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언론사의 요청으로 삭제된 기사라는 안내 갈무리. 그럼 그 언론사는 누구의 요청을 받았을까?
한 신문의 기사를 찾아 들어갔다. ‘노후자금 대신 ‘빚’, 화려한 계획 뒤 드리워진 거북섬의 그림자’라는 제목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대선 때 자신의 빛나는 치적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가 그 처참한 현실에 서둘러 무마시키려던 바로 그 사업이, 지금 어떤 처참한 현실을 맞았는지 고발하는 기사였다. 그러나 기사는 이미 ‘언론사의 요청으로 삭제됐다’는 안내문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게 정상적인 나라인가.
이제 ‘삭제된 기사’는 인터넷의 흔한 밈(meme)이 아니다. 그것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의 회의록에 박제되고, 포털에서 증발해버리는 현실이다. 심지어 진보 성향 매체인 미디어오늘조차 정부의 과도한 기사 심의와 삭제 요구의 부당함을 지적하는 기사를 낼 정도니, 이 기괴한 자기검열의 시대는 이미 막을 올린 셈이다.
그들은 칼 포퍼의 ‘관용의 역설’을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알리바이로 사용한다. ‘비관용적인 자들’로부터 언론의 자유라는 ‘관용’을 지키기 위해, 그들을 힘으로 몰아내는 것은 정당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철학적 고뇌가 아니라, 상대를 제거하기 위한 논리의 무기화일 뿐이다. 자신들이 휘두르는 폭력에만 면죄부를 발행하고, 반대편의 모든 저항은 ‘언론 장악 시도’로 낙인찍는다. 그들이 말하는 ‘관용’의 영토에는 오직 그들의 깃발을 흔드는 자들만이 들어설 수 있다.
정상적인 지도자라면 자신의 과거 행적에 대한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책임을 통감한다. 그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지금 이재명 대통령의 민주당 정권은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실패의 진실이 드러나자,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그 진실을 전하는 언론에 재갈을 물린다. 과거의 과오를 바로잡는 고통스러운 길 대신, 그 과오를 지적하는 목소리를 지워버리는 손쉬운 길을 택한 것이다. 방송을 장악하고 쓴소리하는 언론을 겁박하는 것이,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덮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믿는 것 아닌가.
그들이 휘두르는 ‘개혁’의 메스 끝이 향하는 곳은 환부가 아니라,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목소리를 내는 성대다. 그들은 탱크 대신 ‘심의’라는 절차를 동원하고, 총칼 대신 ‘사회적 혼란 야기’라는 모호한 잣대를 들이댄다. 임명된 지 이틀 된 방통위원장을 끌어내리고, 헌재의 결정을 무시하면서까지 기어코 내쫓는 집요함은 ‘개혁’이 아니라 ‘숙청’에 가깝다.
이것은 ‘언론 독립’을 위한 투쟁이 아니다. 이것은 ‘진실 독점권’을 둘러싼 야만적인 전쟁이다. 그들은 해방군을 자처하지만, 그들의 진짜 목표는 방송사 로비에 자신들의 초상화를 걸고, 뉴스에서는 자신들의 목소리만 나오게 하는 것이다. 한때는 권력의 미세한 입김에도 ‘언론 탄압’이라며 광장으로 달려 나갔던 그들이, 이제는 국회라는 점령군 사령부에서 언론 지형도를 다시 그리고 있다.
그들이 마침내 ‘그들만의 진실’이 울려 퍼지는 깨끗한 왕국을 건설했을 때, 침묵에 길들여진 우리는 과연 무엇을 얻게 될까. 아마도 ‘요청에 따라 삭제됨’이라는 묘비명뿐일 것이다.

박주현 칼럼니스트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사에 3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괴물독재국가
독재정권이네요 이미.
그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