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칼럼] 복싱으로 벌은 5만원의 가치
  • 김남훈 기자
  • 등록 2025-03-01 20:04:57
  • 수정 2025-03-01 20:06:14



복싱 체육관에서 장학금을 받게 되었다.


선수부 출석률이 높은 사람에게 주는 것인데, 내가 3등이다. 상금은 5만 원 정도. 1위와 2위는 모두 코치진이다. 선수부에서 나는 가장 나이가 많다. 심지어 어떤 선수는 그의 부친이 나보다 어리다.


매일 아침, 체육관 문을 열고 들어가면 부지런한 최 코치가 노래를 흥얼거리며 청소를 하고 있었다. 그가 부동의 1위다. 그 옆엔 그의 직장동료 로봇 청소기가 지적질을 좋아하는 깐깐한 건물주 마냥 밑부분에 달린 브러시로 이곳 저곳의 오염물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이 두 존재의 수고 덕분에 정갈해진 체육관은 마치 이곳이 편안한 곳인양 착각을 안겨주기도 했다. 그러나 선수부가 모여 온 몸의 근육을 수축시키고 팽창시키다보면 이곳이 콜로세움에 올라가는 것을 목표로 한 곳이라는 것을 다시 자각 시켜주었다. 


땀 냄새가 아니다. 그것은 마치 오래된 싸움터에 남아 있는 흔적 같았다. 규정된 훈련시간은 50분. 그러나 실제로는 그보다 길었다. 마우스피스를 끼운 채 쉼 없이 섀도복싱을했다. 초반에는 몸이 가볍다. 그런데 점점 숨이 차오르고,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코치는 내 펀치가 약하다고 했다. 어깨에 힘을 빼라고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힘을 빼는 것이 무엇인지도 잊었다. 단순히 계속, 그리고 더 계속 주먹을 뻗었다.


그다음엔 감독님의 신호에 맞춰 헤비백을 두들겼다. 일정한 리듬으로 주먹을 내지르다 보면 어느 순간 머릿속이 멍해지면서 무아지경이 된다. 그런 순간이 온다면, 그것은 좋은 싸움을 할 수 있는 신호다. 하지만 나는 그 단계를 넘어 몸이 기계처럼 움직이는 느낌을 받았다. 주먹을 뻗을 때마다 어깨에서 팔로 이어지는 감각이 희미해졌다. 맞고, 때리고, 움직이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이 반복의 의미는 무엇일까. 싸움은 어디서부터 시작되고, 어디에서 끝나는 것일까.


그 후에는 미트 트레이닝과 드릴 연습. 팔이 무거워지고, 점점 감각이 둔해진다. 체육관 타이머가 멍하니 나를 내려다본다. 시간은 언제나 일정한 속도로 흐르는데, 내 시간은 여기에서 멈춰 있는 듯했다. 모든 움직임이 느려지고, 주변의 소음이 잦아들었다. 그 순간, 이 훈련이 단순한 근육 강화가 아니라 나 자신을 해부하는 과정처럼 느껴졌다. 내 몸은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가. 내 의지는 얼마나 단단한가. 그리고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다. 정규훈련이 끝나면 개인훈련이 이어졌다. 배밀기,스파이더워크,스쿼트 등 내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훈련들이다. 두 다리가 점점 무거워졌고, 몸이 공중에서 잠깐씩 멈추는 느낌이 들었다. 모든 것이 천천히 움직이는 것 같았다. 러시아 문학 속 주인공들처럼 내 몸이 무언가 거대한 운명과 싸우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타고난 재능을 가지고 운명의 흐름에 맞서기 위해. “내가 그런 존재일리 없지” 마우스 피스를 문 채 입 밖으로 마음 속 생각을 겉으로 꺼내버리고 말았다. 부끄럽다. 옆에 있는 강 관장이 들었을까 염려스러워 살짝 쳐다봤지만 데드 리프트를 하느라 못 들은 것 같다. 아니 어쩌면 못 들은 척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이 무의미한 듯한 반복을 계속해야만 했다.


폴라 심박계를 이용해 계측한 자료를 바탕으로 계산하면 2월 한 달간 태운 칼로리는 총 14,400에서 18,000 kcal 정도. 이는 마라톤 선수라면 약 221km에서 277km를 뛸 수 있는 에너지다. 풀코스 마라톤(42.195km)을 다섯 번 이상 완주할 수 있는 양이다. 만약 세단형 자동차였다면, 18km에서 22.5km를 달릴 수 있는 연료에 해당한다. 내 몸은 그만큼을 태우며 앞으로 나아갔다. 땀이 바닥에 떨어져 레테의 강을 만들었고 난 그 강을 건너며 과거를 잊었다. 


기분이 묘했다. 체육관 한편의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땀을 식히면서 생각했다. 노력은 인간을 배신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반드시 보상해 주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무언가를 쏟아붓고 나면, 몸이 남다른 방식으로 말해 준다. 그게 단순한 피로든, 만족이든, 혹은 배고픔이든 간에. 아마도 인간이란 존재는 원래 이렇게 만들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계속 싸우고, 계속 반복하고, 그러면서도 희미한 무언가를 좇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 말이다.


아직 장학금 5만 원은 받지 못했다. 아마도 카카오톡 이체로 받게 되겠지만, 가능하다면 현찰로 직접 받고 싶다. 도장 한가운데에서, 감독님의 손에서 건네받으며, 관원들의 박수를 받는 순간을 떠올려 본다. 땀과 노력이 돈이 되어 내 손에 쥐어지는 느낌을 제대로 만끽하고 싶다. 아마 손에 닿는 감촉이 낯설을 것이다. 


그 돈으로 피곤한 몸을 이끌고 편의점에 들러 삼각김밥과 단백질 음료를 살 생각이다. 딱 5만 원짜리 선수가 먹을 만한 점심일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삼각김밥의 밥알 하나하나가 내 노력의 무게만큼이나 실감 나게 느껴질 것이다. 목을 타고 넘어가는 단백질 음료는 그 어느 때보다 농도가 짙을 것이다. 잔돈으로 받게 될 4만 5천원 남짓은 하루 정도 묵혔다가 은행에 직접 가서 통장에 넣을 생각이다. 그리고 5천원을 다시 보태 유니세프 같은 자선단체에 기부하려고 한다. 내 땀이 나를 살리고 누군가를 돕는다. 잠깐 이나마 위대한 존재가 될 것이다.


프로레슬러이자 프로복서 지망생 김남훈



프로필이미지

김남훈 기자 다른 기사 보기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로그인

댓글 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이 기사에 1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 프로필이미지
    herbteap2025-03-02 19:31:01

    장학금 축하드립니다! 열심히 사시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습니다.

아페리레
웰컴퓨터
많이 본 뉴스더보기
  1. 미국이 대신 싸워주는 대한민국의 '언론 자유' 새해 벽두부터 한미 관계에 경고등이 켜졌다. 미국 국무부가 한국의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통과에 대해 “중대한 우려”를 표명했고, 예정됐던 한미 FTA 회의는 돌연 취소됐다. 미국이 타국의 국내법에 이토록 즉각적이고 강경하게 반응하는 건 이례적이다.이유는 명확하다. 이 법이 겉으로는 ‘가짜 뉴스 근절’을 내...
  2. 진실게임 격화.... 쿠팡, "국정원 직원 3명 만나…강에서 증거 건지라 말해" 쿠팡은 최근 발표한 개인정보유출의 자체 조사 결과와 발표해 국가정보원의 협조에 따른 것이라고 31일 거듭 주장했다.이재걸 쿠팡 법무 담당 부사장은 이날 국회 청문회에서 '국정원이 일방적으로 용의자를 접촉하라고 지시했느냐'는 최민희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의 질의에 "(국정원이) 12월 1일 처음 공문을 보내고, '국가..
  3. "이재명에게 보고됐다" 김현지의 음성, 그리고 피의자에게 돌아간 탄원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지난 총선을 앞두고 구의원들로부터 공천 대가성 금품을 수수했다는 의혹이 당시 이재명 당 대표실에 보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직적으로 은폐되었다는 정황이 담긴 녹음 파일이 확인됐다. 이수진 전 의원은 5일 조선일보와의 단독 인터뷰를 통해 김현지 당시 대통령실 제1부속실장(당시 보좌관)과의 통화 내...
  4. 전두환이 무덤에서 기립박수 칠 '민주당의 독재론' 2026년 새해 벽두, 여의도에서 귀를 의심케 하는 말이 들려왔다. 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국민은 돈만 벌게 해주면 독재도 환영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농담이 아니었다. 진심이었다.이 말을 듣는 순간, 연희동 어딘가에서 기립박수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다. 그가 살아서 이 말을 들었다면 무릎을 치며 반겼을...
  5. [칼럼] 오죽했으면 노조가 나서서 "대형마트 규제 풀어달라" 외칠까 오죽했으면 노조가 나서서 "대형마트 규제 풀어달라" 외칠까정치인들에게 '반(反)기업 정서'만큼 달콤한 마약은 없다. 거대하고 탐욕스러워 보이는 '공룡(대기업)'을 사냥하여 마을 사람들(소상공인)에게 고기를 나눠주겠다는 서사는 얼마나 매혹적인가. 지지자들에게는 정의 구현이라는 '도파민'을, 정치인에게는 표심이..
  6. [칼럼] 대통령의 자격 국가 지도자의 자격은 어디서 오는가. 헌법과 법률이 정한 권한 이전에, ‘우리가 누구이고, 적이 누구인가’를 구분하는 명징한 인식에서 온다. 그런데 2026년 대한민국, 국군 통수권자의 입에서 그 인식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발언이 나왔다.“우리가 북한에 대해 군사적 공격 행위를 해서 그들이 불안해했을 것이다.”귀를 의심...
  7. [종합]이혜훈 '갑질'에 민주당 '폭발'… 사퇴론 들불처럼 이재명 정부가 '국민 통합'과 '경제 전문성'을 명분으로 내세운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 지명이 거센 역풍을 맞고 있다. 후보자의 과거 '12·3 내란' 옹호 전력에 이어 인턴 직원을 향한 충격적인 폭언 녹취가 공개되면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조차 "선을 넘었다"는 비토론이 쇄도하고 있다. "너 아이큐 ..
  8. 새미래민주당, 정당 최초 웹드라마 <강소의 기적, 새민상사> 제작 발표 새미래민주당(새민주)은 8일(목) 국회 소통관에서, 정당사 최초 정치풍자 웹드라마  제작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당일 오후 2시30분에는 서대문구에 위치한 소극장 '필름포럼'에서 시즌1을 공개하는 시사회도 예정되어 있다.웹드라마에서 '새민상사 대표'로 분한 새미래민주당 전병헌 대표는 이번 시도를 "대한민국 ...
  9. [전병헌 기고] ‘셰셰 외교’의 함정 : 전략적 모호성인가, 전략적 굴종인가 정부는 ‘하나의 중국 존중’ 발언과 ‘적대적 두 국가론’ 수용 의혹에 대해 명확히 입장을 밝혀야 한다.이재명 정부의 외교 노선이 위험 수위를 넘나들고 있다.후보 시절부터 논란을 자초한 “중국에는 셰셰, 미국에는 땡큐”라는 이른바 ‘셰셰 외교’가 단순한 말장난을 넘어, 이제는 국정 운영의 실질 기조로 ..
  10. 김병기, 앞에선 "尹정권 경찰 장악" 비난, 뒤론 윤핵관 찾아가 읍소 김병기 의원이, 정작 자신의 가족 비리 앞에서는 그토록 비난하던 '윤핵관'에게 읍소해 수사를 무마하려 했다는 충격적인 정황이 드러났다.낮에는 "검찰 독재, 경찰 장악 저지"를 외치며 투사를 연기하고, 밤에는 정권 실세와 '짬짜미'를 벌여 법망을 피해 나간 전형적인 '내로남불'이자 대국민 사기극이라는 비판이 나...
후원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