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픽 : 박주현
요즘 SNS에는 진심인지 조롱인지 모를 '15만원 쿠폰으로 대패 삼겹살 플렉스!'를 외치는 간증이 넘쳐난다. 듣자하니, 그 쿠폰 덕분에 대패 삼겹살이라는 고귀한 음식을 영접하고, 잃어버렸던 가족의 사랑까지 되찾았다는 감동 실화가 미담처럼 퍼지고 있다. 참으로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김일성 주석께서 평생을 염원하셨다는 '이밥에 고깃국'이 드디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그것도 15만원이라는 절묘한 가격표를 달고 화려하게 부활한 느낌이다.
▲사진 : 연합뉴스 DB
북한 선전물 속 병사가 불고기를 보며 침 흘리던 모습이 - 죄송, 눈물이였나?- 오버랩되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뜨거운 그 사랑에 목메여"라니, 정말이지 감성 하나는 휴전선 반대편의 그들과 기가 막히게 통한다.
아니, 지금 우리는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가. 우리를 포함한 거의 모든 선진국에서는 위고비니 삭센다니 하면서, 너무 잘 먹어 터질 것 같은 배를 움켜쥐고 다이어트에 목숨 거는 판에, 일부는 '대패 삼겹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감읍하는 중이다. 참으로 눈물 나는 격차다. '풍요 속의 빈곤'이 아니라 '빈곤을 감동으로 포장하는 풍요'랄까.
정치란 게 원래 좀 그렇다. 복잡한 문제는 뒤로 미루고, 눈앞의 사탕발림으로 민심을 홀린다. 패망을 코앞에 뒀던 로마 황제들이 백성들에게 '빵과 서커스'를 던져주며 제국의 위기를 모면하려 했던 것은 고대인의 지혜(?)가 아니라, 인류 보편의 게으른 통치 방식이다. 지금 우리의 '15만원 불고기'는 그 현대판 버전이다. '배고픔을 느끼지 못하게 하라, 그러면 반란은 없다!'는 식의 통치 철학이 2천 년을 넘어 우리 식탁에 오르다니, 역사는 역시 코미디다.
더 가관은 이런 '감성팔이'에 기꺼이 영혼을 바치는 이들이다. 솔직히 북한 주민들 우리민족이라 가여이 여기다가도, 가끔은 답답하지 않았나. "아니, 어떻게 그 오랜 세월을 그렇게 살면서 봉기 한 번을 안 해? 대체 무슨 신념과 고집이 저리 강한 거야?" 하고 혀를 찼을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고개를 들어 우리 주변을 보라. 15만원짜리 삼겹살에 '인생이 달라졌다'며 눈물 흘리는 이들,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이라면 똥도 된장이라고 외칠 위인들이 바로 우리 옆에 넘쳐난다. 그들의 신념(?)과 고집(?)은 북한 주민들 못지않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그들은 '김일성 동지' 대신 '이재명 동지'를 외치고 있을 뿐이다. 물론, 이건 농담이다. (아마도?)
통일? 좋다. 한민족이니까. 그런데 말이다. 정말 두렵지 않나? 어마어마하다는 통일비용은 차치하더라도, 지금 이 순간에도 지역으로 똘똘 뭉쳐 자기들끼리 밥그릇 싸움에 열중하는 이 남쪽 인간 군상들을 보라. 과연 통일이 되면 북쪽에서 내려온 이들이 '아, 우리는 이제 남한식 합리주의에 따라 지역감정 따윈 버리고 대동단결하갔어!'라고 외칠까? 천만에. 그들도 필경 자신들의 '김씨 일가' 대신 새로운 '김씨', '이씨' 혹은 '박씨'에 대한 맹목적 충성심을 발휘하며 또 다른 밥그릇을 요구할 것이다.
결국 '북수령'이나 '남수령'이나, '북한 주민'이나 '극렬 지지자'나, 다들 제 밥그릇과 감성에 충실한 '한민족'이라는 사실만 명확해질 뿐이다.
그러니 이제 15만원짜리 '불고기 감성'은 접어두자. 그 돈으로 배 채우고 등 따뜻하게 지질 생각만 하다가는, 언젠가 로마 제국처럼 화려한 서커스 뒤에서 조용히 멸망하는 꼴을 볼지도 모른다. 삼겹살 한 조각에 영혼을 팔기에는 우리의 미래가 너무 아깝지 않은가. 차라리 그 돈으로 헬스장을 끊고 돈을 보태 위고비를 지르는 것이 더 생산적인 행위일 것이다. 뭐, 이건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