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모두가 놀랐던 이재명 2년 구형... 검찰은 왜?
  • 윤갑희 기자
  • 등록 2024-09-23 20:44:06
  • 수정 2024-09-25 13:42:34

지난 20일 오후 5시 30분경, 언론사 웹사이트들에서 '검찰, 이재명 징역 2년 구형' 기사가 잇따라 올라오기 시작했다.

검찰이 실형을 구형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으며, 그 중에서도 법정 최고형을 구형할 것이라고 상상한 사람은 주변에 없었다.

필자도 벌금형을 꽤 높은 액수로 구형하리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2년'이라는 구형량을 보고 30초가 넘도록 "이게 뭐지? 센 건가, 약한 건가?" 하며 잠시 혼란에 빠졌었다.


20일 선거법 결심공판을 마치고 기자들에게 질문 받는 이재명 대표 (사진=연합)


이재명 대표 지지자들이나 유튜버들의 반응 중에는 "어차피 무죄가 나올 혐의에 검사가 객기를 부려 최대 형량을 때렸다"는 의견도 있었고, "최대형량 구형은 재판장을 자극해 불리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추측도 난무했다. 그러나 법조계의 대체적인 반응은 "저 정도로 구형을 하면 판사는 벌금 100만 원 이하로 선고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검찰의 구형은 판사의 선고에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그 영향력은 절대적이지 않다. 판사는 구형 외에도 다양한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최종 판결을 내린다. 그러나 법학계에서는 '정박 효과(Anchoring Effect)'라는 개념이 있어, 검사가 제시하는 형량이 기준점으로 작용해 판사의 선고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본다.

정리하자면, 검사가 저 정도로 구형할 때는 그럴만한 근거를 가지고 있으니 판결을 유추할 수 있는 중요한 기준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19년, 검찰은 또 다른 이재명 선거법 재판 2심에서 벌금 600만 원을 구형했으며, 법원은 벌금 300만 원을 선고한 바 있다. 검찰이 항상 최대 형량을 구형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이번 징역 2년 구형 역시 그 만큼의 사안이 법리적으로 판단되었음을 의미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왜 아무도 법정 최고형 구형을 예상하지 못했는가'이다. 이재명 선거법 재판에 많은 관심이 집중되었지만, 모두가 시야가 좁아져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검찰은 20일 결심 공판에서 구형을 하며 “정의의 여신상이 법원에 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죄질 등 불법성 정도에 따라 법은 원칙대로 적용돼야 한다. 피고인의 신분이나 정치적 상황에 따라 공직선거법 적용 잣대가 달라지면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공직선거법 취지가 몰각된다”고 강조했다.

이날 검찰이 왜 저런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했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올해 6월, 대법원은 허경영에게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이재명과 마찬가지로 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였다. 상대적으로 덜 주목 받는 인물의 재판이었기 때문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선거법 재판 사상 최고의 구형이었고, 최고의 선고였다.


20일 결심 공판에서 검찰은 허경영과 배소현 사례를 들며, 동일한 기준으로 이재명이라는 피고인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원칙대로 적용해야 한다고 법정에 호소했다.

검찰조차 선거법상 허위사실 유포에 법정 최고형 구형 및 선고가 가능한 전례를 겪으며 적잖이 놀랐을 것이며, 허경영 사건보다 죄질이 더 나쁜 이재명 사건에서도 최대 형량을 구형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을 것이다.


즉, 이재명 선거법 재판에 대한 징역 2년 구형은 지난 6월 허경영 최종 선고가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쯤 되면 허경영 재판을 간단히 정리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문제가 된 발언은 “나는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양아들이고, 박정희 대통령의 비선 정책 보좌역이었다”라는 것이다.


재판 내내 허경영은 두 가지 사실을 전혀 입증하지 못했고, 혐의 또한 인정하지 않으며 비상식적 주장으로 일관했다. 허경영 측 증인들은 법원으로부터 신빙성을 전혀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나 '당선을 목적으로' 한 허위사실이기는 하지만, 0.83% 득표에 그친 후보라서 죄질이 이재명보다 가볍다. 0.79% 차로 낙선된 이재명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최근 선거법을 무겁게 다스리는 경향도 있고, 허경영의 사회적 해악을 끼치는 다른 범죄들이 판사의 선고에 큰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 

허경영의 판결문을 보면 “과거에 같은 잘못을 저지르고도 표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으로 다시 같은 범죄를 저질러 선거를 혼탁하게 만들었고, 앞으로도 이런 행동을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정치 영역에서 피고인 허경영을 배제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 있었다.


그리고 이와 거의 동일한 혐의를 받는 이재명 판결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다음으로는 동종 전과에 대한 형 가중 요소를 주목해야 한다. 본지 기사 [이재명 선거법 재판 시리즈③]에서 언급한 바 있듯, 동일 범행이라도 누범 기간 내 벌어진 것이 아니라면 가중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올해 2월에 있었다.


그러나 허경영은 누범 기간을 훨씬 초과한 동종 전과임에도 최고형량 선고로 이어졌다는 것을 참고할 만 하다.

허경영은 2007년 대선 때도 “내가 이병철 회장의 양자고, 박정희 대통령의 비선 참모였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했으며, 10년간 피선거권을 박탈당한 전력이 있다.


결론적으로, 허경영이 6월 대법원에서 최고형량을 선고받은 것은 이재명 판결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으며, 이는 이재명 정치 인생에서 최악의 불운이라 할 수 있다.


TAG

프로필이미지

윤갑희 기자 다른 기사 보기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로그인

댓글 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이 기사에 2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 프로필이미지
    guest2024-09-24 03:16:37

    비교 회로가 고장났나요? 허경영 말하고 다닌거랑 이재명이랑 비교를 하고있네?? 0.79차이로 이재명이 당선????은 또 뭐고????

    더보기
    • 삭제
  • 프로필이미지
    guest2024-09-23 21:15:41

    어찌보면 이재명의 자충수라고 보면 됩니다. 질질 끌지 않았으면 허경영보다 빨리 형 선고가 나올 가능성이 높았을테니까요.

    더보기
    • 삭제
아페리레
웰컴퓨터
많이 본 뉴스더보기
  1. [분석] 론스타 4천억 승소 역겨운 광팔이 민주당... 3년 전에는? 2025년 11월 19일한국 정치의 고질병인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식 태도가 13년을 끌어온 론스타 국제투자분쟁(ISDS) 승소 국면에서도 여지없이 반복되고 있다. 3년 전, 법무부가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할 당시 "이길 확률이 전무하다"며 결사반대했던 정치 세력이, 막상 '전부 승소'라는 극적인 결과가 나오자 정.
  2. 썩어가는 것과 익어가는 것의 차이 가을 숲을 걷다 보면 바닥에 떨어진 낙엽들 사이로 오묘한 냄새가 난다. 개중에는 잘 마르고 발효되어 흙으로 돌아가는 그윽한 향기가 있는가 하면, 물기를 머금은 채 질척하게 썩어가는 쿰쿰한 악취도 있다. 인간의 나이 듦도 이와 다르지 않다. 시간은 공평하게 흐르지만, 그 시간이 인간이라는 그릇에 담길 때는 전혀 다른 화학 작용을 일.
  3. 민주당 '유동규 녹취록 속 대통령은 '윤석열'? 백광현 되치기 기자회견 17일 오전 백광현 씨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유동규와 남욱의 녹취록을 추가로 공개했다. 해당 녹취록에는 '이재명' 이름이 언급되어 있어 후폭풍이 예고된다. 이번 기자회견은 지난 12일 진행한 기자회견의 후속편으로,  (2023년 봄 녹음)된 것으로, 대장동 사건을 두고 두 피고인이 대화를 나누는 내용이 담겼다. 이 녹취록에서 ...
  4. 민주당을 향한 외통수 "대장동 환수법" 국가가 대장동 개발 비리 사건의 범죄 수익 환수를 공식적으로 포기한 상황에서 논란의 항소포기를 중심에서 처리한 박철우 검사는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영전했다. 박철우 검사를 서울중앙지검장에 앉힌 인사는 이 사태의 본질을 명확히 보여준다. 이것은 실패에 대한 문책이 아니라, 성공적인 임무 완수에 대한 포상에 가깝다. 검찰 조직을...
  5. 이낙연 "대장동 항소 포기는 국가 주도 범죄... 전체주의 망령 어른거려" 이낙연 "대장동 항소 포기는 국가 주도 범죄... 전체주의 망령 어른거려"대장동 항소 포기와 사법 시스템 붕괴 비판이낙연 새미래민주당 상임고문(전 국무총리)이 19일 유튜브 채널 '류병수의 강펀치'에 출연해 검찰의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사건 항소 포기를 "국가가 나서서 범죄자를 도와준 국가 주도 범죄"라고 규정하며 강하게 비판...
  6. 대통령의 '무지(無知)'가 국가 안보의 최대 위협이다 국가 지도자의 말은 그 자체로 전략이자 메시지다. 적대국과 총구를 맞대고 있는 분단국가의 대통령이 공개석상에서 내뱉는 안보 관련 발언은 천금의 무게를 지녀야 한다. 그러나 지난 24일 해외 기자 간담회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보여준 인식은 가벼움을 넘어 참담한 수준이었다. 그는 50년간 대북 심리전의 핵심이었던 대북 방송을 "바보짓...
  7. 탱크만 없는 계엄령, 그 거대한 수용소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23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교민들에게 "또 계엄하는 거 아닌가 걱정되실 텐데, 그런 일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좌중에서는 웃음이 터졌다고 한다. 그러나 서울에서 이 소식을 접한 국민들은 헛웃음조차 나오지 않는다. 국정 최고 책임자의 그 한가한 농담은, 지금 대한민국이 처한 절체절명의 위기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
  8. YTN의 ‘자발적 복종’ 더불어민주당이 ‘국론 분열을 조장하는 중대한 국기문란 행위’라는 좌표를 찍자, YTN은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의 풍자 영상을 다룬 보도를 삭제하고 한 발더 나아가 ‘정치인 SNS 영상 사용 금지’라는 사실상의 백기를 들었다. 모든 일은 순식간에, 그리고 질서 정연하게 일어났다.'국기문란(國基紊亂)'. 유신 시대의 낡은 ...
  9. 프랑켄코리아 (Franken-Korea) 정치라는 무대 위에는 때때로 기이한 혼종(混種)이 등장한다. 완전히 새로운 존재가 아니라, 이미 사라졌다고 믿었던 과거의 망령들을 덕지덕지 기워 붙여 만든 프랑켄슈타인의 괴물 같은 것.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정권의 모습이 그러하다. 이들은 놀라울 만큼 창의성 없는 방식으로, 역대 정권들이 저질렀던 최악의 실수와 가장 추악했던 .
  10. 국민연금 손대려는 정권, 그래놓고 청년더러 "속았다" 하는가 아침 출근길 지하철 풍경을 유심히 본 적이 있는가. 붐비는 객차 안, 이어폰을 꽂고 스마트폰 화면에 몰입해 고개를 끄덕이는 4050 중년들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들의 작은 화면 속에서는 어김없이 '그'가 등장한다. 더부룩한 수염에 특유의 건들거리는 말투, 김어준 씨다.그 화면 속에서 김어준 씨와 패널들은 혀를 차며 말...
후원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