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특별사면, 민생’은 미끼였고, ‘특권’이 진짜였다
  • 박주현 칼럼니스트
  • 등록 2025-08-12 05:28:43
  • 수정 2025-08-12 06:55:51

  • 8.15 특별사면, 그들이 말하는 민생의 기만적 실체
  • 입시비리, 후원금 횡령, 갑질 폭행… 특별사면이 ‘통합’시킨 것은 과연 무엇이었나

이재명 정부가 ‘민생 안정’과 ‘국민 통합’을 내걸고 특별사면을 발표했을 때, 광장의 시민들은 별다른 기대를 품지 않았다. 먹고사는 일의 지난함 앞에서, 정치인들의 사면 잔치가 내 삶을 바꿔줄 리 없다는 체념이란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체념조차 사치였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단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베일이 벗겨진 사면 명단은 단순한 실망을 넘어, 성실하게 법을 지키며 살아온 모든 시민의 삶을 정면으로 모욕하는, 한 편의 역겨운 블랙 코미디였기 때문이다.


어느 날 당신의 아버지가, 고된 노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누군가에게 멱살을 잡혔다고 상상해보자. 당신은 어디로 달려가겠는가. 의심의 여지 없이, 법이었을 것이다. 이 나라의 시스템이 힘없는 개인을 보호해주리라는 믿음. 이용구 전 차관에게 폭행당했던 그 택시기사 역시 그것 하나 붙들고 억울함을 호소했을 것이다. 그러나 2025년 8월 15일, 대한민국은 바로 그 평범한 가장의 남은 믿음에, 국가의 이름으로 침을 뱉었다.


정부가 말하는 ‘민생’의 얼굴을 똑똑히 보라. 자녀의 표창장을 위조하고 대리시험까지 동원해 입시 시스템을 파괴한 조국 전 장관이 있다. 청년들의 절망과 박탈감을 먹고 자란 그의 범죄가, 대체 이 땅의 어떤 ‘민생’을 살린다는 말인가. 그의 사면은 ‘희망 사다리’를 걷어차 버리고, 이 땅의 청년들의 이마에 ‘너희의 노력은 부질없다’는 공식적인 낙인을 찍는 행위다. 이것이 당신들이 말하는 민생인가.


‘통합’의 실체는 더욱 기가 막힌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피눈물 섞인 후원금을 개인 계좌로 빼돌려 안락의자나 사고, 갈비집에서 흥청망청 쓴 윤미향 전 의원이 버젓이 이름을 올렸다. 심지어 그날은 광복절이다. 피해 할머니들의 상처와 국민적 공분을 하나로 모아도 모자랄 판에, 그 상처에 소금을 뿌리고 국민을 둘로 갈라놓는 인물을 사면하는 것이 대체 어떤 종류의 ‘국민 통합’인가. 대체 어떤 통합이 이 폐허 위에서 가능하단 말인가.


그래픽 : 박주현 사면의 이름으로 단행된 후불 민원 처리

어디 그뿐인가. 자신의 비리 수사를 무마하려 담당 경찰관의 부정한 청탁을 들어준 ‘뇌물수수범’, 이재명의 성남시를 이어받았던 은수미 전 시장도 사면됐다. 깨끗해야 할 공직을 더럽힌 뇌물죄가 민생과 무슨 상관이며, 법치를 무너뜨린 행위가 어떻게 국민 통합에 기여한단 말인가. 성실하게 일하는 서민의 멱살을 움켜쥔 자를 풀어주는 것, 이것을 ‘민생 안정’이라 부르기로 그들은 합의한 모양이다.


이번 사면은 구색 맞추기용으로 야당 인사를 몇몇 포함시키는 교활함까지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정치적 균형이 아니라, “우리도 풀어주니 너희도 입 다물라”는 추악한 담합의 신호에 불과하다. 결국 그들, 정치인이라는 신귀족 특권 계급은 자기 동료의 범죄 앞에서는 여야 없이 한통속이 된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했다.


입시비리, 후원금 횡령, 뇌물수수, 갑질 폭행. 이 더러운 죄목들이 오늘 우리에게 묻고 있다. 이것이 과연 민생을 위한 사면이냐고. 이것이 국민을 하나로 만드는 통합이냐고. 아니다. 이것은 ‘그들만의 민생’을 위한 ‘그들만의 통합’일 뿐이다. 법치의 시신(屍身) 위에서 벌이는 이 파렴치한 연회를 걷어치우지 않는다면, ‘민생’이라는 단어는 앞으로 조롱과 혐오의 다른 이름이 될 뿐이다.


관련기사

프로필이미지

박주현 칼럼니스트 다른 기사 보기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로그인

댓글 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이 기사에 18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08-22 08:53:24

    범죄자가 범죄자를 사면하는 어처구니 없는 현실이지만 모른 척 하지는 않겠습니다.

    더보기
    • 삭제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08-13 11:27:09

    아 정말 답답합니다
    저런 전과자를 가족이 사귄다고 집에
    데리고오면 다들 기함하고 쓰러질텐데
    일국의 대통령이라니
    어쩌다 이런 일이

    더보기
    • 삭제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08-13 10:40:34

    팩트 기사. 감사합니다.

    더보기
    • 삭제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08-12 20:13:40

    국민눈치 하나도 안보네요. 이게 정말 공정한 나라입니까?

    더보기
    • 삭제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08-12 14:58:31

    좋은기사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더보기
    • 삭제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08-12 14:52:48

    수많은 ngo 단체 후원을 끊은 것도 같은 이유. 후원을 위해서라면 거짓 편지 가짜 영상 꾸민 일화로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일상을 알게 되서. 피땀눈물로 돈 벌어 본적 없는 인간들.

    더보기
    • 삭제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08-12 13:06:58

    가슴 절절하개 와닿는 기사내요 ㅠㅠ

    더보기
    • 삭제
  • 프로필이미지
    nagodory2025-08-12 12:56:51

    2019년 그렇게 조국 까다가 이제는 기레기들이 찬양할 거 생각하니 엽기도 이런 엽기가 없네요 윤미향은 웬말이며 국힘것들도 보태고 팍쒸

  • 프로필이미지
    won6er2025-08-12 12:53:02

    여기다 민생과 통합을 붙이는데 속는 사람등 심리가 진짜 궁금합니다
    그 정도로 이재명정부가 절실할 것 같진 않은데요

  • 프로필이미지
    ddongong2025-08-12 12:50:45

    법을 지키고 성실하고 정직하게 사는 국민들이 바보-라고 말하는 정부.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08-12 11:39:37

    이대텅이 내뱉는 민생이라는 말만 들어도 구토가 나오려고 합니다.

    더보기
    • 삭제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08-12 11:05:04

    전적으로 동삼합니다.

    더보기
    • 삭제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08-12 10:00:33

    그러니깐요 ㅉ

    더보기
    • 삭제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08-12 09:59:46

    파시스트 들은 정신착란자들을 가스라라이팅 할때 민생 민생 거리죠.

    더보기
    • 삭제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08-12 08:54:18

    공감되는 기사입니다

    더보기
    • 삭제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08-12 08:11:24

    이런 점잖은 언사들로 비난하기도 분수에 넘치는 추악한 것들이지요

    더보기
    • 삭제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08-12 07:24:46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심지어 윤석열까지도 취임 후 첫 사면에는 정치인,고위공직자 한명도 없었다는데...조국 윤미향 최강욱 은수미 이용구??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요

    더보기
    • 삭제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08-12 06:36:54

    이명박 이후 집권 첫번째 사면은 국민 눈치보느라 정치인은 제외하고, 민생사범과 경제인 위주로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재명은 국민을 우습게 보고 정치인을 대규모로 사면하는 폭거를 자행했다.

    더보기
    • 삭제
아페리레
웰컴퓨터
많이 본 뉴스더보기
  1. [분석] 론스타 4천억 승소 역겨운 광팔이 민주당... 3년 전에는? 2025년 11월 19일한국 정치의 고질병인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식 태도가 13년을 끌어온 론스타 국제투자분쟁(ISDS) 승소 국면에서도 여지없이 반복되고 있다. 3년 전, 법무부가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할 당시 "이길 확률이 전무하다"며 결사반대했던 정치 세력이, 막상 '전부 승소'라는 극적인 결과가 나오자 정.
  2. 썩어가는 것과 익어가는 것의 차이 가을 숲을 걷다 보면 바닥에 떨어진 낙엽들 사이로 오묘한 냄새가 난다. 개중에는 잘 마르고 발효되어 흙으로 돌아가는 그윽한 향기가 있는가 하면, 물기를 머금은 채 질척하게 썩어가는 쿰쿰한 악취도 있다. 인간의 나이 듦도 이와 다르지 않다. 시간은 공평하게 흐르지만, 그 시간이 인간이라는 그릇에 담길 때는 전혀 다른 화학 작용을 일.
  3. 민주당 '유동규 녹취록 속 대통령은 '윤석열'? 백광현 되치기 기자회견 17일 오전 백광현 씨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유동규와 남욱의 녹취록을 추가로 공개했다. 해당 녹취록에는 '이재명' 이름이 언급되어 있어 후폭풍이 예고된다. 이번 기자회견은 지난 12일 진행한 기자회견의 후속편으로,  (2023년 봄 녹음)된 것으로, 대장동 사건을 두고 두 피고인이 대화를 나누는 내용이 담겼다. 이 녹취록에서 ...
  4. 민주당을 향한 외통수 "대장동 환수법" 국가가 대장동 개발 비리 사건의 범죄 수익 환수를 공식적으로 포기한 상황에서 논란의 항소포기를 중심에서 처리한 박철우 검사는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영전했다. 박철우 검사를 서울중앙지검장에 앉힌 인사는 이 사태의 본질을 명확히 보여준다. 이것은 실패에 대한 문책이 아니라, 성공적인 임무 완수에 대한 포상에 가깝다. 검찰 조직을...
  5. 대통령의 '무지(無知)'가 국가 안보의 최대 위협이다 국가 지도자의 말은 그 자체로 전략이자 메시지다. 적대국과 총구를 맞대고 있는 분단국가의 대통령이 공개석상에서 내뱉는 안보 관련 발언은 천금의 무게를 지녀야 한다. 그러나 지난 24일 해외 기자 간담회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보여준 인식은 가벼움을 넘어 참담한 수준이었다. 그는 50년간 대북 심리전의 핵심이었던 대북 방송을 "바보짓...
  6. 탱크만 없는 계엄령, 그 거대한 수용소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23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교민들에게 "또 계엄하는 거 아닌가 걱정되실 텐데, 그런 일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좌중에서는 웃음이 터졌다고 한다. 그러나 서울에서 이 소식을 접한 국민들은 헛웃음조차 나오지 않는다. 국정 최고 책임자의 그 한가한 농담은, 지금 대한민국이 처한 절체절명의 위기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
  7. 이낙연 "대장동 항소 포기는 국가 주도 범죄... 전체주의 망령 어른거려" 이낙연 "대장동 항소 포기는 국가 주도 범죄... 전체주의 망령 어른거려"대장동 항소 포기와 사법 시스템 붕괴 비판이낙연 새미래민주당 상임고문(전 국무총리)이 19일 유튜브 채널 '류병수의 강펀치'에 출연해 검찰의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사건 항소 포기를 "국가가 나서서 범죄자를 도와준 국가 주도 범죄"라고 규정하며 강하게 비판...
  8. YTN의 ‘자발적 복종’ 더불어민주당이 ‘국론 분열을 조장하는 중대한 국기문란 행위’라는 좌표를 찍자, YTN은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의 풍자 영상을 다룬 보도를 삭제하고 한 발더 나아가 ‘정치인 SNS 영상 사용 금지’라는 사실상의 백기를 들었다. 모든 일은 순식간에, 그리고 질서 정연하게 일어났다.'국기문란(國基紊亂)'. 유신 시대의 낡은 ...
  9. 프랑켄코리아 (Franken-Korea) 정치라는 무대 위에는 때때로 기이한 혼종(混種)이 등장한다. 완전히 새로운 존재가 아니라, 이미 사라졌다고 믿었던 과거의 망령들을 덕지덕지 기워 붙여 만든 프랑켄슈타인의 괴물 같은 것.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정권의 모습이 그러하다. 이들은 놀라울 만큼 창의성 없는 방식으로, 역대 정권들이 저질렀던 최악의 실수와 가장 추악했던 .
  10. 국민연금 손대려는 정권, 그래놓고 청년더러 "속았다" 하는가 아침 출근길 지하철 풍경을 유심히 본 적이 있는가. 붐비는 객차 안, 이어폰을 꽂고 스마트폰 화면에 몰입해 고개를 끄덕이는 4050 중년들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들의 작은 화면 속에서는 어김없이 '그'가 등장한다. 더부룩한 수염에 특유의 건들거리는 말투, 김어준 씨다.그 화면 속에서 김어준 씨와 패널들은 혀를 차며 말...
후원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