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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에 이 정통망법이 있었다면, 박종철은 그냥 '쇼크사'였다
  • 박주현 칼럼니스트
  • 등록 2025-12-25 10:17:54

  • 민주당, '허위조작정보 근절법' 강행 처리, 정권이 '허위' 판정하면 기사 삭제·징벌 배상
  • 자신들을 낳은 민주화의 사다리를 걷어차고, 군부독재보다 더한 법을 내놓는 아이러니

민주당 주도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본회의 통과민주당 주도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본회의 통과 (서울=연합뉴스) 

민주당이 기어이 선을 넘었다. 24일 국회에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름은 ‘허위조작정보 근절법’이라 붙였지만, 내용은 ‘정권 비판 입틀막법’이다. 허위나 조작으로 판단되면 인터넷에서 뉴스를 삭제하고, 최대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물리겠다고 한다.


문제는 그 ‘허위’를 누가 판정하느냐다. 개정안은 그 기준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위임했다. 사실상 정권이 심판관이다. 권력의 마음에 안 들면 가짜 뉴스가 되고, 마음에 들면 진짜 뉴스가 되는 세상이 열렸다.


이 법을 보며 1987년 1월을 떠올린다. 스물두 살 대학생 박종철 군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물고문을 당해 숨졌다. 당시 전두환 정권과 치안본부는 이렇게 발표했다.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졌다.” 단순 쇼크사라는 주장이었다. 권력이 공인한 ‘진짜 뉴스’였다.


반면 당시 일부 언론이 제기한 고문 치사 의혹은 정권 입장에서 볼 때 명백한 ‘허위 조작 정보’였다. 국가의 안녕과 질서를 해치고, 공권력에 대한 증오심을 유발하는 불법 정보였다.


만약 그때 지금 민주당이 만든 이 법이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경찰은 고문 의혹을 보도한 언론사에 즉각 기사 삭제 명령을 내렸을 것이다. ‘허위 사실’로 국가 기관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천문학적인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했을 것이다. 언론사는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하고, 기자는 감옥에 갔을 것이다.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새빨간 거짓말은 법의 보호를 받는 ‘정설(定說)’로 남고, 고문의 진실은 ‘가짜 뉴스’ 딱지가 붙어 영구히 삭제됐을 것이다.


그랬다면 6월 항쟁은 없었다. 직선제 개헌도, 지금의 민주당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민주당은 자신들의 뿌리인 1987년 체제가 ‘언론의 자유’와 ‘진실 탐사’ 덕분에 가능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집단이다. 그런데 권력을 잡자마자 자신들을 탄생시킨 그 사다리를 걷어차고 있다.


‘허위 정보’의 정의도 기가 막힌다. ‘사실로 오인되도록 변형한 정보’라고 한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다. 광우병 괴담, 천안함 좌초설, 사드 참외 괴담. 지난 수년간 대한민국을 뒤흔든 결정적 가짜 뉴스들은 대부분 민주당 진영에서 나왔다. 그때는 ‘표현의 자유’라며 확성기를 틀어대더니, 정권을 잡으니 비판 언론의 입에 재갈을 물린다.


이 법은 가짜 뉴스를 잡는 법이 아니다. 권력에 불편한 진실을 잡는 법이다. 비판을 허용하지 않고, 진실의 기준을 권력이 독점하겠다는 발상. 우리는 이것을 민주주의라 부르지 않는다. ‘독재’라 부른다.


친여 성향인 참여연대조차 “국가 검열의 우려가 있다”며 반대했다. 내 편조차 등을 돌릴 만큼 명분 없는 폭주다.


1987년 독재 정권은 보도 지침으로 언론을 통제했다. 2025년 민주당 정권은 징벌적 배상과 삭제 명령으로 언론을 통제하려 한다. 수단만 세련되게 바뀌었을 뿐, 본질은 같다. 간판은 민주당인데, 하는 짓은 영락없는 ‘민정당’이다. 박종철 군의 영정 앞에서 이 법안을 읽어줄 수 있는지, 그들의 양심에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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