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9일, 전병헌 전 한국e스포츠협회(KeSPA) 회장이 SNS에 올린 사진 한 장이 화제다. 그는 자택에서 편안한 차림으로 '2025 롤드컵 결승전'을 시청하며, 스마트폰 조명을 흔드는 등 순수한 팬심이 가득한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TV 화면에는 T1의 '페이커' 이상혁 선수가 잡혀있다.
그가 이날 쏟아낸 게시물들은 그의 기쁨이 단순한 응원을 넘어섬을 보여준다.
그는 2025년 결승을 T1 대 KT 롤스터의 '통신사 대전' 이자 '별들의 전쟁' 으로 칭했다. 특히 "우주를 들어올린 보성선수(Bdd) vs 우주를 받치고 있는 상혁선수(Faker)" 라는 표현에서, T1의 사상 첫 '3핏 신화'(3연속 우승) 와 KT의 13년 만의 첫 우승 도전 이라는 거대한 서사를 정확히 꿰뚫고 있음을 드러냈다.
9일 전병헌 새미래민주당 대표가 올린 사진
나아가 "실버스크랩스 틀어!!" 라는 게시물은 그가 '내부자'임을 증명한다. '실버 스크랩스'는 롤드컵 명승부의 상징으로 통하는, 오랜 팬들만 아는 '밈'이기 때문이다. 그는 "또 하나의 한류, 또 하나의 전설이 쓰여집니다" 라며 벅찬 감회를 숨기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는 왜 이토록 2025년 결승전에 열광하는 것일까? 이는 그가 e스포츠 산업에서 어떤 존재였는지, 그리고 이 순간이 그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함께 분석해야만 이해할 수 있다.
'갓병헌'과 '그라가스': 게임을 지켜낸 정치인
전병헌의 정체성은 e스포츠의 '옹호자'이자 '진짜 팬'이라는 두 축으로 요약된다.
그는 3선 국회의원이자 민주당 원내대표이던 2013년, 파격적으로 KeSPA 회장직에 취임했다. 당시 업계는 승부조작 스캔들과 팀 해체 등으로 위기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당시 국회에서는 게임을 마약, 도박과 함께 '4대 중독'으로 규정하려는 '게임중독법'이 발의된 상태였다. 이는 산업의 존립 자체를 위협했다. 전병헌은 이에 정면으로 맞섰다. 그는 커뮤니티에 직접 글을 올려 "게임문화를 과도하게 몰이해한 것" 이자 "꼰대적 발상" 이라고 강하게 비판하며 법안 저지를 약속했다. 그는 게임을 '중독'이 아닌 '글로벌 킬러 콘텐츠' 로 육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전방위적 옹호 활동은 그에게 '갓병헌'(God-병헌) , '루통령'(루리웹 대통령) 이라는 별명을 안겨주었다.
그의 옹호가 팬들에게 강력한 지지를 받은 이유는 '진정성' 때문이었고, 그 상징이 바로 2013년의 '그라가스 코스프레'였다. 그는 SKT T1(페이커 소속)의 2013년 롤드컵 첫 우승을 축하하기 위해 국정감사 기간 중임에도 직접 '그라가스' 분장을 하고 인증샷을 올렸다. 현역 원내대표가 '청년 문화를 이해한다' 는 메시지를 위해 기꺼이 망가진 이 사건은, 그가 단순한 정치인이 아닌 '게임 커뮤니티의 일원'임을 보여준다.
그는 본인의 SNS에 "절대 숟가락 얹는 것 아닙니다. 그냥 반가워서요" 라는 문장을 올리기도 했다. 'e스포츠의 대부'인 그가 2013년 '그라가스' 시절부터 이어져 온 '순수한 열정'에 기반하고 있고, 이 축제를 즐길 '자격'이 있음은 물론이다.
당시 e스포츠계의 밈이 된 전병헌의 그라가스 코스프레
12년을 관통한 '비전의 입증'
그의 e스포츠 역사는 2013년 T1과 페이커의 첫 우승, 그리고 그 기념으로 탄생한 '그라가스 코스프레'와 함께 시작됐다. 그리고 12년이 흘러 2025년, 그는 T1과 페이커가 '3연속 우승' 이라는 전설에 도전하는 순간을 목격하고 있다.
2013년에 그가 '중독법' 에 맞서 지켜내고 '한류' 가 될 것이라 주장했던 그 산업이, 2025년 '통신사 대전' 이라는 최고의 무대로 전 세계를 열광시키고 있다. 지금은 원외정당의 대표로 있다 하나, 2025년의 그가 보여준 순수한 환호는, '숟가락을 얹는 것' 이 아니다. 자신이 닦아놓은 길 위에서 펼쳐지는 가장 화려한 전설을, 가장 뿌듯하게 지켜볼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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