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범 정책실장 기자간담회 (서울=연합뉴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한국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서 한미 관세협상이 ‘교착 상태’라며 현실의 편린이라도 드러낸 것은, ‘합의문도 필요 없는 완벽한 성공’이라던 완전한 거짓에 비하면 일보 전진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그 ‘교착’이라는 단어마저 본질을 가리는 또다른 말장난에 불과하다. 이것은 협상이 막힌 게 아니다. 애초에 ‘협상’이라는 것 자체가 성립될 수 없는 판이었다. 지갑에 300만 원밖에 없는 사람이 3억 5천만 원짜리 집을 사겠다며 계약서 쓰자고 하는 격이다. 집주인이 그를 미친 사람 취급하지, ‘협상이 교착됐다’고 말하겠는가.
정책실장 스스로 우리가 1년에 조달 가능한 금액이 200억~300억 달러를 넘기 어렵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그런 나라가 어떻게 350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 돈을 약속할 수 있단 말인가. 초등학생에게 산수를 가르쳐도 이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현실 감각이 제로에 가까운 ‘허풍’으로 시작했으니, 협상의 진행은 꿈도 못 꾸는 것은 필연적 결과다.
미국 측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대화와 협상의 상대를 만난 것이 아니라, 현실 감각 없는 유령과 마주 앉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 자리에서 무슨 대화가 오가고 무슨 협상이 진전되나. 시작부터 끝까지 ‘협상 불능’ 상태였던 것을, 이제 와 ‘교착’이라는 말로 포장하고 있다.
이것은 외교가 아니다. 정치 쇼다. 어떻게든 미국 대통령과 만나 사진 한 장 찍고, 귀국해서는 ‘역사적 성과’라며 지지층을 향해 환호하는 것. 그 목적을 위해 나라의 미래를 담보로 위험천만한 도박을 벌인 것이다. 국익을 위한 냉철한 계산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오직 정권의 이익을 위한 조급함과 과시욕만 번뜩일 뿐이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대통령은 직접 국민 앞에 서야 한다. ‘교착’이라는 기만적 단어를 거두고, 애초에 왜 말이 안 되는 약속으로 나라를 망신시켰는지 해명해야 한다. 텅 빈 협상장을 ‘위대한 성공’으로 둔갑시킨 이 위험한 외교 도박의 대가를 왜 애먼 국민이 미국 땅에서 쇠사슬에 묶이고 추방당하는 수모로 치러야 하는가?

박주현 칼럼니스트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사에 6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모자와 메뉴판을 700조랑 바꿔 옴.
한국민만 속이면 된다고 생각하는 거죠...
입벌구 정부
좋은기사 잘읽었습니다
마자여
국내 언플만 잘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는 이텅 정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