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파인더 독자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해외에 거주하는 전 민주당원입니다.
‘전’이라고 하는 이유는 현재는 당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20대 때 노무현 대통령님의 팬이 되면서 민주당에 가입했고 해외로 이주한 후에도 당적을 유지했습니다. 저의 설득과 극성 덕분에 정치에 관심 없던 몇몇 가족과 지인들도 민주당원이 되었습니다. 현재 사는 곳은 이 나라에서도 산 넘고 물 건너는 시골이라 투표를 하려면 도시까지 장거리 이동을 해야 합니다. 시간과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지만 한 번도 힘들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습니다. 2017년 5월. 저와 가족들의 투표로 문재인대통령이 당선 됐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요. 마치 제가 큰 상이라도 탄 것 처럼, 지인들의 축하 전화가 며칠동안 이어졌습니다. 저는 문재인대통령을 지지했던 것 처럼, 그의 참모였던 조국 또한 좋은 사람이라 생각했습니다. 대통령이 시키는 여러 일들, 그 중에서도 ‘검찰개혁’ 이라는 중요한 일을 앞장서서 해내는 인물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2019년 여름에 그가 검찰의 압수수색을 당하고 가족과 지인들이 수사를 받는 것을 보며 분노했습니다. 사모펀드? 입시비리? 표창장 위조? 그에게 제기된 혐의들은 황당했고 상식적으로도 터무니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서울대교수에 청와대수석인 남편, 역시 대학교수인 아내. 민주진보 진영의 ‘셀럽’인 저런 사람들이 어떻게 부정한 방법으로 투자를 하고 자식의 입시 서류를 위조하겠습니까. 윤석열의 검찰이 제기한 혐의들은 터무니없는 누명이었습니다. 조국은 ‘교수하고 바쁘게 사느라 남편과 아버지로서 잘 몰랐다’는 취지로 말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돈 문제도 아내가 하라면 했을 뿐이고 투자도 다 아내에게 일임했다고 했죠. 일반적인 모습은 아닌 것 같았지만 조국은 ‘학자’였고, 그정도 여유있는 집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평론가는 ‘윤석열이 조국을 질투하는 거’라고 하더군요. 그 때 즐겨듣던 김어준은 이상한 해석을 해서 사람들을 헷갈리게 했습니다. 김어준은 라디오에서 ‘조국 수사는 윤석열의 충심’ 이라고 말했습니다. ‘윤석열은 아버지(문재인)의 성공을 바라는 아들’ 이라나요. ‘공장장’이 그렇다고 하니 그런가보다 하며 지켜봤지만 ‘충심’이라기엔 윤석열의 폭주가 너무 심한 것 같았습니다.
매일같이 검찰 발로 조국 관련 의혹들이 터졌고 조국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법무부장관이 되어 검찰개혁을 완수하겠다고 다짐했고요. 저는 그 즈음 한국 방송을 보느라 낮밤이 바뀐 삶을 살았습니다. 문재인정부를 공격하려 혈안이 된 저 ‘기레기들’ 앞에서 터무니없는 의혹을 해명하려 고생하는 그의 모습이 안스러웠습니다.
어느 시점부터, 조국에 대한 수사와 기소를 막지 못하면 문재인정부가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들었습니다. 조국에 대한 수사는 문재인정부에 대한 윤석열검찰의 쿠데타였고 문재인을 지키려면 조국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 결론이었죠. 한국 유튜브를 통해 서초동에 모인 사람들을 봤습니다. 문재인과 조국을 나란히 그린 손팻말과 촛불을 들고, 주말마다 서초동 거리에서 ‘정경심을 석방하라’ 와 ‘조국수호 검찰개혁’ 을 외치는 사람들을요. 그 자리에 제가 없다는 걸 견딜 수 없었습니다. 함께하고 싶었고 한국에 가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았습니다. 며칠동안 이어진 저의 설득에 결국 우리 가족도 한국행 짐을 쌌습니다. 이 외진 시골에서, 우리 가족은 오직 서초집회에 참석할 목적으로 두 번이나 국제선 왕복 비행기를 탔습니다. 그 결정은 경제적으로도, 이민자 가정의 연례일정으로도 엄청난 투자였고 모험이었습니다. 일년에 잘 하면 한 번 가는 한국 일정을 단기체류 두 번으로 늘리면서, 그 해에 부모님과 같이 보내기로 한 휴가까지 미뤘습니다. 저는 그 전 해에 모친이 낙상하셨을 때도 먹고사느라 바쁘다며 한국에 못 들어간 불효자였는데 ‘조국수호’ 때문에는 두 번이나 갔네요.(어머니 죄송합니다)
우리 가족이 서초집회에 참여한 날, 집회 인원은 주최측 추산으로 2백만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집회를 드론으로 촬영한 MBC뉴스를 보며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제가 처음 좋아했던 노무현 대통령이 말씀하신,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 바로 이것인가 싶었죠.
우여곡절끝에 조국은 법무부장관이 되었습니다. 한 달의 짧은 임기동안 그가 무엇을 할 수 있냐는 의문도 있었지만 그런 건 상관없었습니다. 실제로 무엇을 했냐는 결과도 중요치 않았습니다. 어쨌든 우리는 그를 지켜냈고 이유는 잘 모르지만 그가 꼭 되어야만 했던 법무부장관이 되었으니까요.
시간이 흘렀고 조국 가족은 재판을 받고 판결도 내려였습니다. 정경심 교수는 4년 형을 받고 옥살이를 하게 됐습니다. 저는 몇번 소액의 영치금을 보내며 그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뇌종양 진단을 받았다는 그가 억울한 옥살이를 잘 견디기를 바라면서요. 딸의 입시를 위해 어떤 잘못을 한 것이 일부 사실이라 해도, 그것은 다 검찰의 과잉수사(그들을 수사한 것이 문재인정부 검찰이라 해도 윤석열이 총장이니까…) 때문일 것이니까. 그 즈음부터 마음 한 켠에 뭔지 모를 찜찜함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던 중 기사 하나를 접했습니다. 제목은 ‘35년전 직장 경력증명서도 수정 흔적, 그게 정경심에 독 됐다’ [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3954083 는 기사. 내용이 묘하더군요. 정교수가 35년 전 자신의 직장 증명서를 위조했었다는 내용. ‘컴맹’ 이라 한글 파일로 수정 작업이나 위조 같은 것은 할 수 없다는 정교수 측의 주장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검찰은 동양대 컴퓨터에 있던 정교수의 경력위조문서를 바탕으로 정교수가 표창장을 위조했다고 주장했다는 것. 그 주장을 재판부도 받아들여 ‘동양대 표창장 위조’ 를 사실로 결론내렸다는 내용입니다. 이 기사는 그동안 제가 믿어왔던 내용과는 딴판이었습니다. 동양대 표창장 위조 혐의에 대해 조국과 정경심 측은 정교수가 사실상 ‘컴맹’ 이었고 표창장 위조는 포토샵 같은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니 정교수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해왔습니다. 제가 보던 유튜브의 진행자들도 같은 이야기를 했고 저도 믿었습니다. 하지만 검찰은 동양대 표창장 용지와 동일한 상장 용지와 워드 프로그램을 이용해 법정에서 상장을 제작해 보였습니다. 정교수가 35년 전 경력 문서의 ‘재직기간’을 3년 몇 개월에서 8년으로 직접 수정한 문서도 발견했고요. 저희 거실에 이 마을을 감싸고 있는 산이 보이는 큰 창문이 있습니다. 기사를 읽는 내내 그 큰 창문으로 돌멩이가 날아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두꺼운 유리창이 와장창 깨져 집 안으로 유리조각이 쏟아진 기분. 그러나 그 기사를 읽고 마음이 심난해졌다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나와 함께 한국까지 간 가족들이 그 기사를 볼까봐, 나 때문에 서초집회에 개근했던 한국의 지인이 알까봐, 혼자만 읽고 그 누구에게도 공유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에 다 나온 온라인 기사를 나만 혼자 본 게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그 후로 몇 달 후. 서초집회로 나를 안내했던 서울의 민주당원 지인과 줌 미팅을 하다가 조국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 분이 갑자기 ‘나 조국 이제 안 한다’ 고 하더군요. 깜짝 놀라 왜 그러느냐고 물으니 ‘사실을 알게 됐다’고 했습니다. 그는 정경심이 딸의 입시 합격을 위해 저지른 증명서 위조들, 소위 ‘7대 입시비리’ 혐의가 3심까지 모두 유죄로 인정됐다며 우리가 단톡방에서 링크를 주고 받으며 즐겨 보던 모 유튜브에서 ‘전부 무죄’ 라고 주장했던 정교수의 사모펀드 관련 혐의도 8개 중 4개가 유죄고 증거인멸을 시도한 것도 맞다고 말했습니다. 그 외에도 글로 다 쓸 수는 없는 여러 이야기들을 전했죠. 그 분은 저에게 ‘받아들이기 힘들겠지만 한국 뉴스의 기사를 골고루 잘 읽어보라. 우리가 모르는게 많더라’ 라고 하시더군요. 그 대화를 계기로 저는 뉴스를 찾아 읽기 시작했습니다. 무조건 우리정부와 민주당 편만 드는 매체가 아닌 중립적인 매체, 선동하고 화를 내기 보다는 사건을 좀 더 건조하게 전하는 기사를 찾아보았습니다. 조국수호를 외칠 때 들었던 유튜브 채널 대신 일반 뉴스들을 들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처음에는 괴로웠고 짜증이 나서 그만두고 싶었습니다. 조국은 누명을 썼고, 그 가족은 검찰개혁 과정에 ‘도륙’ 당한 희생양인데, 내가 알고 있던 내용과 다른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기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경심 교수의 35년 전 자기 경력 위조 건을 알게 된 후 내내 마음에 담아두었던 찜찜함을 풀고 싶었습니다. 여러 의혹들이 사실이 아니라면 내 판단이 옳았으니 다행이겠지만 조국이 범죄를 저지른게 사실이라면 그것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팩트’를 받아들이는 과정은 예상보다 괴로웠습니다. 내가 지키려고 했던 세계가 무너지는 것을 보는게 그런 심정일까요. 진심으로 화도 났습니다. 조국을 지키는 것이 문재인을 지키는 일인 줄 알고 두 번이나 한국을 오갔던 시간과 비용, 그 과정에서 내가 들였던 정성, 가족을 설득해 비행기를 탔던 것이 다 헛된 일이었다는걸 인정하고 화를 가라앉히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러나 한 번 사실에 눈을 뜨자 그동안 외면했던 여러가지 찜찜했던 순간들이 새삼 명확해졌습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해방감도 느꼈습니다. 거부감을 억누르고 여러 뉴스들을 들으며 법대 졸업 30년 만에 침침한 눈으로 ‘판결문’이란 것도 읽었습니다. 그렇게 철석같이 믿었고 지지했던 조국은 내 생각만큼 정의로운 사람이 아니었고 결백하지도 않았더군요. 오히려 ‘대체 어떻게 저랬을까’ 싶을만큼 마구잡이로 문서와 경력을 위조하고 명성을 이용해 이익을 챙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가 몇 번 말한 것 처럼 ‘강남좌파’, ‘서울대교수’로서 기득권의 특혜를 누린 정도? 그정도가 아닙니다. 그는 적극적으로 없는 사실을 만들고 사람들을 기만했습니다. 자식들의 학교 입학을 위해 공문서를 위조하고, 자기 권한이 아닌 직인을 찍고, 부부는 아들의 대학시험을 대리로 쳐 주고, 그 딸은 6학기 동안 성적미달로 낙제를 몇 번이나 하고도 장학금을 몰래 받았던 것은 사실이고 잘못이죠. 정경심이, 동양대에서 일하지도 않은 딸의 명의로 교육청에서 나오는 지원금을 조교 계좌로 받았다는 부분에서 저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조국은 서울대 교수 연구실에서 딸의 부산 호텔 인턴 증명서를 직접 위조했고 재판에서는 그 혐의에 대해 묵비권을 행사했습니다. 재판에 들어가기 전에는 당당하게 기자들 앞에 서고 묵비권 행사도 당연한 시민의 권리행사인 것 처럼 말했지만, 명백한 위조의 증거 앞에 사실은 항변할 말 자체가 없었던 것 아닐까요.
그랬던 그가 이재명대통령의 첫 사면을 받았습니다. 그가 나오는 모습을 유튜브 라이브로 봤습니다. 자신의 사면이 ‘검찰권 남용의 종식을 알리는 상징적인 장면으로 기록될 것’ 이라는 자평에 기함했습니다.
그는 인터뷰에서 ‘여러 번 사과했다’고 하지만 제가 느끼기에 그는 단 한 번도 사과한 적이 없습니다. ‘사과’는 잘못에 대한 인정과 반성이 전제돼야 합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공문서를 위조했다는 걸 인정한 적이 없습니다. 반성도 ‘특권을 인식 못했다’ 는 표현으로 넘어갑니다. 그것은 사과가 아니라 ‘사과조’ 의 말이며 제 3자가 할 법한 ‘유감표명’ 일 뿐입니다. 그랬던 그가 이제 ‘정치’로 자신의 ‘효용’ 을 입증하겠다고 하는데 무슨 소린지 모르겠네요.
조국은 대체 어떤 사람일까요. 저는 그를 ‘수호’ 하고 있다고 믿었지만 대체 뭘 보고 그렇게 열심을 냈던 것일까요. 사실은 제 잘못이 큽니다. 누가 ‘조국수호’ 하라고 강요한 것도 아닌데 제가 오지랖을 부렸습니다. 스스로 옳은 편에 섰다고 자만하며 팩트를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몇 번 ‘이건 아닌데’ 하는 순간들이 있었지만 애써 외면했던 것을 고백합니다. 가족들에게 특히 미안합니다. 고집 세고, 한번 무언가에 꽂히면 해야 되는 제가 유튜브만 보고, 듣기 좋은 뉴스만 골라 들으며 아는 척 하다가 가족들까지 고생시켰습니다. 서초집회 참석하려 비행기 탈 시간에, 부모님을 챙기고 휴가를 한 번 더 갈걸 그랬습니다.
조국은 3심에서 유죄를 받아 실형을 살고 사면을 받았는데 또 다시 선거에 나가 ‘심판’ 을 받겠다고 합니다. 선거승리가 범죄에 대한 면죄부가 되는 것이 맞는 일인지는 따지지 않겠습니다. 이미 한국사회는 그 지경을 넘어갔으니까요. 다만 의아한 건 그런 말을 하는 조국의 표정과 모습이 너무 비장하고 너무 당당해 보인다는 것입니다. 한국에 계신 여러분들, 그가 나라를 구하는 공을 세우고 부당한 고초를 겪었나요?
마지막 질문
그와 그의 가족을 걱정하며 바다 건너에서 애태웠던 시간들을 이제 제 인생의 흑역사로 남기고 잊어버리려 합니다. 사람을 못 알아본 제 잘못인데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그러나 그 전에 조국씨에게 하나만 묻고 싶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대답을 듣고 싶습니다. 조국의 강을 어렵게 건넌 사람으로서, 머나먼 태평양 건너에 있는 어느 나라의 시골에서 묻습니다.
“그래서, 조국씨. 상장이든 표창장이든 위조를 했나요 안 했나요?”

윤갑희 기자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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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흑역사의 시간들...
극공감의 글, 고맙고 감사하게 잘 읽었습니다.
강을 건너는 과정은 비록 고통스럽지만 해방되었다는 것은 축하할 일이에요. 정성스러운 글 감사합니다.
조국 힘내세요. 사과 백번 한다고 마음 돌릴것도 아닌데. 이제 대통령 후보로서 탄핵 준비해야죠. 이재명이 내려오기를 언제 기다리고 있어요. 내년 지방선거겸 대통령 선거 가야죠. 부릉부릉 대통령 병에 걸려 똥줄이 탈텐데
이분도 나와 같은 계기로 돌아서셨구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