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국민 배우'의 퇴장, 우리 곁의 '어른'이 떠났다
  • 박주현 칼럼니스트
  • 등록 2026-01-05 09:46:53
  • 수정 2026-01-05 09:51:17

  • 안성기 별세, 향년 74세 60년 연기 인생, 스캔들 없는 '품격'
  • 스크린 안팎에서 영원한 현역이었던 그, 화려함보다 성실함으로 빛났던 사람,
  • 가벼움이 미덕인 시대에 묵직한 울림 주던 '거울'이 깨졌다

배우 안성기배우 안성기 [엣나인필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5일 오전, 안성기라는 이름이 부고란에 올랐다. 향년 74세. 사인은 음식물에 의한 기도 폐쇄, 병명은 혈액암이다. 의학적인 사인(死因)은 건조하지만, 그가 남긴 빈자리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우리는 단순히 유명한 배우 한 명을 보낸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공유하던 ‘품격의 기준’을 잃었다.


영화 '고래사냥' 속 안성기영화 '고래사냥' 속 안성기 [영상자료원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그는 1957년 데뷔해 60년 넘게 카메라 앞에 섰다. 그 긴 세월, 대중의 시선 속에 살면서도 그 흔한 잡음 하나 없었다. 연예계라는 화려하고도 위태로운 무대 위에서, 그는 늘 단정한 옷매무새를 유지했다. 그가 빛난 건 화려해서가 아니라 성실해서였다. ‘국민 배우’라는, 이제는 아무에게나 붙이는 그 흔한 수식어가 그에게만은 진짜 고유명사처럼 들렸던 이유다.


영화 '라디오스타' 촬영 당시 배우 안성기영화 '라디오스타' 촬영 당시 배우 안성기 [연합뉴스 자료사진]그의 부고가 유독 뼈아픈 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풍경 때문일지 모른다. 모든 것이 가볍고, 자극적이고, 빠르게 소비되는 세상이다. 요란한 소음만이 가득한 이 시대에, 그는 묵직한 침묵과 미소로 “그래도 사람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던 ‘거울’이었다.


그는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편안했다. 칠수와 만수, 고래사냥의 청춘부터 라디오 스타의 중년까지, 그는 우리 삶의 굽이굽이마다 서 있었다. 그가 떠남으로써, 우리는 그 시절의 추억과 함께 기댈 수 있는 든든한 ‘어른’ 한 명을 떠나보냈다.


투병 중에도 그는 “더 나아지면 촬영장에 가겠다”며 운동을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70대 노배우는 끝까지 자신의 직업을 섬겼고, 현장을 그리워했다. 죽음 직전까지 배우로서의 존엄을 지키려 했던 그 태도 앞에 고개가 숙여진다.


스크린의 조명이 꺼졌다. 영화는 끝났고, 배우는 영원한 휴식에 들어갔다. 품격 있는 ‘어른’은 떠났고, 빈 무대엔 겨울바람만 분다. 그가 남긴 60년의 필름만이,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조용히 증언할 뿐이다. 1월의 아침, 세상이 조금 더 쓸쓸해졌다.


배우 안성기배우 안성기 [연합뉴스 자료사진]

관련기사
TAG

프로필이미지

박주현 칼럼니스트 다른 기사 보기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로그인

댓글 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이 기사에 4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 프로필이미지
    guest2026-01-05 16:16:28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기사 감사합니다.

    더보기
    • 삭제
  • 프로필이미지
    ddongong2026-01-05 13:27:08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프로필이미지
    guest2026-01-05 10:44:00

    품격있는 어르신의 영면에
    품격 높은 추도사
    화려함보다 성실함으로 빛났던 그 분과
    그 분을 묵직하게 기리는 칼럼니스트
    감동 한 사발 들이키고 갑니다.

    사람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던 ‘거울’
    든든한 어른이셨던 안성기 배우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더보기
    • 삭제
  • 프로필이미지
    guest2026-01-05 09:56:03

    참 좋아했던 배우셨는데 이런 비보를 접하니 너무나 슬프네요. 건강회복해서 다시 볼수 있기를 바랬는데 말입니다. 세상은 왜 좋은 사람들이 더 빨리 우리곁을 떠나는 걸까요?
    라디오스타에서 그분의 위트넘치고 따뜻했던 추억은 제인생 영화로 영원히 남아 있을겁니 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더보기
    • 삭제
아페리레
웰컴퓨터
많이 본 뉴스더보기
  1. 미국이 대신 싸워주는 대한민국의 '언론 자유' 새해 벽두부터 한미 관계에 경고등이 켜졌다. 미국 국무부가 한국의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통과에 대해 “중대한 우려”를 표명했고, 예정됐던 한미 FTA 회의는 돌연 취소됐다. 미국이 타국의 국내법에 이토록 즉각적이고 강경하게 반응하는 건 이례적이다.이유는 명확하다. 이 법이 겉으로는 ‘가짜 뉴스 근절’을 내...
  2. 진실게임 격화.... 쿠팡, "국정원 직원 3명 만나…강에서 증거 건지라 말해" 쿠팡은 최근 발표한 개인정보유출의 자체 조사 결과와 발표해 국가정보원의 협조에 따른 것이라고 31일 거듭 주장했다.이재걸 쿠팡 법무 담당 부사장은 이날 국회 청문회에서 '국정원이 일방적으로 용의자를 접촉하라고 지시했느냐'는 최민희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의 질의에 "(국정원이) 12월 1일 처음 공문을 보내고, '국가..
  3. "이재명에게 보고됐다" 김현지의 음성, 그리고 피의자에게 돌아간 탄원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지난 총선을 앞두고 구의원들로부터 공천 대가성 금품을 수수했다는 의혹이 당시 이재명 당 대표실에 보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직적으로 은폐되었다는 정황이 담긴 녹음 파일이 확인됐다. 이수진 전 의원은 5일 조선일보와의 단독 인터뷰를 통해 김현지 당시 대통령실 제1부속실장(당시 보좌관)과의 통화 내...
  4. 전두환이 무덤에서 기립박수 칠 '민주당의 독재론' 2026년 새해 벽두, 여의도에서 귀를 의심케 하는 말이 들려왔다. 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국민은 돈만 벌게 해주면 독재도 환영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농담이 아니었다. 진심이었다.이 말을 듣는 순간, 연희동 어딘가에서 기립박수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다. 그가 살아서 이 말을 들었다면 무릎을 치며 반겼을...
  5. [칼럼] 오죽했으면 노조가 나서서 "대형마트 규제 풀어달라" 외칠까 오죽했으면 노조가 나서서 "대형마트 규제 풀어달라" 외칠까정치인들에게 '반(反)기업 정서'만큼 달콤한 마약은 없다. 거대하고 탐욕스러워 보이는 '공룡(대기업)'을 사냥하여 마을 사람들(소상공인)에게 고기를 나눠주겠다는 서사는 얼마나 매혹적인가. 지지자들에게는 정의 구현이라는 '도파민'을, 정치인에게는 표심이..
  6. [종합]이혜훈 '갑질'에 민주당 '폭발'… 사퇴론 들불처럼 이재명 정부가 '국민 통합'과 '경제 전문성'을 명분으로 내세운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 지명이 거센 역풍을 맞고 있다. 후보자의 과거 '12·3 내란' 옹호 전력에 이어 인턴 직원을 향한 충격적인 폭언 녹취가 공개되면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조차 "선을 넘었다"는 비토론이 쇄도하고 있다. "너 아이큐 ..
  7. [칼럼] 대통령의 자격 국가 지도자의 자격은 어디서 오는가. 헌법과 법률이 정한 권한 이전에, ‘우리가 누구이고, 적이 누구인가’를 구분하는 명징한 인식에서 온다. 그런데 2026년 대한민국, 국군 통수권자의 입에서 그 인식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발언이 나왔다.“우리가 북한에 대해 군사적 공격 행위를 해서 그들이 불안해했을 것이다.”귀를 의심...
  8. 새미래민주당, 정당 최초 웹드라마 <강소의 기적, 새민상사> 제작 발표 새미래민주당(새민주)은 8일(목) 국회 소통관에서, 정당사 최초 정치풍자 웹드라마  제작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당일 오후 2시30분에는 서대문구에 위치한 소극장 '필름포럼'에서 시즌1을 공개하는 시사회도 예정되어 있다.웹드라마에서 '새민상사 대표'로 분한 새미래민주당 전병헌 대표는 이번 시도를 "대한민국 ...
  9. [전병헌 기고] ‘셰셰 외교’의 함정 : 전략적 모호성인가, 전략적 굴종인가 정부는 ‘하나의 중국 존중’ 발언과 ‘적대적 두 국가론’ 수용 의혹에 대해 명확히 입장을 밝혀야 한다.이재명 정부의 외교 노선이 위험 수위를 넘나들고 있다.후보 시절부터 논란을 자초한 “중국에는 셰셰, 미국에는 땡큐”라는 이른바 ‘셰셰 외교’가 단순한 말장난을 넘어, 이제는 국정 운영의 실질 기조로 ..
  10. 김병기 고발만 11건, 서울경찰청 통합 수사 착수…가족까지 수사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전 원내대표를 둘러싼 각종 비위 의혹이 경찰 수사로 간다. 서울경찰청은 31일, 김 전 원내대표와 관련된 고발 사건 11건 중 10건을 공공범죄수사대에 모아 통합 수사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민주당 내 도덕성 논란이 확산되는 가운데, 보좌진의 녹취록 등 구체적 증거가 쏟아지면서 사법 처리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
후원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