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전 장관이 또다시 청년 세대를 향해 ‘극우’라는 손가락질을 해댔다. 하지만 ‘극우’란 단어의 '극'이라는 표현을 한 번 생각해보자. 공정과 지독한 취업란, 내 집 마련과 결혼을 꿈꿀 수 있는 사회같은 상식적 요구를 하는 청년에게 어울리는 단어가 아니다. 극단적이라는 표현의 그 극이란 말은 멀쩡한 민간인을 ‘쁘락치’로 몰고 고문했던 유시민, 사회주의 폭력 혁명을 꿈꾼 사노맹 이론가였던 조국, 미 대사관에 사과탄을 던지고 방화를 기도한 정청래 같은 인물들에게나 어울린다.
그래픽 : 박주현 조국이 인용한 기사에 극우의 첫 조건이 '목적 달성을 위해 규칙 위반을 용인하는가' 였다.
기가 막힌 것은 그가 인용한 기사가 극우의 첫 번째 잣대로 ‘목적 달성을 위해 규칙 위반을 용인하는가’를 들이댔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에 조국 일가만큼 여기에 완벽히 부합하는 집안이 또 있나. 자녀 입시를 위해 부부가 서류를 위조하고 법망을 피하기 위해 차명거래를 했던 행태를 온 세상이 안다. 그런 그가 청년을 훈계하려 드는 건 자신이야말로 ‘비정상’의 극치임을 자인하는 꼴 아닌가.
이것은 한 개인의 위선을 넘어 586 운동권 전체가 시대의 흐름을 얼마나 놓쳤는지 보여주는 상징이다. 이들은 청년들이 왜 자신들에게 등 돌렸는지 성찰할 능력이 없다. 청년들은 지난 정권내내 국회가 어땠는지 똑똑히 기억한다. 오직 이재명 대표 한 사람을 위한 ‘방탄 도구’로 전락하고, 국정의 발목잡기가 유일한 목표처럼 보였던 그 모습을 말이다. 이런 합리적 비판에 ‘극우화’라는 낡은 유령을 소환하니, ‘구시대의 퇴물’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이미지 : 조국 SNS 갈무리이런 행태는 이미 서구 정치에서 파산 선고를 받았다. 2016년 미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은 트럼프 지지자들을 ‘개탄스러운 집단’이라 불렀다. 결과는 어땠나. 엘리트의 오만함에 분노한 중도층이 등을 돌리며 패배의 결정적 원인이 됐다. 자신의 위선을 향한 비판을 ‘청년 탓’으로 돌리는 책임 전가가 꼭 닮았다.
시중에선 “내로남불의 화신이 누굴 가르치려 드나”란 말이 나온다. 실시간으로 위선을 가려내는 세대 앞에서 ‘극우’라는 낡은 딱지는 힘을 쓰지 못한다. 오히려 그 손가락질이 자기 이마에 되돌아와 박힐 뿐이다.

박주현 칼럼니스트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사에 6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기 유일한 방법
아주 비겁하고 비열한 인간
정치인이 가져야할 소양이 개똥만큼도 없는 사람
이재명 조국 비판해서 극우 소리 들으면 극우인게 차라리 낫죠
뻔뻔하고 위선적인 인간의 표본 조국.
조철봉이 조만대장경 1만페이지가 완성돼 가요.
자기 자신이 뭐라고 생각하는걸까요. 웃기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