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최민희 의원. KBS유튜브 캡쳐, 연합뉴스
“내가 장담하건대, 이 세상에 양자역학을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20세기 최고의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이 남긴 말이다. 원자보다 작은 세계의 기묘한 법칙 앞에서 인류 최고의 지성조차 겸허한 무지를 고백한 것이다. 그런데 2025년 대한민국 국정감사장에서,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이 국감 기간 중 국회에서 딸의 결혼식을 연 것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자, ‘요즘 양자역학을 공부한다’는 해괴한 고백과 함께 자신의 곤경을 설명하려 했다. 지적 파산의 현장에서 울려 퍼진 가장 기괴한 자기소개서였다. 우리는 과연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저 해맑은 무지에 조소를 보내야 할까, 아니면 저런 인물이 대한민국 과학기술 정책의 수장이라는 비극에 통곡해야 할까.
최민희 의원이 처한 상황이야말로 기묘한 '슈뢰딩거의 고양이'다. 상자 안의 고양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관측하기 전까지 두 상태가 중첩되어 있듯, 그녀의 결혼식 역시 두 가지 상태가 기이하게 공존한다. 상자를 열기 전, 그 안에는 ‘오랜 상처로 소원해진 딸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은 엄마의 애틋한 사랑’이라는 살아있는 고양이가 있다. 그녀의 눈물은 오직 이 고양이만을 봐달라는 처절한 호소다.
하지만 상자에는 또 다른 상태가 중첩되어 있다. 바로 ‘국정감사 기간, 자신의 권력이 미치는 국회에서, 수많은 피감기관 관계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심지어 청첩장에 신용카드 결제 방법까지 친절히 안내하며 축의금을 받는 권력자’라는 죽은 고양이다. 국민의힘의 비판과 여론의 의심은 바로 이 싸늘하게 식어버린 고양이의 사체를 확인하려는 냉정한 관측 행위다. 그녀의 눈물과 양자역학 공부 고백은, 이 상자를 끝까지 열지 못하게 하려는, 혹은 상자를 열었을 때 모두가 살아있는 고양이만 보도록 시선을 돌리려는 필사적인 마술에 가깝다. 논리가 붕괴된 바로 그 지점에서 피어나는 아지랑이 같은 것.
이 희비극의 다른 무대에는 김병주 의원이 서 있었다. 캄보디아 교민 구출 작전이 ‘정치쇼’였다는 비판에 직면하자, 그는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 정치인의 임무’라며 눈물로 억울함을 호소했다. 최민희 의원이 현학적인 궤변과 사적인 감정으로 도피했다면, 김병주 의원은 거룩한 명분 뒤로 숨는다. 방식은 다르지만 본질은 같다. 비판의 핵심인 ‘사실관계’에 대한 이성적 토론을 거부하고, 대신 반박하기 어려운 감정과 가치의 영역으로 상대를 끌어들이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양자역학적 상태에 갇혀버렸다. 저들의 눈물을 비웃기엔 현실이 너무 비참하고, 현실을 통탄하기엔 저들의 행태가 너무 희극적이다. 파인만은 양자역학을 아무도 이해할 수 없다고 했지만, 어쩌면 최민희 의원의 말은 절반쯤 맞는지도 모른다. 논리와 상식이 사라진 저들만의 세상은, 정말이지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양자역학적 세계일 테니 말이다.

박주현 칼럼니스트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사에 7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근데 그럴 깜냥이면 저 짓거리를 하지도 않았을테지
괴랄을떨던 초이미니 여전히 진상이네
이재멍과 더불어공산당 무리들이 논리와 상식을 배제하고 무지와 무식으로 우리 사회를 저평준화 시키고 있습니다. 국민들을 개돼지로 아는거지요. 조용하기만 한 지금을 보면 우리는 개돼지가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힝….
이재명이 여의도에 출몰한 이후
민주당 의원들을 사람으로 안보게 되더라.
사람다운 의원들은 수박으로 내몰리고 잘리고
의원회관에 집어넣은 사람들의 수준은 하나같이 형편무인 지경.
개딸과 기머준이 큰 기여도 했고.
저런 수준만 모여있는 것도 신기할 지경입니다.
나오지 않는 눈물 억지로 짜고 있는 민주당 국개들
자격이 안 되는 것들이 똥별이 되고 국개 상임 위원장도 하고 말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