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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변칼럼] 신나는 숫자놀이 #1767
  • 김성훈 변호사
  • 등록 2025-08-01 12:19:03
  • 수정 2025-08-01 12:42:23

‘시계를 거꾸로 달아도 국방부 시간은 간다.’

군복무를 해 본 사람이라면 저 말에 담긴 절실한 마음을 공감할 것이다. 

‘군대는 제대가 있지만 사회는 그렇지 않다.’

제대 후 사회생활의 고단함에 빗대어 군생활을 위로하는 말이다.

두 표현 모두 어차피 시간은 간다는, 아무리 힘든 시간도 버티면 끝이 있다는 진리를 담고 있다.


훈련소를 마치고 자대에 갔을 때 앞이 막막했다. 집을 떠나 몇 년간 낯선 곳에서 살아야 한다는 현실을 받아 들이기 어려웠다. 하필 막사 공사 중인 부대에 배치되어 난민촌 같은 텐트에서 신병 생활을 시작했으니 정신적 피로도는 극에 달했다. 자대 배치 첫날부터 제대 날짜를 세어 봤다. 현실을 버틸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국방부 시계도 물리법칙을 거스르지는 못하겠지? 그날(제대)은 꼭 오겠지? 몇 번을 되뇌며 마음을 진정 시켰다.


군대가 어떤 곳인가? 산전수전 다 겪은 팔도사나이가 모인 곳이다. 신병의 머리 속은 유리병처럼 투명하다. 모두 그 과정을 거쳤으니까. 

내무반 천막에서 신병 신고를 하자 고참 한명이 묻는다.

“넌 제대가 며칠 남았냐?”

순진한 나는 씩씩하게 대답했다.

“네! 이병! 김성훈! 768일 남았습니다!”

이것이 고통스러운 신고식의 서막이었다. 

어디 신병이 제대날짜를 계산하냐는 것. 군기가 빠지니 잡생각이 많다는 것. 지금은 군대에 구타가 없다지만 당시는 그런 이유로 많이도 맞았다. 


돌이켜 보면 그 더딘 시간을 하루하루 손꼽다 보면 더 힘들었을 것 같다. 그냥 눈 앞에 주어진 일에 머리 비우고 몰두 하니까 어느덧 일병이 되고 상병을 거쳐(이때는 시간 잘 간다) 말년 병장이 되었다. 제대 날짜를 입 밖으로 꺼낼 수 있는 자리에 오른 것이다. 그런데 막상 병장이 되니 시간이 너무 느리게 흘렀다. 하루가 1년 같았다. 무엇보다 제대 하루 전 절차상 대기하는 시간은 너무도 지루했다. 참 시간이란 것이 요물이다.


요즘 내 일상은 마치 5년의 군생활 같다. 

날짜를 세어 보니 어느새 2달이 지났다. 처음 며칠은 너무도 길었는데 본업과 취미에 몰두하니까 그런대로 괜찮다. 한동안 뜸하던 사람들도 만나고, 출장 삼아 여기저기 다니기도 하고, 최근에는 군생활 떠올라 하지 않던 오지 캠핑도 했다. 흐르지 않을 것 같던 시간이 훌쩍 지나 있다.


카카오 프로필에 디데이를 설정해 놨다. 글을 쓰는 오늘(8월 1일)은 ‘D-1767’이다. 저 숫자는 내가 뭘하든 줄어든다. 내가 놀 때도, 잘 때도, 운동을 할 때도 그렇다. 내가 웃을 때도 줄어드는 저 숫자로 인해 누군가는 울상이 되어 갈 것이다. 저 시간의 의미는 그들과 완전한 반비례 관계다. 이 지점이 중요하다.


달려라 김변 (그래픽=가피우스)

앞서 시간이 우리 편이라는 내용의 칼럼을 썼다. 그 후로도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났다. 그래서 난 그때보다 더 행복하다. 어차피 흐르는 시간, 앞으로도 미소와 긍정적 마인드로 채우고자 한다. 시간의 흐름이 무거운 압박이 되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몫까지 합쳐 나는 이 시간을 두 배로 즐기려 한다. 


시계를 거꾸로 매달아도 시간은 간다. 지금은 제대 날짜를 계산해도 나에게 군기 잡을 사람도 없다.

무려 ‘국민주권 정부’의 주권자 놀이가 줄어드는 것은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그 놀이가 재미 있다고 제대를 미룰수는 없는 법이니까. 어차피 던져진 시간 누리고 즐길 궁리를 하면 어떨까. 


하루하루 OTP 비밀번호 같은 숫자가 생성된다. 어제와 오늘의 숫자가 다르고 내일도 다르다. 마치 그날의 고유번호처럼 부여된다. 오늘의 암호는 1767. 글이나 메일, 각종 법률문서에 암호처럼 적어 볼까. 내일 쓰는 글에는 1766, 그 다음날에는 1765. 훗날 내가 쓴 글에 적힌 숫자를 보면 정확히 언제 쓴 글인지 알 수 있으니 유용하기까지 하다. 숫자의 의미를 아는 사람들 사이에는 훌륭한 공감대 형성도구가 될 수도 있겠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심전심 오가는 마음은 또다른 위로가 될 수도 있겠다. 제목이나 해시태그에 잘 녹여 봐야겠다.


주의할 것이 있다. 저 숫자가 최대치란 사실이다. 예를들어 한 768일 남은 어느날, 갑자기 그 다음날 암호는 ‘767’이 아니라 ‘’60’이라거나 심지어 ‘제로(0)’가 될 수도 있다. 매일 주어지는 암호가 틀리면 안 되니까 잘 살펴야 한다. 우리로 인해 암호가 바뀔 수도 있지만, 오히려 압박감 느끼는 사람들이 실수를 하여 암호를 건너뛸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갑자기 제대하게 된다 해도 당황하지 말고 그때까지 여한 없이 놀아 보자. 이 시간을 즐기고 미소로 채우는 것이, 반비례 관계에 있는 그들에 대한 최고의 예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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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24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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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lsquf242025-08-09 13:14:49

    1767 => 오늘은 1759,
    희망이 있어 견딜 힘이 생겨나는
    날짜 숫자 카운트다운의 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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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8-04 02:55:25

    좀 알아듣게 써야지 이게 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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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8-03 11:27:42

    아 갑자기 기분이 좋아지고 힘이나네요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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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8-02 16:41:15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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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on6er2025-08-02 00:22:14

    생각보다 적게 남았을 것 같아요
    이재명이 잘 속일까봐 걱정했지만 환상은 깨지고 있다고 봅니다 단지 인정하는데 시간이 걸릴 뿐이죠
    갈수록 초조해지는 건 이재명일거예요 예전엔 윤석열이 당하는 걸 보면 신났겠지만 이젠 자신의 미래가 겹쳐 보일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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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8-01 22:01:44

    내일 갑자기 '0'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늘 하니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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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8-01 21:47:51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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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8-01 20:37:12

    김변님 글 잘 읽었습니다. 덕분에 조금 더 힘을 얻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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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ongggle2025-08-01 20:00:36

    김변님의 마인드 " 이시간을 즐기고 미소로 채우자" ㅎㅎㅎ 노력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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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8-01 16:34:18

    1767 혹은 60이든 0이든, 그 숫자가 지나간 자리에 그의 감방살이 무기한의 숫자가 새로 생성되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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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nte2025-08-01 15:57:25

    힐링되는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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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dongong2025-08-01 15:35:40

    좋은 글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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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8-01 15:07:26

    갑자기 숫자가 0이되는 그날을 상상해봅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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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ain7772025-08-01 14:38:12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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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8-01 14:21:41

    김변님 글을 언제나 읽기가 참 좋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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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8-01 14:20:15

    김변님 글 잘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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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8-01 13:07:45

    처음 김선님으로 착각해 엥 웬 군대생활???
    하고 다시보니 김변님이시네요.
    역시 글 잘 쓰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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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8-01 12:55:33

    김변님,글쓰기 교실 개설하시면 참여하렵니다. #1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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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nunej2025-08-01 12:45:23

    늘 쓰신 글 보며 한숨 돌립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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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8-01 12:42:49

    모야...  글이 참 멋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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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8-01 12:40:35

    관세로 머리가 띵 했는데 잠시 쉼터에 앉은 것 같은 위로를 주네요  좋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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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8-01 12:30:31

    1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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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8-01 12:30:21

    완전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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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uly2025-08-01 12:23:12

    김변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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