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은 울릴 기회조차 없었다. 허위사실유포에 의한 명예훼손. 몇안되는 글자의 돌덩이가 명치를 누르는 감각에 눈이 먼저 떠졌다. 창밖은 아직 어둠의 속살을 다 드러내지 않은 새벽이었다. 경찰서로 향하기 전, 약속 장소에서 만난 가피우스와 나눈 짧은 담소가 차가운 아침 공기를 조금은 덥혀주었다. 그럼에도 ‘경찰서’라는 목적지는, 무단횡단 한 번 해본 적 없는 내 삶의 지도 위에 찍힌 생경한 이정표였다.
사진 : 박주현 경찰서와 화장실은 멀면 멀수록 좋은 것 같다.
내가 들어선 조사실은 온통 흰색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랐다. 관공서 특유의 무미건조한 회색 벽과, 왠지 모르게 권위적인 느낌을 주는 어두운 나무색 책상이 전부였다. 그 공간을 지배하는 것은 오직 ‘사실’과 ‘거짓’이라는 이분법의 언어였다. “명예훼손으로 고소·고발당한 전력이 있습니까?” 수사관이 물었다. “없습니다. 이번이 처음입니다.” 나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문득, 어쩌면 이 처음이 마지막이 되지는 않을 수도 있겠다는 서늘한 예감이 스쳤다.
나의 언어는 그 회색 방에서 발가벗겨진 채 진위의 저울 위에 올려졌다. 칼럼에 썼던 ‘죽음의 그림자’, ‘미필적 고의’ 같은 단어들은 본래의 맥락에서 잘려 나와 차가운 증거물로 다시 태어나 있었다. 나는 본래 저 단어들에 비평의 날을 세우고, 정치적 수사의 모순을 꼬집는 은유의 옷을 입혔었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그려낸 밤하늘의 별자리를 보며 그 신화적 아름다움을 논하는 대신, 별과 별 사이의 직선거리가 정확히 몇 광년이냐고 따져 묻는 자들 같았다.
채 한시간도 흐르기 전, 나는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왔다. 근처 카페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던 가피우스와, 그곳까지 기꺼이 와주신 박병석 평론가님을 보자 안도감이 밀려왔다. 나는 급하게 커피 한 잔으로 언 몸을 녹였다. 수술은 잘 되셨느냐, 몸은 괜찮으시냐, 박 평론가님의 안부를 묻는 것이 먼저였다. 그리고 우리 셋은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찌개를 사이에 두고 나눈 대화는 조사실의 그것과는 결이 달랐다. 그곳의 언어가 나를 해체하고 분석했다면, 세 사람이 함께한 식탁의 언어는 흩어진 나를 다시 따뜻하게 보듬고 있었다.
사진 : 박주현 어제 음주로 세상 피곤해보이는 가피우쓰, 수술후 처음뵙는 박평론가님.
어쩌면 세상은 두 개의 언어로 이루어져 있는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조서(調書) 위에 박제하려는 ‘회색 방의 언어’와, 함께 숟가락을 부딪치며 생의 온기를 나누는 ‘식탁의 언어’. 결국 나를 일으켜 세운 것은 헌법 제21조라는 명문화된 언어가 아니었다. 조사실 안팎에서 묵묵히 곁을 지켜준 가피우스의 존재, 그리고 마주 앉아 밥을 먹으며 나의 안위를 물어주던 박 평론가님의 온기였다. 한 인간을 다시 서게 하는 것은 헌법 조문이 새겨진 차가운 비석이 아니라, 세 사람이 함께 밥을 먹는 살아있는 식탁이라는 것을. 세상의 모든 위대한 서사는, 어쩌면 그 따뜻한 밥 한 끼의 온기를 지키기 위해 쓰여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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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30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힘냅시다.
수고 많으셨어요. 조사실에서 느끼셨을 작가님의 긴장감이 그대로 느껴지네요. 가피님과 마찬가지로 그자리에 함께하지 못했지만 마음은 함께합니다. 응원합니다. 글 잘보고 있어요.
수고 많으셨어요. 조사실에서 느끼셨을 작가님의 긴장감이 그대로 느껴지네요. 가피님과 마찬가지로 그자리에 함께하지 못했지만 마음은 함께합니다. 응원합니다. 글 잘보고 있어요.
수고하셨습니다.
쓰신 글들이 다 이 정부를 증언하는 소중한 자료가 될 것입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좋은 글 쓰시느라 수고가 많으십니다
기사 읽고 놀라서 들어왔습니다. 그들은 정말 무도한 사람들입니다
좋은기사 항상 잘보고 있습니다!
좋은 글 쓰신 대가가 크셨군요
응원합니다
계속 좋은 칼럼 부탁드려요
박주현 님
그리고 의리남 두 분
박병석 대표님 가피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힘내세요!!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글 쓰는 사람에 족쇄 채우기네요. 고생하셨어요.
애쓰셨네요. 가피님, 박병석 대표님의 따뜻한 우정 감동이네요.
고생하셨습니다. 글 잘 읽고 있어요 응원합니다!
고생하셨어요.올려주시는 기사들도 잘 보고 있습니다.응원합니다.
‘죽음의 그림자’, ‘미필적 고의’
칼럼의 표현조차 해체되어
날것의 낱말로 심판대 위에 올리는 매정한 정권....
수고 많으셨습니다.
무단횡단 한번 안하고 살았던 국민이
어이없는 일로 조서실에 들어설 때의 심정,
세 분의 식탁에서 따뜻해 지셨다니 위안을 삼습니다만,
군사정권 때도 아니고 이게 무슨일이랍니까.
응원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뒤로 음침하게 고소하는게 어휴.. 딱 그짝 맞네요. 늘 좋은글 감사드리고, 언제나 응원합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좋은 분들이 함께여서 다행입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응원합니다!
응원하겠습니다.
늘 함께 응원하겠습니다.
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응원합니다!!
응원합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기고하시는 좋은 글을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이 밝아지고 있습니다.
힘내시고 용기내십시오.
고맙습니다.
박주현님 고생하셨습니다
박주현 님의 통찰력있는 기사 덕분에 개돼지붕어가 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가피우스님 제가 다 고맙네요. 박주현 칼럼니스트님 힘내세요! 엄혹한 세월도 끝이 있겠죠.
응원합니다!!!!
기운 내세요. 기사 늘 잘 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