력자들은 초기에는 사소한 무례함을 저지르며 주변의 반응을 살핀다. 별 일이 아닌데도 고성을 지르고 직원들에게 무리한 요구를 '한 번 해 보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들도 긴장한다. 벼락같이 소리를 질러놓고 ‘내가 이들한테 이래도 되나’ 와 같은 생각도 잠시 한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 아무도 자신을 제지하지 않고, 오히려 굴복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자신의 무례함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이게 되네’ 라고 느끼는 순간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급격히 상승되고 뇌의 보상회로에 도파민을 쏟아넣게 된다. 그런 상황이 반복되면 어떻게 될까. 점점 더한 분노를 표출하고 더더욱 부당한 요구들을 일상화 하게 되면서 그들의 뇌는 권력이라는 마약에 중독되기 시작한다. 처음에 보좌진에게 자기 아내의 수행을 한 두 번 시키고 개인적인 일을 '부탁'하던 의원이, 곧 자기 아들들의 학교 편입과 직장 업무까지 당연하게 떠넘기고 더더욱 무리한 일들을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민주당 전 원내대표 김병기 의원. 대기업 항공사의 숙박권 이용, 배우자의 구의회 법카 사용, 아들 대학 편입 부정, 국정원 직원인 장남의 업무를 보좌진에게 맡겼다는 등 십여 개 의 의혹으로 경찰수사를 받게 됐다. (사진: 연합뉴스)
진짜 불행은 대부분의 보좌진들은 그런 요구에 따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의원실에서 가장 선임 위치에 있는 보좌관이라도 그런 의원에게 ‘안됩니다’ 라고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 그들도 어쩔 수 없는 직장인으로서, 국회라는 특수하고 좁은 업계에서 의원 한 사람의 임면권에 직업 생명이 걸려있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간 보기' 단계에서 적절한 제동(“의원님 그렇게 하시면 안 됩니다,”) 이 걸리지 않으면 한 때 겸손했던 교수, 공무원, 변호사, 기업인 출신의 초선의원은 타인의 인격을 짓밟으며 쾌락을 느끼는 '권력 괴물'로 진화하게 된다.
이러한 권력 중독 상태가 지속되면 뇌의 관제탑인 전두엽은 최종적으로 제 기능을 잃는다. 정상적인 전두엽은 "여기서 화를 내면 안 돼", "이것은 부당한 요구야" 라고 판단하고 제어하지만, 권력에 취한 뇌는 이 ‘불필요한’ 억제 기제를 아예 꺼버린다. 켈트너는 이를 '권력 패러독스'라 불렀다. 권력을 얻기 위해, 국회에 들어오기 위해 필요했던 타인에 대한 공감과 협력의 능력은 사라지고, 오직 자신의 욕망과 충동만을 따르는 '사회적 뇌 손상' 상태에 빠지는 것이다.
3. 우리가 '병든 뇌'를 가진 이들에게 지배받아야 하는가
문제는 이들의 ‘뇌 손상'이 개인의 질병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하고, 충동 조절이 안 되며, 특권의식에 젖어 규범을 무시하는 이들이 국가의 법을 만들고 예산을 주무른다. 공감 능력이 마비된 뇌로 민생을 논하고, 도덕적 이중잣대를 가진 손으로 정의를 쓰겠다고 한다. 권력에 취해 뇌가 망가진 공인들이 국가중대사를 주무른다? 국가적 비극이다.
국회 본회의장. (사진: 연합뉴스)
결국 이 안타까운 순환을 끊을 수 있는 것은 유권자의 냉정한 판단 뿐이다. 우리는 그들이 휘두르는 화려한 언변과 선동 뒤에 숨겨진, 오만하게 일그러져 손상된 ‘뇌의 민낯’을 꿰뚫어 보아야 한다. 가족과 민원인에게 욕설하고, 공무원들을 공개적으로 면박 주고, 가장 가까운 보좌진을 모욕하고 갑질하는 이들이 정치를 잘 할 리가 없으며 국민을 존중할 리 없으니 말이다. ‘우리편’, ‘우리당’이라는 것 만으로, 무지성으로 감싸거나 묵인하지 말고 사실과 상식을 존중하며 사안을 정확하게 봐야 한다.
뇌 손상을 입은 수준 낮은 이들에게 지배당하며 국가의 격이 떨어지는 것을 지켜보기엔, 우리가 견뎌온 시간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

김선 논설위원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사에 5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연기라도 하는 성의조차 없네요
아랫 분 말씀처럼 이낙연님을 존경하는 이유가 여기 다 있네요.
많은 이가 몰라봐서 안타까울 뿐.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검손한 척하는 것조차 어색한 권력자들 생각해 보면 이낙연이라는 사람이 얼마나 귀한지...
권력은 자식과도 나누지 않는다는 말이 참 이해가 안 갔는데요 자식을 위해 목숨도 바치는 부모들이 왜 권력에 대해서는 이기적일까에 대한 해답 같습니다
권력은 질병이 맞는 거 같습니다
권력이란 마약에 취해 안하무인한 쓰레기가 되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를 알아요. 동네 이장도 못할 주제의 인간이 권력의 정점에서 나라 곳간 바닥내고, 나라 팔아먹으면서 희희낙락하고 있잖아요. 기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