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대통령의 직무정지와 유죄추정의 원칙
  • 조광태
  • 등록 2024-12-18 10:57:30
  • 수정 2024-12-18 10:58:04

지난 토요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같은 날 대통령 직무정지가 결정됐다.

 

이 결정에 따라 윤석열 대통령은 거의 대부분 대통령으로서의 법률적 권한을 행사할 수 없게 됐다. 국군통수권와 조약체결 비준권, 법률안 거부권, 헌법개정안에 대한 발의 내지는 공포권, 예산안 제출권 등과 같은 굵직굵직한 권한 외에도 외교사절 접수권, 공무원 임면권 등과 같은 일상적인 직무에서 모두 배제된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러한 직무정지는 우리가 흔히 당연시하고 있는 ‘무죄추정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정치인에게 유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하는 이유 (그래픽=가피우스)

 말은 거창하지만, 탄핵소추라 함은 대통령이 헌법이나 법률상 금지돼 있는 행위에 대해 심대한 위반을 하였고, 이에 대해 국회가 헌법재판소에 기소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말하자면, 대통령은 지금 재판에 의한 유죄의 확정단계가 아니라, 기소에 의한 피의자의 단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무죄추정의 원칙의 관점에서 보자면,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의 최종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국민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일체의 권한을 모두 행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대통령은 지금 유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일체의 권한으로부터 배제된 셈인데, 어느 누구도 이 원칙이 잘못되었다거나, 이상하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오히려 지극히 상식적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그것은 그가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개인 윤석열에 대해서는 무죄추정의 원칙에 입각한다 하더라도 대통령으로서의 윤석열에 대해서는 그럴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대통령은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재판을 받을 동안 그의 권한을 일시적으로나마 정지시켜놓지 않는다면, 그가 최종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그 권한을 어떻게 사용할지 알 수 없다. 아주 극단적으로는 제 2의 계엄과 같은 사태가 발생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설사 그가, 그러한 권한을 사용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래서 극히 평범한 일상의 권한만을 사용해 정국을 운영한다 하더라도, 만약 그가 최종적으로 유죄의 판결을 받는다면, 그리하여 그가 대통령으로서 국정을 운영할 자격이 없음이 밝혀진다면, 그가 그동안 행사했던 모든 일상의 권한조차도 무자격자가 행사한 것이 될 것임은 자명하다. 국정을 일시적으로나마 무자격자가 운영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정치인에게 유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되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것이다. 게다가 직접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일반 국민들의 정서와도 부합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범죄의 가능성이 있는자가 정치적 의사결정권을 갖는다면, 그가 그 결정권을 남용할 가능성이 높을 뿐더러,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의사결정권이 없는 자에게 의사결정권을 부여하는 결과가 발생한다. 게다가 그 결정권이라는 것을 자신의 범죄사실을 감추거나 지우는데 사용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자칫 법률적 질서의 파괴까지도 사회 전체가 감수해야 하는 위험성이 커질 수 밖에 없다.

 

한 때 민주당은 기소단계에 있는 당원에 대해 일체의 당직으로부터 배제한 바가 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 대해서는 아예 기소이전의 단계에서 jtbc의 보도만으로 그를 출당시킨 사례가 있다. 이는 당시 민주당이 ‘정치인에 대한 유죄추정의 원칙’을 정확히 이해하고, 이를 엄격히 실행한 것이라 판단할 수 있다. 정치적 의사결정이든, 당내의 의사결정 권한이든 일체의 권한에 대해 ‘무죄추정의 원칙’이 가져올 잠재적 위험성을 확실하게 배제한 셈이다.

 

정치인 이재명이 당대표가 되는 과정에서 이 원칙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심지어는 기소단계가 아닌, 1심에서 유죄판결이 난 당대표에 대해서조차 ‘유죄추정의 원칙’은 적용되지 않았다. 더 나아가 이재명 대표는 최근 한 기자의 질문에 답하면서 ‘무죄추정의 원칙’을 언급했다. 조기대선이 있게 되면 2심에서 최종판결이 나더라도 대선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한 셈이다.

 

기소 이후 지금까지 줄곧 이재명 대표에 대한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되면서, 민주당이 방탄정당이 되었다는 목소리들이 높아지고 있다. 재판중에 선거법 자체를 건드리고자 하는 민주당의 움직임 단 한가지만 예로 들더라도, 이러한 목소리들이 매우 타당한 근거를 갖고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요컨대, 민주당은 이미 유죄가능성이 있는 정치인에 대해 무죄추정의 원칙을 적용하고, 그에게 당대표라는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그가 그 권한을 자신의 범죄적 혐의와 관련된 영역에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고, 이것이 최근 민주당의 종잡을 수 없는 횡보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무죄추정의 원칙’이 주는 피해는 당원과 국민 모두의 몫이 되고 있다.

 

이재명 대표가 무죄임을 입증하지 못하고, 재판을 다 마치치 않은 상태에서 유죄의 가능성을 가진 상태로 대선에 출마하고 혹여 당선이 된다 가정한다면, 그 결과는 참담하지 않을 수 없다. 다 해결되지 않는 그의 범죄 혐의에 대해 그가 가진 권한을 어떻게 사용하게 될 지, 그 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법률적 시스템이 어떻게 무너지게 될 지 가늠조차 쉽지 않다.

 

백걸음을 양보하여, 그가 그러한 행위를 하지 않는다 치더라도, 추후에라도 그가 유죄의 상태이었음이 밝혀졌을 때, 우리는 자격없는 정치인에게 국정운영을 맡긴 셈이 될 것이고, 아마 우리 헌정사상 씻을 수 없는 흑역사를 남기게 될 것이 분명하다.

 

이 점에서 정치인에 대한 유죄추정의 원칙은 개인에 대한 무죄추정의 원칙과 서로 배치되는 원칙도 아닐 뿐더러, 우리 사회를 맑고 건강하게 유지해나가기 위한 초 헌법적인 대원칙이라 말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든, 이재명 당대표이든, 누구나 이 원칙에서 열외일 수 없다.

 

<조광태 / 칼럼니스트>


TAG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로그인

댓글 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이 기사에 6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 프로필이미지
    alsquf242024-12-19 11:26:45

    상식과 원칙이 무너진 여의도의 말들은
    자기네는 맞고 상대는 틀리다는 것이 전부인 듯 보입니다.
    계엄시기부터 국힘은 내란힘이 되었고
    이제명은 1심 유죄 실형에도 무죄추정을 힘주어 말합니다.

    조광테 칼럼니스트님의 맺는 말씀이 너무나 맞고 옳으며 당연하게
    모두에게 수용이 되고,
    모두에게 적용되는 세상을 바랍니다.

  • 프로필이미지
    jeuro212024-12-18 21:22:57

    머리에 쏙 유익한 기사 감사합니다

  • 프로필이미지
    buddhachois2024-12-18 14:39:26

    조폭당 입에 안맞으면 유죄추정 조폭당필요할땐 무조추정의 원칙. 개들은 그냥 이현령비현령

  • 프로필이미지
    ssun3172024-12-18 12:36:11

    시스템이 무너지는 일이 제발 일어나지 않길 바랄뿐입니다ㅜㅜ
    좋은 기사 잘 봤습니다.

  • 프로필이미지
    storyfarm2024-12-18 11:34:13

    세세히 알려주신 말씀, 감사히 읽었습니다.

  • 프로필이미지
    sykimapp2024-12-18 11:16:58

    공감합니다. 너무도 상식적인 말씀이네요.

아페리레
웰컴퓨터
많이 본 뉴스더보기
  1. [분석] 론스타 4천억 승소 역겨운 광팔이 민주당... 3년 전에는? 2025년 11월 19일한국 정치의 고질병인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식 태도가 13년을 끌어온 론스타 국제투자분쟁(ISDS) 승소 국면에서도 여지없이 반복되고 있다. 3년 전, 법무부가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할 당시 "이길 확률이 전무하다"며 결사반대했던 정치 세력이, 막상 '전부 승소'라는 극적인 결과가 나오자 정.
  2. 이낙연 "피고인 대통령 만들려 법치 짓밟아"... 공무원 사찰 '전체주의' 맹비난 새미래민주당 이낙연 상임고문이 15일 현 정부를 정면 비판했다. 그는 SNS를 통해 정부의 75만 공무원 감찰 시도를 '전체주의'에 빗대고, "민주주의 붕괴"를 경고했다.이 고문은 "한국 민주주의는 어디까지 허물어지려나"라고 반문하며 "피고인 대통령을 무죄로 만들려고 법치주의를 짓밟는 일은 이미 계속되고 있다"고 포문을 열었다."...
  3. 남욱 "내 재산 동결 안 풀면 고소"… 도둑의 오만은 법치의 죽음에서 자란다 검찰의 '항소 포기' 선언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대장동의 '키맨' 남욱이 입을 열었다. "동결된 자산을 풀어주지 않으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검토하겠다." 도둑이 되려 파수꾼에게 '내 몫을 빨리 내놓지 않으면 혼쭐을 내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그야말로 적반하장의 극치다.법치(法治)와 법을 이용한 통치....
  4. 썩어가는 것과 익어가는 것의 차이 가을 숲을 걷다 보면 바닥에 떨어진 낙엽들 사이로 오묘한 냄새가 난다. 개중에는 잘 마르고 발효되어 흙으로 돌아가는 그윽한 향기가 있는가 하면, 물기를 머금은 채 질척하게 썩어가는 쿰쿰한 악취도 있다. 인간의 나이 듦도 이와 다르지 않다. 시간은 공평하게 흐르지만, 그 시간이 인간이라는 그릇에 담길 때는 전혀 다른 화학 작용을 일.
  5. 민주당 '유동규 녹취록 속 대통령은 '윤석열'? 백광현 되치기 기자회견 17일 오전 백광현 씨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유동규와 남욱의 녹취록을 추가로 공개했다. 해당 녹취록에는 '이재명' 이름이 언급되어 있어 후폭풍이 예고된다. 이번 기자회견은 지난 12일 진행한 기자회견의 후속편으로,  (2023년 봄 녹음)된 것으로, 대장동 사건을 두고 두 피고인이 대화를 나누는 내용이 담겼다. 이 녹취록에서 ...
  6. 민주당을 향한 외통수 "대장동 환수법" 국가가 대장동 개발 비리 사건의 범죄 수익 환수를 공식적으로 포기한 상황에서 논란의 항소포기를 중심에서 처리한 박철우 검사는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영전했다. 박철우 검사를 서울중앙지검장에 앉힌 인사는 이 사태의 본질을 명확히 보여준다. 이것은 실패에 대한 문책이 아니라, 성공적인 임무 완수에 대한 포상에 가깝다. 검찰 조직을...
  7. 이낙연 "대장동 항소 포기는 국가 주도 범죄... 전체주의 망령 어른거려" 이낙연 "대장동 항소 포기는 국가 주도 범죄... 전체주의 망령 어른거려"대장동 항소 포기와 사법 시스템 붕괴 비판이낙연 새미래민주당 상임고문(전 국무총리)이 19일 유튜브 채널 '류병수의 강펀치'에 출연해 검찰의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사건 항소 포기를 "국가가 나서서 범죄자를 도와준 국가 주도 범죄"라고 규정하며 강하게 비판...
  8. YTN의 ‘자발적 복종’ 더불어민주당이 ‘국론 분열을 조장하는 중대한 국기문란 행위’라는 좌표를 찍자, YTN은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의 풍자 영상을 다룬 보도를 삭제하고 한 발더 나아가 ‘정치인 SNS 영상 사용 금지’라는 사실상의 백기를 들었다. 모든 일은 순식간에, 그리고 질서 정연하게 일어났다.'국기문란(國基紊亂)'. 유신 시대의 낡은 ...
  9. 탱크만 없는 계엄령, 그 거대한 수용소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23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교민들에게 "또 계엄하는 거 아닌가 걱정되실 텐데, 그런 일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좌중에서는 웃음이 터졌다고 한다. 그러나 서울에서 이 소식을 접한 국민들은 헛웃음조차 나오지 않는다. 국정 최고 책임자의 그 한가한 농담은, 지금 대한민국이 처한 절체절명의 위기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
  10. 프랑켄코리아 (Franken-Korea) 정치라는 무대 위에는 때때로 기이한 혼종(混種)이 등장한다. 완전히 새로운 존재가 아니라, 이미 사라졌다고 믿었던 과거의 망령들을 덕지덕지 기워 붙여 만든 프랑켄슈타인의 괴물 같은 것.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정권의 모습이 그러하다. 이들은 놀라울 만큼 창의성 없는 방식으로, 역대 정권들이 저질렀던 최악의 실수와 가장 추악했던 .
후원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