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법원장회의 개최 (서울=연합뉴스)
어제 있던 전국법관대표회의가 3권 분립을 저해하려는 정부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성명을 내는 것, 물론 옳은 일이다. 민주주의의 보루인 사법부가 제 목소리를 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국민의 반응은 싸늘하다 못해 냉소적이다. 왜일까. 그 답은 사법부 스스로가 자초한 업보(業報)에 있는 것 아닌가. 역대 정권마다 권력의 향배를 살피며 늘 양지바른 곳에만 앉아 있으려 하고, 국민의 법감정과 괴리된 판결을 거듭해온 결과가 바로 오늘의 불신이다. 그리고 최근의 판결들은 그 불신에 기름을 붓고 있다. ‘좌파 무죄, 우파 유죄’라는 노골적인 이중 잣대가 법복의 권위를 스스로 갉아먹고 있다.
보라. 김민아 창원시의원은 이태원 참사 유족을 향해 "자식을 팔아 한몫 챙기려 한다"고 썼고, "나라 구한 영웅이냐"고 따져 물었다. 분명 유족의 가슴에 상처를 주는 비정하고 경솔한 발언이다. 법원은 그에게 징역 3개월 선고유예와 함께 1억 4,330만 원이라는 거액의 배상을 명령했다. 반면 북한의 기습 공격에 맞서 이 나라를 지키다 산화한 천안함 46용사를 향해 좌파 진영은 어떤 짓을 해왔는가. 그들은 명백한 북한의 소행을 부정하고, 영웅들을 ‘패잔병’이라 부르며 모욕했다. 당시 민주당 고위 당직자는 천안함이 '수명을 다한 고물'이라 침몰했다는 음모론으로 희생자들을 조롱했다. ‘나라 구한 영웅이냐’는 질문을 던진 쪽은 1억 4천만 원의 철퇴를 맞고, 진짜 ‘나라를 지키다 산화한 영웅’을 ‘패잔병’이라 모욕한 쪽은 사실상 아무 처벌도 받지 않았다. 한 교사가 천안함 함장에게 쌍욕을 했다가 받은 처벌은 고작 벌금 100만 원이었다.
철지난 천안함 비극을 소환해 비교하는 건 너무 억지 아니냐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자폭된 천안함 사건을 조작하여 남북관계를 파탄 낸 미 패권 세력들"이라는 이래경 다른백년 명예이사장의 발언은 2023년 2월의 발언이고, "군인이라면 경계에 실패하거나, 침략당한 부분에 대한 책임감도 결국 있다."며 또 천안함을 소환한 장경태 민주당 최고위원 발언은 2023년 6월의 발언으로 오히려 이태원 참사에 대한 망언보다도 최근의 일이다.
종교계와 교육 현장은 더욱 노골적이다. 보수 성향의 한 목사는 선거 운동 기간이 아닌 때에 교회에서 특정 후보 지지 발언을 했다는 '선거법 위반' 혐의로 압수수색에 이어 구속까지 됐다. 반면 정의구현사제단은 미사 강론대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를 향해 어떤 저주를 퍼부었는가. 그들은 대통령 전용기가 추락하길 바란다는 기도를 올리고, 김건희 여사를 향해 "암컷이 나와 설친다"는 등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공개적으로 외쳤다. 이는 명백한 모욕이자 저주다. 이런 막말에 대해 누가 구속은커녕 제대로 된 수사라도 받았는가. 똑같은 종교인의 정치 행위를 두고 한쪽은 구속 수감하고 다른 쪽은 사실상 치외법권을 누린다.
교실이라고 다른가. 검증된 역사 자료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유튜브 영상이 우파 성향이라는 이유로 교사는 징계를 받았다. 하지만 온갖 음모론과 거짓 선동으로 가득 찬 김어준의 방송을 교실에서 틀어준 전교조 교사는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았다. 심지어 한 경찰관은 어찌보면 치안을 담당하는 공무원으로 대체 뭐가 문제인지 모를 '멸공'이라는 댓글 하나를 달았다는 이유로 신상이 털리고 민원 폭탄을 맞은 끝에 정직이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좌파 성향 공무원들이 SNS에서 공공연히 보수정부를 비난하고 진보의 나팔수 노릇을 하는 것은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이것이 정상적인 법 집행인가.
물론 보수지지 연예인들이 당하는 린치를 보면 기울어진 운동장이 문제의 본질일지도 모르고, 사법부만의 잘못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사법부가 사회에 왜곡된 시그널을 준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다.
누군가는 나라가 망가지는 데 재판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하지만 역사를 보면 잘못된 판결 하나가 국가를 나락으로 떨어뜨린 경우는 적지 않다. 1856년 미국 연방대법원의 '드레드 스콧' 판결이 대표적이다. 당시 대법원은 흑인 노예는 시민이 아니며 어떠한 권리도 없다고 판결했다. 이 판결은 노예제 폐지 논쟁에 종지부를 찍기는커녕, 북부의 분노에 불을 붙여 5년 뒤 남북전쟁으로 가는 길을 활짝 열어젖혔다. 사법부의 오판 하나가 나라를 두 동강 낸 것이다.
사법부는 알아야 한다. 국민이 판결에 승복하는 것은 그것이 정치적 고려 없이 법과 양심에 따라 내려졌다는 믿음 때문이다. 정권의 눈치를 보는 ‘선택적 정의’가 계속된다면 그 믿음은 깨진다. 그리고 사법부가 스스로의 권위를 내팽개쳐 국민의 편이라는 느낌을 주지 못할 때, 훗날 사법부에 위기가 찾아와도 국민 중 누구도 그들을 지키려 나서지 않을 것이다. 법복(法服) 입은 ‘인민재판’이라는 비판에 직면한 사법부는 스스로 고립의 길을 자초하고 있는 것 아닌가.

박주현 칼럼니스트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사에 3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만시지탄이고 원죄도 크나
그럼에도 원칙적인 목소리가 귀하게 느껴지는 시국입니다.
사법부가 저런 모욕을 당해도 싸다고 생각하다가도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져야 한다고 생각하니 가슴만 답답합니다
그쵸. 그리고 파기자판의 결단을 내려 스스로 권위를 세우지 못한 조희대의 부끄러움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