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마지막 날, 뉴스는 축포를 쏘아 올렸다. ‘한미 관세협상 극적 타결.’ ‘막을 건 막고 챙길 건 챙겼다.’ 3,500억 달러 투자와 15% 관세 인하라는 화려한 자막이 춤을 췄다. 사람들은 환호했고, 누군가는 ‘외교 천재’의 탄생이라며 열광했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났어야 했다. 적어도 그들이 만든 각본 속에서는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결코 각본대로 흐르지 않는다. 불과 두 달도 지나지 않아, ‘극적 타결’이라는 무대는 급하게 막을 내리고 ‘협상 교착’, ‘서명 안 할 수도’라는 낯선 제목의 연극이 시작됐다. 화려한 조명 뒤편, 백악관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합의문도 필요 없을 정도로 좋은 분위기’였다던 청와대의 설명은 한 편의 값비싼 코미디였다. 그 웃음의 입장료 청구서는 어김없이 국민에게 날아들었다.
코미디의 대가는 상상을 초월했다. 협상이 교착된 사이, 기업들은 타들어 가기 시작했고 ‘협상 교착에 속 타는 기업’이라는 헤드라인 아래, 이미 3조 4천억 원이 투입되었다는 숫자가 박혔다. 월평균 4,200억. 이 천문학적인 돈은 어디서 나왔을까. ‘외교 천재’의 호주머니가 아니다. 관세 대응 119, 수출 신용보증, 관세 대응 바우처. 그럴듯한 이름이 붙은 구명보트들의 동력은 단 하나, 바로 국민들의 세금이다. 자칭 유능한 정부의 무능이 뚫어 놓은 구멍을, 우리 혈세로 하루하루 땜질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그들은 트럼프를 탓한다. 예측 불가능하고 악의적 협상조건을 내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이다. 하지만 유능한 선장은 폭풍우를 탓하지 않는다. 폭풍우의 존재는 항해의 변수가 아니라 상수이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어떤 스타일의 협상가인지는 전 세계가 아는 사실이었다. 심지어 국익을 위해선 악마와도 협상할 수 있다며, ‘나도 만만치 않다’고 자신했던 이가 누구였던가. 더 기가 막힌 것은, 당시 최상목 경제수석이 마련했던 합리적인 관세 협상 패키지를 탄핵안으로 막아 세운게 민주당이라는 사실이다. 상대방의 기질은 협상의 전제조건이지, 실패의 변명이 될 수 없다. 결국 트럼프 탓은, 스스로 폭풍우를 불러들여 배를 부숴놓고는 ‘나는 폭풍우가 올 줄 몰랐다’고 외치는 무능한 선장의 자기 고백일 뿐이다.
문제는 미국만이 아니다. 유럽연합(EU)마저 철강 수입 할당량을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나섰다. 이제 우리 기업들은 유럽에 물건을 팔려면 절반을 넘는 순간 50%의 관세 폭탄을 맞아야 한다. 미국에는 이미 얻어맞고 있고, 유럽에는 새로 얻어맞게 된 것이다. 이 모든 재앙이 어디서 시작되었는가.
경기도 평택항에 쌓여 있는 철강 제품 [연합뉴스 자료사진]미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소름 끼치도록 솔직한 고백을 했다. “3,500억 달러 요구에 동의했으면, 내가 탄핵당했을 것.” 국가의 백년대계를 결정하는 협상 테이블에서조차, 그의 시선은 끊임없이 자신을 향해 있었다. 국민의 삶보다 자신의 정치적 생명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정치인으로서 맞는 고비때마다 실책과 논란은 다른 이의 탓으로 넘기던 그 그릇에 국익이라는 거대한 바다를 담으려 했던 것부터가 무리였을까?.
결국 이 모든 고통은 한 명의 무능함이 전 국민에게 얼마큼의 피해를 줄 수 있는지 보여주는 잔혹한 실증 사례다. 만약 당선 후, 미국이 그토록 바라던 대로 중국과 명확히 선을 긋는 외교적 결단을 내렸다면 협상 테이블의 공기는 어땠을까. 정치에 '만약'은 없다지만, 지금 우리가 받아 든 청구서는 어쩌면 우리 스스로 피할 수 있었던 재앙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트럼프를 탓하고 언론을 탓하며 책임을 회피하는 동안에도, 세금으로 빠져나가는 관세 피해 보조금은 무섭게 올라가고 있다.

박주현 칼럼니스트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사에 6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가장 화가 나는 대목은 최대행이 관세협상하려 했을때 막은 겁니다. 그때는 트럼프가 관세폭탄을 구체화하기 전이니까 FTA 선에서 조율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심지어 트럼프에 대해 철저히 연구하고 파악 했다고 자화자찬 했었는데요?
칼럼으로 읽으니 그 무능함이 더 피부로 와닿는 느낌
이재명만은 인된다고 외쳤던 이유는 태도!! 그의 모든 사안을 대하는 태도가 나라를 망하게 하고 있네요.
대가는 국민들이 다 치르겠죠
이재명 정부 아럴 줄 알았기 때문에
십수년 전부터 이재명은 안된다고 절대 아니라고
그렇게들 애쓰고 외쳐댄건데
예상대로 무능에 엉망진창
국가와 국민의 기본 체력까지를 무너뜨리고 있으니
어찌하오리까.
"국가의 백년대계를 결정하는 협상 테이블에서조차,
그의 시선은 끊임없이 자신을 향해 있었다.
국민의 삶보다 자신의 정치적 생명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
뼈아픈 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