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의 '대장동 항소 포기' 토론 제안이 4번째 상대인 박범계 민주당 의원에게서 '조건부 수락' 응답을 '일단은' 받아냈다.
18일 박범계 의원은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했다. 그는 토론 가능성에 대해 "판결문의 내용에 대해서 조목조목 제 질문에 답을 하면 얘기할 수도 있다"고 운을 뗐다. 하지만 핵심 조건은 따로 있었다. 진행자가 재차 묻자, 박 의원은 "깐족거리는 태도를 바꾸면"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한 전 대표 특유의 화법, 즉 야권이 비판해 온 '태도'를 문제 삼은 것이다. 주목할 점은 박 의원이 "태도가 안 바뀔 것 같다"고 덧붙여, 토론 성사에 대한 회의론을 스스로 드러냈다는 점이다. '태도'라는 주관적 잣대는, 박 의원이 향후 "태도가 변하지 않았다"며 토론을 거부할 '퇴로'를 미리 설계한 것으로 풀이된다.
법무부 장관들 쫄? (그래픽-가피우스)
한동훈 전 대표는 이 절묘한 '조건부 수락'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당일 페이스북을 통해 "저는 토론에서 박범계 전 장관이 말하는 것 뭐든지 다 공손하게 답할테니, 바로 시간과 장소를 잡자"고 즉각 맞받았다. 이로써 토론 무산 시 박 의원은 '태도'를 핑계 대기 어려워졌다.
나아가 한 전 대표는 "역시 박범계 전 장관은 다른 세 분(정성호, 추미애, 조국)과 다르다"고 치켜세웠다. 이는 토론을 회피한 3명과 박 의원을 분리해 고립시키는 동시에, 박 의원의 퇴로를 차단해버린 것이다.
"관심있는 언론에서... 일정 잡아주시면 저는 다 맞추겠다"는 압박은 토론 무산 시 책임을 박 의원에게 돌리겠다는 쐐기다. '깐족거림'과 '공손함'으로 시작된 수 싸움은, '누가 토론을 피하는가'라는 여론전 주도권을 잡기 위한 명분 싸움으로 전개되고 있다.
한동훈 전 대표가 '토론'을 승부처로 삼은 것은 처음이 아니다. 그는 정의당 장혜영 전 의원과 '쿠팡 새벽배송' 논쟁으로 '토론 정치'에 불을 붙였다.
이 논쟁은 진보 진영의 '심야시간 새벽배송 제한' 주장으로 점화됐다. 당시 장혜영 전 의원은 쿠팡 야간 배송 기사의 과로사 사례와 통계를 제시하며 , "직업 선택의 자유"가 "죽음을 각오한 일터"를 선택할 자유는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녀는 분류 인력 충원 등 "쿠팡이 아주 조금만 시스템을 개선하면" 노동자의 건강과 소비자 편익을 모두 지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맞선 한동훈 전 대표의 논리는 명쾌했다. 그는 '건강권' 프레임을 '선택권'과 '소비자 편익' 프레임으로 맞받았다. 한 전 대표는 새벽배송 종사자들이 '더 많은 수입'과 '나은 업무 환경'을 이유로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택배기사들과 수많은 시민들이 왜 민주당과 민주노총과 같은 제3자들이 소중한 일터를 망치고, 소비자 편익을 침해하느냐고 되묻고 있다"며, 이 문제를 '노동자/소비자' 대 '강성노조/진보정당'의 구도로 전환시켰다.
그는 노동·경제 이슈에 뛰어들어 진보 진영의 핵심 의제를 공격했고, '시장주의', '소비자 편익', '반(反)강성노조'라는 보수 정치인의 정체성을 확립하며 프레임 전쟁 문법을 입증했다.
박범계 의원의 '조건부 수락'이 주목받는 이유는, 한 전 대표가 지목한 4명의 전·현직 법무부 장관 중 유일하게 '도망'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장동 항소 포기 사태'는 11월 7일 검찰이 '대장동 비리' 1심 판결 항소를 포기하며 촉발됐다. 이로써 1심이 인정하지 않은 약 7886억 원의 범죄수익 추징이 불가능해졌다는 비판이 제기됐고, 한 전 대표는 이를 "검찰 자살" , "불법 항소 포기" 로 규정하며 공세에 나섰다.
한 전 대표의 '토론 공세'는 11월 12일 시작됐다. 그는 정성호 법무부 장관, 추미애 전 장관, 조국 전 조국혁신당 비대위원장 3인을 지목해 "국민 앞에서 공개 토론"을 제안했다.
그는 "언제든, 김어준 방송 포함 어느 방송이든, 한 명 아니라 여럿이라도 저는 좋다"며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었다. 이는 단순한 토론 제안을 넘어, 자신을 이재명-문재인 정부의 법무부 장관들과 동급 이상으로 자리잡으려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3인의 반응은 사실상 '토론 거부'였다. 조국 전 장관은 한 전 대표의 제안을 "칭얼거림" 이라며, "수사받을 준비나 하라"고 맞받았다. 한 전 대표는 "구질구질하게 대타 내세우고 도망가지 말고 '야수답게' 나오라"고 재반격했다. 정성호 현 장관은 "국민 상대로 사기 치는 것"이냐며 주장을 반박했으나 토론에 응하지 않았다. 추미애 전 장관 역시 직접적인 응답을 피했다.
이들의 '회피'는 한동훈 전 대표에게 "다 비겁하게 도망갔다" 고 선언할 명분을 줬다. '도망자 프레임'이 완성되자, 한 전 대표는 11월 17일 박범계 의원을 "민주당 법무부장관 대표선수"로 지목하며 "안 보이는 데서 혼자 '아무말 대잔치' 하지 말고 공개 토론하자"고 네 번째 '법무부장관'을 겨눴다.
토론이 성사된다면, 격돌 지점은 명확하다. 이는 단순한 항소 포기 여부를 넘어, '검찰' 조직을 보는 근본적인 철학의 대리전이 될 전망이다.
박범계 의원은 사태의 본질을 "소위 검찰주의 검찰주의자들의 망동"으로 본다. 그는 한 전 대표를 "검찰주의자들의 수장이었던" 인물로 규정하며, 이번 사태를 "촛불처럼 가물가물 꺼지는 상황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키워야 되겠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정치적 '이슈 몰이'로 평가절하한다.
박 의원은 정성호 장관의 '외압' 의혹에 대해서 '불법 외압'으로 모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반박한다. 오히려 그는 자신이 장관이던 시절의 '1차 수사팀' 수사가 이번 판결로 "정당했다는 것이 확인"됐으며, 윤석열 정권의 '2차 수사팀'이야말로 "이재명 당시 대선 후보를 제거하기 위한 목적"을 가진 정치 수사였다고 주장한다. 박 의원에게 검사들의 집단 반발 은 '항명'이자 '망동'이다.
반면 한동훈 전 대표는 '본질'을 "이재명 공범의 의리"로 본다. 그는 항소 포기를 "이 대통령이 대장동 일당을 편드는 것"으로 규정하며, 그 결과 "막대한 범죄수익금을 회수할 길이 막혔다"고 비판한다. "대장동 업자들은 전부 재벌이 됐다" 는 그의 비판은 법리가 아닌 대중의 '정의감'에 호소한다.
한 전 대표는 박 의원의 '통상적 협의' 주장을 정면 반박하며, 정성호 장관과 노만석 총장 직무대행 등을 "직권남용 공범" 으로 지목한다. 나아가 "감옥에 가야 하고 자기 재산으로 (손해를) 보상해야 한다" 고 주장하며, 이는 '불법 외압' 에 대한 검찰 내부의 집단 반발과 궤를 같이 한다.
그렇다면 "박범계는 과연 안 도망갈까?"
조국 전 장관 등의 '칭얼거림', '무시' 전략은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한 전 대표는 '도망자 프레임'을 손쉽게 선점했다.
박범계 의원은 이 실패를 학습하고, '무시'가 아닌 '조건부 수락'이라는 카드를 꺼냈다. '나는 응했는데, 한동훈이 토론의 기본(판결문 숙지, 예의)이 안 되어 무산됐다'는 새로운 프레임을 짜기 위한 '프레임 탈취' 시도다.
하지만 토론 성사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박범계 의원은 "태도가 안 바뀔 것 같다" 고 미리 선언함으로써, 토론 무산의 책임을 한 전 대표에게 떠넘길 명분을 확보했다.
그렇게 되면 한 전 대표는 "박범계마저 결국 도망갔다"고 조롱하며 항소포기 사태를 지켜보는 중도층에게 이 사태를 보는 하나의 기준을 제시하게 될 것이다.
누가 뭐래도 네명의 민주진영 법무부장관이 궁색해서 토론에 응하지 않은 것은 명백한 사실이 되기 때문이다.

윤갑희 기자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사에 4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미래에서 왔습니다
토론 결국 결렬
조/추/정/박 넷이 함께 덤벼도 한동훈 못 당할 거 같아요.
궁금해지네요 ㅎㅎ
잘 읽었습니다
한동훈이 조선제일 빵칼이 아닌 것을 증명할 기회를 한 번만 좀 달라.
(그래도 빵칼이면 어쩔 수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