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석 국무총리 [연합뉴스 자료사진]
때때로 명칭은 실체를 가리기 위해 존재한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시킨 TF의 공식 명칭은 '헌법존중 정부혁신 TF'다. 헌법을 존중하고 정부를 혁신하겠다는 이 이름만 보면, 누구도 반대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 활동 방식과 대상을 들여다보면, 이 명칭은 현실을 정교하게 비트는 오웰적(Orwellian) 농담에 가깝다.
먼저 그 규모다. 이 TF의 조사 대상은 특정 소수가 아니다. 확인된 바에 따르면, 그 범위는 49개에 달하는 중앙행정부처의 공직자들을 포괄한다. 사실상 행정부 전체를 잠재적 조사 대상으로 설정한 것이다. 여기에 개인 휴대전화를 '자발적'으로 제출하되, 불응 시 인사상 불이익을 주겠다는 방침은, '존중'이라는 단어가 무색하게도 헌법이 보장하는 개인의 기본권을 정면으로 위협한다. 이는 적법절차의 원칙을 무시하고 행정 권력을 통해 사법적 판단 영역까지 침범하려는 위험한 시도다.
이러한 모순적 행보를 주도하는 이재명 대통령이 과거 자신의 수사 과정에서 보여준 태도는 이 TF의 본질에 대한 의구심을 증폭시킨다. 그는 개인의 정보보호와 방어권을 내세워 휴대전화 제출을 거부하고 비밀번호 비공개를 옹호했다. 개인의 권리였던 논리가, 이제는 국가권력이 되어 타인의 권리를 겨누는 칼날이 된 것이다. 이 명백한 자기부정은 TF의 목적이 순수한 '헌법 수호'에 있지 않다는 강력한 반증이다.
그렇다면 진짜 목적은 무엇인가. 가장 합리적인 추론은 이것이 '고위직 자리 만들기'를 위한 고도로 계산된 정치적 압박이라는 분석이다.
지난 정부에서 임명되어 임기가 남은 고위 공직자들은 현 정권 입장에서 가장 큰 인사 장애물이다. 이들을 합법적으로 교체하는 데는 복잡한 절차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바로 이 난제를 '내란 청산 TF'가 해결해 준다. 49개 부처라는 광범위한 조사 대상을 설정하고 '휴대전화 제출'이라는 초법적 수단까지 동원하며 공포 분위기를 극대화하면, 굳이 개개인의 비리를 찾아내지 않아도 된다.
전 정권과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는 고위직들은 그 자체로 심리적 압박을 받게 된다. 정치적 보복의 희생양이 되거나, 끝없는 소명 과정에 시달리느니 차라리 '자진사퇴'를 택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지가 된다. 결국 이 TF는 실제 내란 가담자를 색출하는 것보다,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 인사들을 스스로 물러나게 만드는 '솎아내기' 장치로 기능하게 되는 것이다. 정권은 그렇게 확보된 자리에 자신들의 사람을 임명하며 공직 사회에 대한 장악력을 손쉽게 높일 수 있다.
결론적으로, '헌법존중'이라는 역설적인 이름을 내건 이 거대한 사정 작업은 법치주의의 외피를 쓴 정치 공학에 가깝다. 그 대가로 정권은 원하는 자리를 얻을지 모르나, 국정 운영의 근간이 되어야 할 공직 사회는 불신과 공포, 정치적 줄서기로 병들게 될 것이다. 원칙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은 권력에 대한 맹종뿐이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가 시스템의 와해와 국민의 피해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박주현 칼럼니스트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사에 4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박주현님 매번 댓글쓰진 못해도 칼럼 잘 읽고 있어요.악은 꼼꼼하다더니 팩트파인더까지 감시하고 있다니..응원합니다 항상 좋은글 감사해요
이럴 때마다 윤석열의 그 어처구니 없는 계엄이 원망스러워요
재판만 잘 받아도 이미 감방에 있을 넘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주었으니 말이죠
아직도 갚아야 할 청구서가 얼마나 많길래 헌법에 위배된 꼼수까지 쓰면서 자리를 만들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