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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포퓰리즘의 몰락: 남미 ‘흙수저 독재자’가 남긴 교훈
  • 김선 논설위원
  • 등록 2026-01-08 16:55:44
  • 수정 2026-01-08 21:04:29

  • 남미 대중은 왜 '흙수저' 정치인에 열광하고 포퓰리즘을 원하는가
  • 남미 특유의 '영웅숭배' 와 빈부격차로 인한 무상복지 선호
  • 풍부한 천연자원을 팔아 일단 퍼주고 보는 포퓰리즘이 경제의 체질 망가뜨려

눈이 가려진 채 미 군함으로 압송되는 마두로 대통령의 모습은 독재자의 말로를 충격적으로 보여주었다. 미국의 국제법 위반과 베네수엘라 주권침해에 대한 각국의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지만, 마두로의 몰락은 남미 특유의 ‘흙수저 포퓰리즘’ 정치의 종말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왜 남미의 대중은 유독 정치인의 흙수저 서사에 열광하며, 그 열광은 왜 비극으로 귀결되는가.


흙수저 출신 정치인? 남미 정치의 성공 공식 

남미에는 ‘카우디요’(Caudillo)라 불리는 강력한 카리스마적 지도자 숭배 전통이 깊게 뿌리 박혀 있다. 시몬 볼리바르(베네수엘라) 와 산 마르틴(아르헨티나) 처럼, ‘나와 국가를 구원해 줄 영웅’을 숭배해 온 이 오랜 정치적 유전자는 현대에 이르러 ‘흙수저 서사’와 결합하며 남미 정치의 성공 공식이 되었다.


마두로의 정치적 아버지인 차베스는 집권 시절 TV 쇼에 자주 출연해 전통 노래를 부르고 “나는 여러분의 형제이자 아들”이라고 말했다. 대중은 추락하는 경제 수치보다 그의 무례할만큼 직설적인 말투과 서민적인 모습에 더 큰 신뢰를 보냈다.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 뇌물혐의로 재판을 받을 당시 자신에 대한 '표적수사' 를 주장했다. (사진: 연합뉴스)

구두닦이 소년으로 시작해 노조 간부에서 대통령이 된 룰라의 이야기는 브라질 서민들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넘어, 기득권층을 향한 ‘대리 복수’의 쾌감을 선사했다. 지도자에 대한 이러한 감정적 동일시는 무지성 지지로 이어져 만약 그가 명백한 실정을 저질러도 “우리 같은 사람이 잘되는 꼴을 보기 싫어하는 엘리트들의 음해”라고 믿게 만드는 방어 기제를 형성했다. 

실제로 룰라가 거액의 뇌물수수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되었을 때 그는 “나를 잡는 것은 빈민의 희망을 잡는 것” 이라고 주장했다. 그가 사업가로부터 두 채의 고급아파트를 받고 국가 이권을 넘긴 것이 드러났음에도 룰라의 지지자들은 수사 자체가 불공정하다며 ‘우리가 룰라다’(Eu sou Lula) 를 외쳤다.  


때문에, 남미에서 정치인으로 성공하려면 정책능력이나 청렴성 보다는 ‘얼마나 더 처절한 밑바닥을 경험했느냐’가 중요하게 됐다. 마두로 역시 정치적 위기 때 마다 버스운전사와 노조활동가로 시작한 자신의 고난서사를 강조해 지지층을 결집시켰다. 정치지도자들의 감성적 가난팔이 서사 속에서 지성적 논의와 정제된 언어는 ‘재수 없는 엘리트주의’로 매도되었다. 결국 남미에서 정치는 국가의 미래를 설계하는 공론장이 아니라, 누가 더 대중의 눈물샘을 자극하고 분노를 잘 대변하는지를 겨루는 ‘서사 경연장’으로 전락했다.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대통령. 버스운전사 출신으로 대통령까지 오른 그는 차베스의 정치적 후계자에 노동자 출신이라는 서사를 적극 활용했다. (사진: 연합뉴스) 

엘리트에 대한 불신과 빈부격차, 포퓰리즘은 해결책인가? 

남미 대중은 또한 포퓰리즘에 열광한다. 전용기를 타고 다니는 1% 부자들과 먹을 것이 없어 쓰레기를 뒤지는 99% 빈곤층이 공존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불평등 속에서 대중은 퍼주기식 현금살포를 절실하게 원하게 되었다. 남미대륙의 풍부한 천연자원은 포퓰리즘의 보루가 되었다. 산업 발전이 없더라도 일단 천연자원을 팔면 퍼주기를 할 수 있으니, 정치 지도자들은 경제정책을 개발하는 대신 지지율을 올리는 쉬운 길을 택하곤 했다. 당연히 국내 제조업이나 경제구조 개선은 뒷전이 될 수 밖에 없다. 풍부한 천연자원이 도리어 국가경제에 독이 된 셈이다. 


베네수엘라의 유전. 베네수엘라는 세계 1위의 매장량을 보유한 산유국이다. (사진: 연합뉴스)

이러한 ‘자원 기반 포퓰리즘’의 가장 두드러진 실패 사례를 베네수엘라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세계 최대의 석유 매장량을 자랑하던 베네수엘라는 유가 상승기에 벌어들인 오일머니를 지지층 결집을 위한 무상 복지와 현금 살포에 올인했다. 그러나 유가가 하락하자 경제는 추락했다. 마두로 정부는 부족한 재원을 메우기 위해 화폐를 찍어냈고, 돈 풀기와 돈 찍기의 결과는 물가상승률 1,000,000%라는 초인플레이션으로 돌아왔다. 한때 남미에서 가장 부유했던 국가는 국민들이 체중 감량을 강요받는 ‘마두로 다이어트’의 비극 속에 수백만 명의 난민을 배출하는 나라로 전락했다.


아르헨티나도 마찬가지다. 아르헨티나는 광활한 농지를 바탕으로 한 곡물 수출 대금을 활용해 에너지와 교통 분야에 막대한 보조금을 쏟아부었다. 국내 제조업의 생산성을 높이는 대신 ‘표’를 얻기 위해 시장 가격을 억지로 통제했다. 그 결과 국가 재정은 파탄 났고 국내 산업은 몰락했으며 만성적인 외환 위기가 반복됐다. 기업들은 혁신 동력을 잃었고, 대중은 정부의 지원 없이는 생존할 수 없는 구조적 빈곤의 늪에 빠졌다.



‘우리 편 독재자’가 만든 경제 파탄과 망국 

가장 위험한 지점은 지도자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우리 편’ 신화다. 내가 지지하는 지도자가 나와 같은 흙수저 출신이기에, 그에 대한 비판은 곧 나에 대한 공격이자 기득권의 음모로 둔갑한다. 이 견고한 진영 논리는 지도자에게 ‘무소불위의 면죄부’를 쥐여준다. 마두로 정권이 인플레이션 1,000,000%라는 유례없는 경제 파탄을 불러오고도 권력을 유지한 배경에는, “그래도 저쪽 엘리트 놈들보다는 우리 편이 낫다”는 대중의 눈먼 신뢰가 있었다. 민주주의의 핵심인 견제와 균형, 지도자에 대한 공적 검증은 ‘우리 편’이라는 환상 속에서 서서히 질식했다.


남미의 사례는 우리에게 경고한다. 지도자의 과거가 현재의 유능함을 보장하지 않으며, 감동적인 서사가 밥을 먹여주지도 않는다. 유권자가 지도자의 ‘개천’에만 주목할 때, 그 용은 서서히 민주주의를 잡아먹는 괴물로 변할 수 있음을 마두로의 베네수엘라는 처절하게 증명하고 있다.


카라카스 광장에서 마두로 체포를 환영하는 베네수엘라 국민들. (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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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dongong2026-01-09 16:06:27

    기시감이 느껴지는데 이것이 내 나라의 일이라는게 참 슬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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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6-01-09 00:30:29

    세상에 너무 익숙한 느낌이라서 놀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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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6-01-08 19:27:01

    한국의 이두로도 똑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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