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개혁안 처리 시동 (연합뉴스)
법학자가 쓴 ‘재판소원이 위헌이라는 대법원에 묻고 싶은 다섯 가지’라는 글을 정독했다. 그는 대법원의 확정판결을 헌법재판소가 다시 심사하는 ‘재판소원’ 도입이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 절실하다고 역설했다. 이는 현재 민주당과 진보 진영 법률가들이 추진하는 ‘사법 개혁’의 이론적 토대이기도 하다.
법학자의 논리는 치밀하고 용어는 화려하다. 하지만 나는 법률가가 아닌, 상식을 가진 시민의 눈으로 그 다섯 가지 주장에 대해 하나하나 되묻고자 한다. 그 고상한 명분 뒤에 숨겨진, 지극히 현실적이고 위험한 의도를 말이다.
사법개혁안 처리 시동…법관대표들은 내일 정기회의 (연합뉴스)
첫째, 헌법 101조 위반이 아니라는 주장에 대하여.
정 교수는 일반 사법작용(대법원)과 정치적 사법작용(헌재)이 분리돼 있으니 문제가 없다고 한다. 전형적인 탁상공론이다. 현실을 보자. 대법원이 “유죄”라고 확정했는데, 헌재가 “이 판결은 위헌이니 취소한다”고 결정한다면, 누가 상급 기관인가. 취소할 수 있는 쪽이 상전이다.
이름을 무엇이라 붙이든,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뒤집을 수 있는 권한을 헌재에 주는 순간, 헌법이 명시한 ‘최고 법원’으로서 대법원의 지위는 소멸한다. 대법원을 헌재의 ‘지부(支部)’로 전락시키는 것을 우리는 사법 체계의 붕괴라고 부른다.
둘째, 4심제가 아니며 국가경쟁력을 높인다는 주장에 대하여.
그는 “법률 판단을 다시 하는 게 아니라 헌법 판단만 하니 4심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것은 말장난에 가깝다. 국민 입장에서 보자. 3심에서 졌는데 헌재에 가서 다시 다툴 기회가 생기고, 그 결과 판결이 바뀔 수 있다면 그것이 4심이지 무엇인가.
더 기막힌 건 “지연된 정의가 정의의 미실현보다 낫다”는 궤변이다. 재판 지연은 돈 없고 빽 없는 서민에겐 ‘고문’이자 ‘파산’이다. 반면, 막대한 수임료를 댈 수 있는 권력자에게 재판 지연은 ‘생명 연장’의 수단이다. 국가경쟁력? 소송이 끝나지 않는 나라, 확정판결이 나도 뒤집힐 수 있는 나라에서 어떤 기업이 안심하고 투자하겠나. 불확실성만 키우는 자해(自害)다.
셋째, 헌재는 법률 해석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주장에 대하여.
이론상으론 그럴듯하다. 하지만 현실의 재판에서 사실인정과 법률 적용, 그리고 헌법적 가치 판단을 무 자르듯 나눌 수 있는가. 패소한 당사자는 십중팔구 “판사가 증거를 잘못 채택해 내 재산권을 침해했다(헌법 위반)”고 주장할 것이다. 모든 재판 불복의 이유를 헌법 문제로 치환하는 순간, 헌재는 대한민국의 모든 사건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된다.
넷째, 인용률이 낮아 남소(濫訴) 우려가 없다는 주장에 대하여.
정 교수는 독일 사례(인용률 1~2%)를 들며 안심하라 한다. 한국의 소송 문화를 모르고 하는 소리인가. 한국은 고소·고발 공화국이다. 단 1%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특히 감옥에 가야 할 처지라면, 전 재산을 털어서라도 헌재 문을 두드리는 게 한국인의 정서다. 대법원에도 사건이 쌓여 몇 년씩 걸리는 마당에, 헌재행 고속도로까지 뚫리면 사법 시스템은 과부하로 뇌사에 빠진다. 0.1%의 희망 고문이 사법부를 마비시킬 것이다.
다섯째, 이것이 핵심이다. 확정판결 효력 정지(가처분)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대하여.
이 대목에서 의심은 확신으로 바뀐다. 정 교수는 실질적 구제를 위해 대법원 확정판결의 집행을 멈추는 가처분이 필수라고 했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대법원에서 징역형이 확정된 유력 정치인이 헌재에 소원을 내고 가처분 신청을 한다. 헌재는 “심사 중”이라며 형 집행을 정지시킨다. 범죄자가 유죄 확정판결을 받고도 “헌재 결정 날 때까지(몇 년이 걸릴지 모른다) 기다려라”며 거리를 활보하고 정치를 계속한다.
이 법안의 설계도가 누구를 향해 있는지 너무나 투명하지 않은가. 억울한 서민을 위해서라고? 천만에. 3심까지 모두 유죄를 받고도 감옥에 가지 않을 ‘비상구’가 절실한 사람,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써가며 국가 시스템을 멈춰 세울 힘이 있는 ‘슈퍼 피고인’들을 위한 헌정(獻呈) 법안이다.
법학자의 고고한 이론이 현실의 정치와 만나면 괴물이 된다. 민주당과 지식인들이 외치는 ‘사법 통제’는 결국 ‘사법 무력화’의 다른 이름이다. 나는 묻는다. 당신들이 만들려는 그 ‘정의로운 제도’가, 혹시 ‘단 한 사람’의 감옥행을 막기 위해 5천만 국민의 사법 시스템을 인질로 잡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는가. 이론으로 포장해도, 악취는 감춰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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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현 칼럼니스트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사에 4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부끄럽지도 않은가봐요.
지식인이고 전문가라고 하는 것들이 화려한 말장난으로 사실을 왜곡하고 선동하는 게 참 무섭습니다. 저런 것들이 히틀러 탄생에도 기여했는데 여전히 세상은 변하지 않은 건가요
잘 읽었습니다. 미약하나마 원고료 보냅니다.
이젠 눈치도 보지 않는
위인살법 입법폭주
그 한 사람이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 끼치는 해악을
말로 다할 수 있을까?
이게 나라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