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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이 말하는 것과 말하지 않는 것.
  • 박주현 칼럼니스트
  • 등록 2025-05-18 14:41:41
  • 수정 2025-08-05 04:29:00

  • 입으로 화를 부르는 연설과
  • 숫자나 근거를 대지 않는 공약들

▲< 그래픽 : 박주현 >


솔직히 매번 이재명의 공감능력 없음에 놀라지만, 사고능력도 의심이 간다. 어떻게 입만 벌리면 논란을 만드는 건지 그것도 재주라면 재주다. 대기업이 많치도 않은 광주에서 금호타이어 화재 현장 배경으로 유세를 진행하고, 지역발전 약속하는 게 정말 안 이상한가?

"오는 길에 화재 현장을 지나며 논란이 많았죠. 하지만 인명 피해가 크지 않아 진행합니다." 

공장 직원 한 명과 소방관 두 명이 부상을 입었다는 소식은 이미 SNS를 타고 퍼져 나간 뒤였다. 주변 아파트 주민 140여 명은 체육관으로 대피한 상태. 그들이 앉은 콘크리트 바닥은 차갑고, 공기 중엔 고약한 고무 탄 냄새가 스며들었다. 이재명은 그런 세부사항보다 김용남 전 의원의 깜짝 등장에 더 신경 썼다. "개혁당을 떠나 민주당에 합류합니다!" 그의 목소리는 확성기를 타고 광장을 울렸지만, 청중들의 얼굴엔 의문이 가득했다. 광주 시민들은 이 양가적인 장면을 바라보며 의문이 생기지 않았을까?. 5·18 기념행사 때문에 이미 도시에 머물러 있던 후보에게 이 불길은 '기회'일까, '위기'일까. 타이어 공장이 타는데 유세를 하면서 AI 산업 얘기라는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았을까??

"커피 원가는 120원입니다."

그후 군산 유세에서 내뱉은 말은 SNS를 타고 번졌다. 카페 주인들이 입술을 깨물었을 말이다. 원두값만 계산한 이 철지난 수학은 임대료, 인건비, 세금을 공기로 여겼다. 마치 2024년 봄, 어떤 대통령이 대파 한 단을 875원이라 말했을 때와 닮았다. 그땐 개딸들이 벌떼처럼 일어나"현실 감각 없다"고 외쳤지만 이번엔 맥락을 보란다. 정치적 색깔이 사리분별을 바꾼다. 커피숍 70%가 3년 내 문 닫는다. 원두값은 오르는데, 손님은 줄고 임대료는 치솟는다. 그들이 "폭리"라면 대기업은 뭐란 말인가. 정치인이 닭고기 원가를 말할 때, 그들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철학적 논쟁을 떠올린다. 현실은 닭도 달걀도 없는 빈 접시다.

자신의 공으로 가로채려던 계곡 정비 사업에 커피 원가 논란까지. 이렇게 많은 말을 뱉고 있지만 이런 말실수를 줄이려는 건지, 아니면 스스로도 감이 안 잡혀서인지 정작 이재명과 그의 공약에 빠져 버린 것도 있다. 바로 수치와 숫자다.


사람들은 약속에 숫자가 필요 없을 때 그것을 믿음이라 부른다. 하지만 정치에서는 다르다. 정치에서 숫자 없는 약속은 그저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마치 구체성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지워버린 듯하다. 재원 마련 계획, 실현 가능성을 판단할 수 있는 그 어떤 수치도 찾아볼 수 없다. 퍼즐에서 가장 중요한 조각들이 모두 사라진 셈이다.

부동산 정책만 봐도 그렇다.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에 대해 이재명은 침묵한다. 대신 정책위의장이 "과도한 이익은 사회 공공을 위해 환수되어야 한다"는 추상적인 말만 늘어놓는다. 마치 모호함이 미덕인 양. 더 놀라운 것은 "시행 후에 부담 정도를 판단해야 할 것"이라는 발언이다. 국민을 정책 실험의 실험체로 보는 듯한 발상. 1950년대 심리학자들이 인간 대상으로 윤리적 한계를 넘나들던 실험을 연상케 한다. 용적률 상향이나 신도시 재정비도 마찬가지다. 얼마나, 어떻게, 언제라는 세부사항은 온데간데없다. 마치 연극 무대에 배경만 있고 배우는 없는 것처럼.


더 아이러니한 것은 돈이 필요한 공약은 넘쳐난다는 점이다. 지역 화폐, 아동수당 18세 확대, 반려동물 지원, 천원 아침밥까지. 펼쳐놓은 선물 목록은 화려한데, 선물을 살 돈이 어디 있는지는 말하지 않는 산타클로스 같은 형국이다. 재원 마련에 대해 묻자 진성준은 당당하게 말한다. "재정 상황이 어려워서 큰 원칙과 방향만 제시했다"고. 마치 식당에서 주문은 했는데 지갑은 두고 왔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더 모순적인 것은 이 와중에 감세를 외친다는 점이다. 돈 쓸 구멍은 늘리고 돈 나올 구멍은 줄이겠다는 마법 같은 이야기.

왜 이런 전략을 쓰는 걸까? 정치권에서는 '전략적 모호성'이라 부른다. 구체적인 수치를 피함으로써 공격받을 포인트를 최소화하는 것. 마치 안개 속에서 싸우는 전사처럼, 자신의 윤곽을 드러내지 않는 전술이다.

이재명의 10대 대선 공약은 "세계를 선도하는 경제 강국", "모두가 잘 사는 나라" 같은 누구도 반대할 수 없는 추상적 표현으로 가득하다. 마치 모든 영화가 "행복한 결말"이라고만 광고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민주당의 이런 태도는 결국 한 가지를 의미한다. 그들은 이번 선거에서 무슨 말을 해도 이길 것이라 확신한다는 것. 또한 유권자들이 공약을 꼼꼼히 읽지 않을 것이라는 냉소적 계산도 깔려 있다.

슬프게도 많은 유권자들은 정말 그렇다. 구체적인 정책보다는 "누가 나에게 더 많은 돈을 줄 것인가"에만 관심이 있다. 마치 복권 당첨 확률만 따지는 사람들처럼. 그리고 "어차피 정치인들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는 냉소주의가 만연하다. 이는 플라톤이 경고했던 민주주의의 위험, 즉 대중영합주의의 현대적 형태라 할 수 있다. 숫자 없는 공약은 진정성과 실현 가능성이 없는 공약이다. 이재명은 이미 자신의 공약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없다고 고백한 셈이다. 마치 "여기 쓰여 있는 것 중 아무것도 진실이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역설적 문장과도 같다.

투표하러 가기 전, 잠시 멈춰 생각해보자. 우리는 정말 공허한 약속에 표를 던질 준비가 되어 있는가? 아니면 구체적인 계획과 책임감을 요구할 것인가? 민주주의의 가장 큰 아이러니는 결국 유권자가 원하는 만큼의 정치밖에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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