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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여탈권 쥔 본사"… 혼다코리아, 10년 딜러에게 등 돌린 내막
  • 김남훈 기자
  • 등록 2025-09-12 19:55:21
  • 수정 2025-09-12 20:12:52

  • 딜러는 수용불가능한 1년 단위 재계약
  • 담보금액을 5억원에서 갑자기 22억원으로
  • 법적소송 진행하면서 고객을 끝까지 지킬 것

"생사여탈권 쥔 본사"… 혼다코리아, 10년 딜러에게 등 돌린 내막


혼다 모터사이클 대구 딜러가 10년의 인연을 뒤로하고 강제로 계약을 해지하게 되었다. 혼다코리아 본사의 일방적인 해지 통보에 따른 결과다. 황준원 대표는 지난 10년간 브랜드에 대한 기여에도 불구하고, 본사가 납득할 수 없는 조건들을 앞세워 사실상 딜러를 내몰았다고 주장한다. 9월 10일부로 계약은 종료되었고, 자정이 지나자마자 혼다 전산 프로그램 접근이 차단됐다. 이로써 리콜, 정기 점검 등 고객을 위한 모든 서비스가 하루아침에 중단되었다. 본사는 11일 간판 철거까지 통보했다. 대구 딜러 뿐만 강북, 강남, 광주, 대전동구 딜러도 같은 상황에 처해있다. 본사에서 간판을 떼어가겠다고 한 날 대구에서 황준원 사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혼다 대구 딜러점에서 만난 황준원 대표, 주변 상황 때문에 상당히 굳은 표정이다 (사진=팩트파인더 취재팀)

'1년 노예 계약'이 된 갱신 조항

가장 큰 갈등의 원인은 계약 갱신 방식의 변경이었다. 기존 계약은 특별한 귀책 사유가 없을 시 자동으로 연장되는 구조로, 딜러가 안정적인 사업 운영을 기대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혼다코리아가 새로 제시한 계약서는 매년 본사의 재심사를 거쳐 갱신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이는 장기적인 투자와 고용 안정이 필수적인 딜러 입장에서 사업의 근간을 흔드는 독소 조항이었다. 매년 사업의 존폐가 본사 손에 달리게 되면서, 어떤 딜러도 안정적인 미래를 계획하거나 과감한 투자를 단행하기 어렵게 만드는 족쇄가 된다.


기자: 본사와 딜러 간의 계약 내용 중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부분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었습니까?

황준원 대표: 가장 큰 기준은 계약 기간입니다. 예전에는 큰 문제가 없으면 자동으로 연장됐던 기준이, 신규 계약서에는 1년 단위 갱신으로 변경을 요청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저희는 10년이란 세월 동안 혼다를 위해 일해왔고, 1년 단위 계약을 할 정도로 실수를 한 적도 없습니다. 이것은 1년마다 저희의 생사여탈권을 본사가 쥐고 사업을 하라는 것과 같습니다.


황 대표의 10년 세월이 녹아있는 대구 딜러점 (사진=팩트파인더 취재팀)

이러한 변경은 딜러를 동등한 사업 파트너가 아닌, 언제든 교체 가능한 부속품으로 취급하는 본사의 시각을 드러낸다. 황 대표는 상호 합의를 통해 좋은 안을 도출해야 하는 계약의 기본 원칙이 무시된 채 일방적인 통보만 있었다고 지적했다.


근거 없는 담보금 4배 증액 요구

혼다코리아는 비상식적인 담보금 증액을 요구하며 압박의 강도를 높였다. 9년 전 사업 시작 당시 5억 원으로 설정했던 담보금을 22억 원까지 상향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17억 원, 즉 기존 금액의 네 배가 넘는 규모의 증액을 요구하면서도 산출 근거에 대한 명확한 설명은 전혀 없었다. 황 대표는 "솔직히 왜 그래야 하는지 아직도 궁금하다"며, 본사 정책에 분명 변화가 있었을 것이라 추측하지만 어떠한 설명도 듣지 못했다고 밝혔다.


기자: 담보금을 5억에서 갑자기 22억으로 올리라는 건, 거의 네 배 이상인데 사실상 사업을 하지 말라는 얘기로 들립니다.

황준원 대표: 저도 그렇게 느꼈습니다. 비용이 그렇게 산정된 이유나 계산 방식에 대한 설명을 요청했지만, 현재까지도 저는 이해할 만한 정보를 제공받지 못했습니다. 정해진 기한까지 올려달라는 요구는 압박으로밖에 느낄 수 없었습니다. 만약 제가 그 돈을 마련하지 못하면 이미 그때 사업을 포기했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는 딜러가 자금 조달 능력이 없으면 즉시 퇴출당할 수 있다는 무언의 협박이자, 계약 해지를 위한 명분을 쌓으려는 의도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2024년 10월 26일 펼쳐진 혼다 데이. 본사는 잔칫날 전날 충격적인 계약서를 내밀었다. (사진=본사 취재팀)

축제 전날 날아온 배신의 계약서

혼다코리아가 이처럼 일방적인 계약 조건을 제시한 시점은 작년 10월, 국내 혼다 라이더들의 최대 축제인 '혼다데이' 행사 바로 전날이었다.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가 가장 높게 발현되는 축제를 앞두고, 본사는 뒤에서 파트너의 목을 죄는 칼을 준비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러한 본사의 행보는 파트너십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기자: 혼다의 가장 큰 행사인 '혼다데이' 전날에 그렇게 일방적이고 불공정한 계약서를 제시했다는 겁니까?

황준원 대표: 맞습니다. 잔칫날 전날이었습니다. 저는 항상 혼다가 신의와 믿음, 가족처럼 일하는 회사라고 생각해왔습니다. 짧은 세월이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혼다를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고 자부합니다. 하지만 그 계약서를 받은 이후부터는, 혼다코리아는 그런 회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딜러와의 신뢰 관계를 얼마나 가볍게 여기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10년간 대금 지급을 단 한 번도 연체한 적 없고 본사의 모든 행사에 적극적으로 협력해 온 파트너에 대한 예의는 찾아볼 수 없었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고객들과 함께. 유일하게 황 대표가 미소를 지었던 순간이었다 (사진=팩트 파인더 취재팀)

일방적으로 끊어진 10년의 인연

모든 갈등의 기저에는 소통의 부재가 자리 잡고 있었다. 혼다코리아는 정책 변화에 대해 딜러들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협의하는 과정을 생략한 채, 일방적인 통보와 강요로 모든 것을 밀어붙였다. 황 대표는 이런 혼란 속에서도 레이스를 사랑하는 고객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최근 모터사이클 레이스에 출전, 15년 차 경력의 관록을 보이며 ‘혼다 클래스’에서 우승했다. 그의 모습은 관계를 저버린 본사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기자: 10년 가까이 이어온 인연인데, 굉장히 마음이 씁쓸하시겠습니다.

황준원 대표: 사업도 사람 사는 세상과 같아서, 관계를 오래 이어가려면 양쪽 모두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쪽에서 그 인연을 놓아버리면 영원할 수 없습니다. 혼다와의 인연은 제가 놓은 것이 아닙니다. 혼다코리아에서 그 인연의 끈을 놓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부족해서일 수도 있고, 본사의 다른 정책이 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서로 노력하지 않으면 영원한 것은 없다는 점이 아쉬울 뿐입니다.


레이스에 진심인 황 대표는 직접 '혼다' 모터사이크를 타고 레이스에 출전 우승을 거두기도 했다 (사진=황준원 페이스북)

황 대표는 "고객과의 인연은 절대 놓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혼다 브랜드는 떠나지만 현재 자리에서 계속 고객들을 위한 서비스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이번 사태는 글로벌 기업의 국내 법인이 현지 파트너를 어떻게 대우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씁쓸한 단면이다.


한편 현재 이처럼 계약해지를 당했거나 해지에 내몰린 딜러점들은 법적인 소송을 진행하면서 고객과의 인연은 계속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9월 11일 혼다 본사에서는 아직  물리적인 간판 철거작업은 진행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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