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증인 제로, 자료 맹탕, 인사청문의 뉴노멀
  • 박주현 칼럼니스트
  • 등록 2025-07-12 12:49:43
  • 수정 2025-08-05 04:08:04

  • 청문회 비공개 법안을 추진하는 민주당.

<그래픽 :박주현>


방탄의 진화: 개인에서 집단으로

문득 깨달았다. 방탄은 더 이상 개인용 갑옷이 아니었다. 뉴스에선 허영 민주당 원내정책수석부대표가 인사청문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는 속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방탄의 유전자는 변이했다. 더 넓은 숙주를 찾아, 집단 전체로 번지고 있었다. 청문회를 ‘공직윤리’와 ‘공직역량’으로 나누고, 도덕성 검증은 비공개로 돌리겠다는 이 아이디어. 겉으론 제도 개선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면역 체계 재정비였다.

때마침 강선우 후보자의 갑질 의혹, 이진숙 후보자의 논문 표절 문제가 불거지자 곧장 이 개정안이 나왔다. 의심을 품기에 충분한 타이밍이었다.


집권 전부터 계획된 이재명을 위한 갑옷은 중세 기사의 방어구처럼 조립되어 있었다. 투구는 언론을 가리고, 흉갑은 검찰을 튕겨내며, 각반은 법원의 칼날을 흘려보낸다. 하지만 개인만 안전한 갑옷에는 한계가 있다. 권력은 연결된 생태계니까.

문제는 장관 후보자들이었다. 강선우 후보자는 자료의 39%를, 정동영 후보자는 아예 0%를 제출했다. 청문위원들이 쏟아낸 자료 요청 목록 위에, 아무 것도 적히지 않은 빈 페이지만 남았다. 이제는 '증인 제로, 자료 맹탕'이 새로운 표준이 된 듯하다.

과거 민주당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자료를 안 내고 검증받기 싫으면 사인으로 살라.”
2014년 박근혜 정부 시절, 새누리당이 도덕성 검증을 비공개로 전환하려 했을 때, 민주당은 “자격 미달 인사를 들이려는 꼼수”라며 날을 세웠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진숙 후보자의 오탈자까지 똑같은 복사 논문에 대해 “문제는 없다”고 감싸고, “단 한 명도 낙마시키지 않겠다”는 방침이 공개됐다.
그 순간, 나는 들었다. 정치의 유전자가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소리를.

단순한 모순이 아니다. 이것은 권력의 본질이다. 이재명이 과거 “법 해석은 범죄자가 아니라 판검사가 한다”고 했던 말은, 이제 다른 의미로 들린다.

민주당은 자신들이 1955년의 유산을 잇는다고 말하지만, 권위주의 정권에 맞서던 그 시절의 얼굴은 점점 흐려지고 있다. 투명성과 책임을 외치던 이들이, 이제는 그 반대편에 서 있다.

하지만 단순한 타락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권력을 쥔 자가 처한 현실과, 야당이었을 때의 이상 사이엔 늘 긴장이 존재한다. 문제는 그 간극을 어떻게 해소하느냐다.

방탄은 전술이 아니라 체계가 되었다. 정치 면역의 완성형이다. 우리는 지금, 방탄의 집단화를 통해 권력 구조의 유전자 편집을 목격하고 있다.

허영 의원은 말했다. “지금의 청문회는 신상털기에 치중돼 있다.” 그 말, 틀린 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검증 자체를 감추는 것이 해답일까?

방탄의 진화는 계속된다. 개인에서 집단으로, 방어에서 공격으로, 예외에서 원칙으로. 그리고 그 끝엔, 완전한 면역과 영생을 꿈꾸는 어떤 정치 생명체가 기다리고 있다.

영원히 살 수 있는 괴물 같은 세포가 인간의 몸에도 있다. 그 세포의 이름은 ‘암’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 정치가 그 길로 들어서고 있는지도 모른다.


관련기사
TAG

프로필이미지

박주현 칼럼니스트 다른 기사 보기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로그인

댓글 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이 기사에 2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 프로필이미지
    won6er2025-07-13 08:47:36

    솔직히 지지자들도 다 알면서 지지하는 걸텐데 저렇게 앞뒤 안 가리고 방탄하면 무너지는 시간도 더 빨리 올거라고 생각해요
    근데 세력 싸움인건지 강선우는 그나마 맘놓고 욕하는 친명들이 많은것도 웃기네요
    다른 이들한텐 아무 말도 못하더니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07-12 16:02:52

    국힘. 언론. 다 죽었냐

    더보기
    • 삭제
아페리레
웰컴퓨터
많이 본 뉴스더보기
  1. [분석] 론스타 4천억 승소 역겨운 광팔이 민주당... 3년 전에는? 2025년 11월 19일한국 정치의 고질병인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식 태도가 13년을 끌어온 론스타 국제투자분쟁(ISDS) 승소 국면에서도 여지없이 반복되고 있다. 3년 전, 법무부가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할 당시 "이길 확률이 전무하다"며 결사반대했던 정치 세력이, 막상 '전부 승소'라는 극적인 결과가 나오자 정.
  2. 이낙연 "피고인 대통령 만들려 법치 짓밟아"... 공무원 사찰 '전체주의' 맹비난 새미래민주당 이낙연 상임고문이 15일 현 정부를 정면 비판했다. 그는 SNS를 통해 정부의 75만 공무원 감찰 시도를 '전체주의'에 빗대고, "민주주의 붕괴"를 경고했다.이 고문은 "한국 민주주의는 어디까지 허물어지려나"라고 반문하며 "피고인 대통령을 무죄로 만들려고 법치주의를 짓밟는 일은 이미 계속되고 있다"고 포문을 열었다."...
  3. 남욱 "내 재산 동결 안 풀면 고소"… 도둑의 오만은 법치의 죽음에서 자란다 검찰의 '항소 포기' 선언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대장동의 '키맨' 남욱이 입을 열었다. "동결된 자산을 풀어주지 않으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검토하겠다." 도둑이 되려 파수꾼에게 '내 몫을 빨리 내놓지 않으면 혼쭐을 내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그야말로 적반하장의 극치다.법치(法治)와 법을 이용한 통치....
  4. 썩어가는 것과 익어가는 것의 차이 가을 숲을 걷다 보면 바닥에 떨어진 낙엽들 사이로 오묘한 냄새가 난다. 개중에는 잘 마르고 발효되어 흙으로 돌아가는 그윽한 향기가 있는가 하면, 물기를 머금은 채 질척하게 썩어가는 쿰쿰한 악취도 있다. 인간의 나이 듦도 이와 다르지 않다. 시간은 공평하게 흐르지만, 그 시간이 인간이라는 그릇에 담길 때는 전혀 다른 화학 작용을 일.
  5. 민주당 '유동규 녹취록 속 대통령은 '윤석열'? 백광현 되치기 기자회견 17일 오전 백광현 씨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유동규와 남욱의 녹취록을 추가로 공개했다. 해당 녹취록에는 '이재명' 이름이 언급되어 있어 후폭풍이 예고된다. 이번 기자회견은 지난 12일 진행한 기자회견의 후속편으로,  (2023년 봄 녹음)된 것으로, 대장동 사건을 두고 두 피고인이 대화를 나누는 내용이 담겼다. 이 녹취록에서 ...
  6. 민주당을 향한 외통수 "대장동 환수법" 국가가 대장동 개발 비리 사건의 범죄 수익 환수를 공식적으로 포기한 상황에서 논란의 항소포기를 중심에서 처리한 박철우 검사는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영전했다. 박철우 검사를 서울중앙지검장에 앉힌 인사는 이 사태의 본질을 명확히 보여준다. 이것은 실패에 대한 문책이 아니라, 성공적인 임무 완수에 대한 포상에 가깝다. 검찰 조직을...
  7. 이낙연 "대장동 항소 포기는 국가 주도 범죄... 전체주의 망령 어른거려" 이낙연 "대장동 항소 포기는 국가 주도 범죄... 전체주의 망령 어른거려"대장동 항소 포기와 사법 시스템 붕괴 비판이낙연 새미래민주당 상임고문(전 국무총리)이 19일 유튜브 채널 '류병수의 강펀치'에 출연해 검찰의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사건 항소 포기를 "국가가 나서서 범죄자를 도와준 국가 주도 범죄"라고 규정하며 강하게 비판...
  8. YTN의 ‘자발적 복종’ 더불어민주당이 ‘국론 분열을 조장하는 중대한 국기문란 행위’라는 좌표를 찍자, YTN은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의 풍자 영상을 다룬 보도를 삭제하고 한 발더 나아가 ‘정치인 SNS 영상 사용 금지’라는 사실상의 백기를 들었다. 모든 일은 순식간에, 그리고 질서 정연하게 일어났다.'국기문란(國基紊亂)'. 유신 시대의 낡은 ...
  9. 탱크만 없는 계엄령, 그 거대한 수용소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23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교민들에게 "또 계엄하는 거 아닌가 걱정되실 텐데, 그런 일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좌중에서는 웃음이 터졌다고 한다. 그러나 서울에서 이 소식을 접한 국민들은 헛웃음조차 나오지 않는다. 국정 최고 책임자의 그 한가한 농담은, 지금 대한민국이 처한 절체절명의 위기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
  10. 프랑켄코리아 (Franken-Korea) 정치라는 무대 위에는 때때로 기이한 혼종(混種)이 등장한다. 완전히 새로운 존재가 아니라, 이미 사라졌다고 믿었던 과거의 망령들을 덕지덕지 기워 붙여 만든 프랑켄슈타인의 괴물 같은 것.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정권의 모습이 그러하다. 이들은 놀라울 만큼 창의성 없는 방식으로, 역대 정권들이 저질렀던 최악의 실수와 가장 추악했던 .
후원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