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하는 김병기 원내대표 (서울=연합뉴스)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그의 전직 보좌진 사이의 갈등이 크리스마스의 온기 대신 법정의 차가운 공방으로 번졌다. 한때 ‘동지애’와 ‘형제애’를 강조하며 권력의 핵심을 공유하던 이들이 서로의 치부를 무기로 휘두르며 진흙탕 싸움을 벌이는 모습은 한국 정치의 비정한 속살을 그대로 드러낸다.
전직 보좌관 A 씨는 김 원내대표를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다. 김 원내대표가 보좌진 6명의 비공개 대화방 자료를 불법적으로 취득하고 이를 외부에 공표했다는 취지다. 권력자가 자신을 향한 도덕적 비판을 피하기 위해 부하 직원의 사적인 영역을 침범하고 이를 역공의 도구로 삼았다는 점이 이번 고소의 핵심이다.
사건의 시작은 김 원내대표의 ‘대한항공 특혜 의혹’이었다. 지난해 11월, 김 원내대표가 제주 서귀포 칼 호텔의 160만 원 상당 최고급 객실인 로얄스위트 숙박권을 제공받아 가족과 이용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여기에 베트남 방문 당시 공항 의전 편의를 논의했다는 구체적인 정황까지 더해지면서, 그가 강조해 온 도덕적 결백은 뿌리째 흔들렸다.
궁지에 몰린 김 원내대표가 선택한 방어 기제는 ‘프레임 전환’이었다. 그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보좌진들의 비밀 대화방인 ‘여의도 맛도리’를 공개하며 반격에 나섰다. 대화방 안에서 계엄 사태를 희화화하거나 여성 구의원을 성희롱하는 등 보좌진들의 도덕적 결함이 심각해 이들을 면직했을 뿐, 자신을 향한 의혹은 배신자들의 ‘사적 복수’라는 논리다. 그는 "인내와 배려에도 한계가 있다"며 피해자 코스프레에 집중했다.
그러나 법적 쟁점은 다른 곳을 가리킨다. 전직 보좌진들은 김 원내대표가 해당 대화 내용을 취득한 과정 자체가 명백한 범죄라고 지적한다. 당사자 동의 없이 타인의 비공개 대화를 훔쳐보고 누설하는 행위는 통신비밀보호법이 엄격히 금지하는 사안이다. 김 원내대표는 "적법한 취득"이라고 주장하지만, 그 구체적인 입수 경로에 대해서는 여전히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당내 의원들에게 "쏟아지는 빗줄기를 감내하겠다"며 동정심을 유발하는 메시지를 보낸 것은, 법리적 방어보다 진영 논리에 기댄 '우산 찾기'에 가깝다.
이번 고소 사건은 권력자가 자신의 치부를 덮기 위해 약자의 비밀을 어디까지 유린할 수 있는지 묻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비장한 어조로 동지를 외치던 입에서 나온 사적 폭로가 과연 정당한 방어권인가, 아니면 또 다른 권력 남용인가. 이제 공은 사법당국으로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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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현 칼럼니스트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