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외교관들 짐싸! - 외교도 정치논리로 하는 정부
  • 박주현 칼럼니스트
  • 등록 2025-07-01 20:26:41
  • 수정 2025-08-05 04:14:34

  • 정권 교체 때마다 반복되는 외교 공백의 역설.
  • 마라톤을 100미터 달리기로 착각한 우리의 외교.
  • 전문성보다 줄서기가 우선인 특임공관장 제도의 민낯

<사진 = 외교부 건물, 연합뉴스 자료사진>


갑자기 비게 될 대사관들


7월 1일 오후, 워싱턴 주재 한국대사관의 복도는 이상하게 조용했다. 미국, 일본, 러시아, 영국, 프랑스, 유엔까지. 이재명 정부는 주요국 대사들에게 2주 내 귀국 명령을 내렸다. 마치 체스 게임 중반에 자신의 중요한 말들을 스스로 빼버리는 기이한 광경이었다.


정권 교체의 관례라고? 그럴듯한 명분이다. 하지만 외교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도 열리기 전에 내려진 이 조치를 보면서, 나는 우리가 정말 외교를 하려는 건지 아니면 정치를 하려는 건지 헷갈렸다.

계엄으로 탄핵된 전 대통령이 임명한 공관장들이 계속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논리는 표면적으로는 그럴듯하다. 하지만 잠깐, 생각해보자. 우리는 지금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는가?


특임공관장 제도를 보면 답이 나온다. 현직 외교관이 아닌 인사를 대통령이 특별히 임명하는 이 시스템은 애초부터 정치적 논공행상의 놀이터였다. 최순실 국정농단 때 유재경 주미얀마 대사가 그랬고, 문재인 정부의 장경룡 주캐나다 대사 논란이 그랬다. 전문성? 그런 건 나중 문제다. 줄서기가 먼저고, 정치가 우선이다.


그래서 이번엔 뭘 얻었나? 새 정부의 의지를 보여줬다고? 그 대가는 너무 비싸다.


신임 대사가 정식으로 업무를 시작하려면 내부 인선부터 아그레망 절차, 신임장 제정까지 최소 몇 달이 걸린다. 미국만 해도 아그레망이 4-6주는 기본이다. 그동안 주요 공관들은 대사대리가 맡는다.


문제는 대사대리와 정식 대사의 차이가 생각보다 크다는 점이다. 정상외교나 고위급 협상에서 대사대리는 명백한 한계가 있다. 상대방도 안다. "어, 이 사람은 진짜 대사가 아니네." 미국의 전직 관리들이 "대사대리 체제의 장기화는 불행한 일"이라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상황은 더욱 기막히다. 윤석열 탄핵 이후 6개월간의 정치적 공백을 겪었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지만 외교부 장관도 아직 자리를 잡지 못했다. 이런 판에 주요국 대사들까지 일괄 교체하니 '이중 공백'이 벌어졌다. 수술대 위의 환자에게서 산소호흡기까지 뽑아버린 셈이다.


타이밍도 최악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협상이 기다리고 있다. 한미 방위비분담금 재협상도 마찬가지다. 북러가 점점 가까워지고, 한중일 관계는 여전히 복잡하다. 트럼프는 한국에 대해 늘 강경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상외교 공백은 자살골이다.


그런데 웃긴 건, 우리가 이런 일을 반복한다는 점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사들을 줄줄이 갈아치운다. 외교는 마라톤인데 우리는 계속 100미터 달리기를 하고 있다. 숨이 찰 수밖에 없다.


현재 국회에는 특임공관장 자격심사를 강화하는 외무공무원법 개정안이 발의되어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정말 필요한 건 외교의 전문성과 연속성을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다. 주요국 대사는 일정 기간 유임을 보장하거나, 최소한 신임 대사가 부임할 때까지는 업무를 지속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외교관은 정치인이 아니다. 국익을 위해서라면 정치적 색깔보다는 전문성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


결국 이번 사태는 우리 외교의 민낯을 보여주는 거울이다. 정권 교체 때마다 외교 라인을 송두리째 바꾸는 관행, 전문성보다 정치적 논리를 앞세우는 문화, 외교의 연속성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단기적 사고. 이런 게 반복되면 한국의 국제적 위상은 서서히 무너진다.


빈 대사관들을 보며 누군간 지금 웃고 있을 것이다. 우리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말이다. 외교는 국익을 위한 것이지 정치적 과시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누군가 좀 말해줄 수는 없을까.


TAG

프로필이미지

박주현 칼럼니스트 다른 기사 보기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로그인

댓글 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이 기사에 4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 프로필이미지
    minn19712025-07-02 07:23:29

    정치가 이나라 안팎에서 다 망치고 있네요. 정말 무늬만 선진국이네요.

  • 프로필이미지
    wiinp72025-07-02 00:49:26

    국익은 개나 주고, 전 정부의 모든 흔적을 지우려는 정치 후진국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07-02 00:39:45

    환장하겠네요.

    더보기
    • 삭제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07-01 21:38:43

    진짜 걱정됩니다

    더보기
    • 삭제
아페리레
웰컴퓨터
많이 본 뉴스더보기
  1. [분석] 론스타 4천억 승소 역겨운 광팔이 민주당... 3년 전에는? 2025년 11월 19일한국 정치의 고질병인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식 태도가 13년을 끌어온 론스타 국제투자분쟁(ISDS) 승소 국면에서도 여지없이 반복되고 있다. 3년 전, 법무부가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할 당시 "이길 확률이 전무하다"며 결사반대했던 정치 세력이, 막상 '전부 승소'라는 극적인 결과가 나오자 정.
  2. 이낙연 "피고인 대통령 만들려 법치 짓밟아"... 공무원 사찰 '전체주의' 맹비난 새미래민주당 이낙연 상임고문이 15일 현 정부를 정면 비판했다. 그는 SNS를 통해 정부의 75만 공무원 감찰 시도를 '전체주의'에 빗대고, "민주주의 붕괴"를 경고했다.이 고문은 "한국 민주주의는 어디까지 허물어지려나"라고 반문하며 "피고인 대통령을 무죄로 만들려고 법치주의를 짓밟는 일은 이미 계속되고 있다"고 포문을 열었다."...
  3. 남욱 "내 재산 동결 안 풀면 고소"… 도둑의 오만은 법치의 죽음에서 자란다 검찰의 '항소 포기' 선언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대장동의 '키맨' 남욱이 입을 열었다. "동결된 자산을 풀어주지 않으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검토하겠다." 도둑이 되려 파수꾼에게 '내 몫을 빨리 내놓지 않으면 혼쭐을 내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그야말로 적반하장의 극치다.법치(法治)와 법을 이용한 통치....
  4. 썩어가는 것과 익어가는 것의 차이 가을 숲을 걷다 보면 바닥에 떨어진 낙엽들 사이로 오묘한 냄새가 난다. 개중에는 잘 마르고 발효되어 흙으로 돌아가는 그윽한 향기가 있는가 하면, 물기를 머금은 채 질척하게 썩어가는 쿰쿰한 악취도 있다. 인간의 나이 듦도 이와 다르지 않다. 시간은 공평하게 흐르지만, 그 시간이 인간이라는 그릇에 담길 때는 전혀 다른 화학 작용을 일.
  5. 민주당 '유동규 녹취록 속 대통령은 '윤석열'? 백광현 되치기 기자회견 17일 오전 백광현 씨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유동규와 남욱의 녹취록을 추가로 공개했다. 해당 녹취록에는 '이재명' 이름이 언급되어 있어 후폭풍이 예고된다. 이번 기자회견은 지난 12일 진행한 기자회견의 후속편으로,  (2023년 봄 녹음)된 것으로, 대장동 사건을 두고 두 피고인이 대화를 나누는 내용이 담겼다. 이 녹취록에서 ...
  6. 민주당을 향한 외통수 "대장동 환수법" 국가가 대장동 개발 비리 사건의 범죄 수익 환수를 공식적으로 포기한 상황에서 논란의 항소포기를 중심에서 처리한 박철우 검사는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영전했다. 박철우 검사를 서울중앙지검장에 앉힌 인사는 이 사태의 본질을 명확히 보여준다. 이것은 실패에 대한 문책이 아니라, 성공적인 임무 완수에 대한 포상에 가깝다. 검찰 조직을...
  7. 이낙연 "대장동 항소 포기는 국가 주도 범죄... 전체주의 망령 어른거려" 이낙연 "대장동 항소 포기는 국가 주도 범죄... 전체주의 망령 어른거려"대장동 항소 포기와 사법 시스템 붕괴 비판이낙연 새미래민주당 상임고문(전 국무총리)이 19일 유튜브 채널 '류병수의 강펀치'에 출연해 검찰의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사건 항소 포기를 "국가가 나서서 범죄자를 도와준 국가 주도 범죄"라고 규정하며 강하게 비판...
  8. YTN의 ‘자발적 복종’ 더불어민주당이 ‘국론 분열을 조장하는 중대한 국기문란 행위’라는 좌표를 찍자, YTN은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의 풍자 영상을 다룬 보도를 삭제하고 한 발더 나아가 ‘정치인 SNS 영상 사용 금지’라는 사실상의 백기를 들었다. 모든 일은 순식간에, 그리고 질서 정연하게 일어났다.'국기문란(國基紊亂)'. 유신 시대의 낡은 ...
  9. 프랑켄코리아 (Franken-Korea) 정치라는 무대 위에는 때때로 기이한 혼종(混種)이 등장한다. 완전히 새로운 존재가 아니라, 이미 사라졌다고 믿었던 과거의 망령들을 덕지덕지 기워 붙여 만든 프랑켄슈타인의 괴물 같은 것.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정권의 모습이 그러하다. 이들은 놀라울 만큼 창의성 없는 방식으로, 역대 정권들이 저질렀던 최악의 실수와 가장 추악했던 .
  10. 탱크만 없는 계엄령, 그 거대한 수용소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23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교민들에게 "또 계엄하는 거 아닌가 걱정되실 텐데, 그런 일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좌중에서는 웃음이 터졌다고 한다. 그러나 서울에서 이 소식을 접한 국민들은 헛웃음조차 나오지 않는다. 국정 최고 책임자의 그 한가한 농담은, 지금 대한민국이 처한 절체절명의 위기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
후원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