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하이쥔 비밀경찰서 진상규명 설명회 (연합뉴스)
2025년의 끝자락, 문화일보가 단독 보도한 기사는 대한민국 국격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배경은 지난달 22일 인천의 한 리조트, ‘중국 비밀경찰서’ 거점 의혹을 받던 중식당 동방명주의 실소유주 왕하이쥔의 이임식장이다. 그 화려한 단상에 우상호 청와대 정무수석이 섰다. 대통령의 의중을 대변하는 핵심 참모가 마이크를 잡고 덕담을 건넸다.
이 장면이 기괴한 이유는 왕 씨의 신분 때문이다. 행사가 열린 그순간, 그는 대한민국 법정에 기소된 형사 재판 피고인이었다.
혐의는 가볍지 않다. 거짓 신고로 관세를 포탈하고, 다른 음식점 대금을 동방명주 단말기로 결제하는 등 여신전문금융업법을 위반했다. 식당 외벽에 대형 전광판을 무단 설치해 옥외광고물법도 어겼다. 그리고 우 수석이 다녀간 지 불과 한 달도 안 된 12월 17일, 법원은 그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의 유죄를 선고했다.
결과적으로 청와대 수석은 징역형을 선고받을 범죄자의 파티에 가서 박수를 쳐준 꼴이 됐다. 몰랐을까? 천만에. 왕 씨는 비밀경찰서 의혹으로 온 나라를 시끄럽게 한 인물이다. 민정수석실이나 의전팀이 그의 재판 상황을 몰랐다면 무능이고, 알고도 보냈다면 사법 주권 포기다.
상식적인 정부라면 자국의 법을 어겨 재판을 받는 외국인과는 거리를 둔다. 그것이 법치국가의 위엄이다. 그런데 이 정부는 거꾸로 간다. 자국민이 의혹을 제기하면 혐오발언이니 내란 세력이니 입을 틀어막으면서, 관세를 포탈하고 금융 질서를 어지럽힌 중국인 피고인에게는 깍듯이 예우를 갖춘다.
우 수석 측은 한중 관계 복원 차원이라며 이번 일을 마무리하려 했지만, 궤변이다. 외교는 시진핑 주석이나 외교부장과 하는 것이다. 서울 한복판에서 불법을 저지르고, 한국 정치에 관여하는 문구의 전광판을 내걸어 우리 국민을 조롱했던 민간 업자를 챙기는 건 외교가 아니다. 그건 알현이고 조공이다.
법원은 왕 씨가 실질적 운영자가 아니라며 발뺌한 주장을 깨고 그를 실소유주로 인정해 유죄를 때렸다. 사법부는 법대로 심판하는데, 청와대는 그 피고인석에 앉은 자에게 형님 대접을 한다. 이것은 이재명 정부의 셰셰(謝謝) 본능이 법치라는 시스템마저 마비시켰음을 보여준다.
왕하이쥔은 그날 밤 본국에 뭐라고 보고했을까. 한국은 대통령 최측근도 내 앞에 와서 고개를 숙인다, 한국 법 따위는 겁낼 필요 없다고 비웃지 않았겠나.
범죄 혐의자가 상석에 앉고, 청와대 수석이 병풍을 서는 나라. 청와대 간판을 바꿀 때가 됐다. 푸른 기와집이 아니라, 중국을 향해 문을 활짝 연 북경 출장소로. 인천 앞바다의 겨울바람보다, 법치와 자존심을 팔아넘긴 풍경이 더 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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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현 칼럼니스트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