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사법 역사상 가장 기이하고도 긴 400여 일의 내란 재판 1심이 막을 내렸다. 지난 1월 13일 자정을 넘긴 시각,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 사형과 무기징역이 구형된 엄혹한 순간에 지귀연 재판장은 뜻밖의 말을 꺼냈다.
"변호인들께서 협조해 주시지 않았으면 신속한 재판이 어려웠을 것입니다. 인권 보장과 적법 절차를 위해 프로다운 모습을 보여주신 점, 경의를 표합니다."
이 발언을 전해 들은 방청객과 국민들은 귀를 의심했다. 이것은 관용인가, 아니면 지독한 반어법인가? 소위 보수 유튜버들은 지귀연이 무죄라도 줄 복선인양 말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일주일간 목격한 법정의 풍경은 '신속'이나 '프로'라는 단어와는 대척점에 있었다.
이 재판의 막판은 그야말로 촌극이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측 변호인단은 소위 '침대 변론'으로 일관했다. 결심 공판 당일에는 서증 조사에만 8시간을 썼다. "혀가 짧아 빨리 읽을 수 없다"는 희대의 궤변으로 시간을 끌며 재판부를 조롱했다.
여기서 놀라운 건 불과 며칠 전, 지귀연 판사가 그들을 향해 "징징대지 말라"며 호통쳤던 바로 그 장면이다.
그런데 재판의 문을 닫는 순간, 재판장은 돌연 태도를 바꿔 그들에게 찬사를 보냈다. 이 모순적인 상황을 단순히 판사의 '좋은 성품'으로 해석한다면 오산이다. 지귀연 판사의 이 '립서비스'는 변호인단의 입을 꿰매고 발을 묶기 위한 능수능란한 전략으로 보는게 자연스럽다.
친절한 지귀연 (AI 생성 이미지 - 가피우스)
'절차적 시비'를 원천 봉쇄
내란 재판은 향후 2심과 3심으로 이어질 법리 전쟁의 서막이다. 피고인 측이 1심 결과에 불복할 때 가장 먼저 꺼낼 카드는 '방어권 침해'다. "시간에 쫓겨 충분히 변론하지 못했다", "재판부가 강압적이었다"는 주장이 나올 것이 뻔하다.
지 판사는 이 퇴로를 차단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재판장이 공판 조서에 "당신들은 완벽하게 변론했고, 우리는 충분히 존중했다"고 기록해버린 이상, 변호인단은 항소심에서 "1심이 불공정했다"고 주장할 명분을 상실한다. 재판장이 인정한 '성실한 변론'을 스스로 부정해야 하는 자기모순에 빠지기 때문이다. 즉, 지 판사의 칭찬은 훗날 피고인들이 제기할 절차적 정당성 시비를 막아내는 방패가 된 셈이다.
어쩌면 지귀연 판사는 이전 재판에서 "프로답지 못하다"거나 "징징거린다" 질타한 후, 피고인 측이 이를 명분삼아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며 법정 밖의 여론전을 벌일 것이라 예감 했을지 모른다. 결심공판의 '립서비스'는 이에 대한 치유를 위한 것이라고 보는게 옳다.
선고 기일까지의 '인질극'을 방지하기 위한 안전장치
재판부는 선고 기일을 2월 19일로 못 박았다. 한 달이 넘는 시간이다. 이 기간 동안 희망이 없는 피고인 측이 재판부 기피 신청을 내거나, 선고 당일 불출석하며 재판을 파행으로 몰고 갈 가능성이 존재한다.
지 판사는 마지막 순간에 그들의 자존심도 세워주며, 선고에 대해 일말의 희망도 주기 위해 이러한 립서비스를 했을 지 모른다.
'중형 선고'의 전조
법조계에는 '벨벳 장갑 안의 철권'(iron fist in a velvet glove)이라는 말이 있다. 가장 가혹한 판결을 내리기 전, 판사는 피고인에게 가장 부드러운 태도를 보인다. 사형이나 무기징역 같은 극형을 선고하려면, 절차적 흠결이 티끌만큼도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귀연 판사는 변호인단의 '침대 변론'과 '필리버스터'를 다 받아줬다. 그리고 "수고했다"고 격려까지 했다. 이제 윤석열과 그 수하들에게는 '변명할 기회가 없었다'는 변명이 통하지 않게 되었다. 재판부는 할 도리를 다했다. 남은 것은 오직 '헌법과 법률, 증거'에 따른 선고뿐이다.
결국, 지귀연 판사의 마지막 "감사합니다"는 피고인들을 향한 구원의 메시지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변호인단은 재판장의 칭찬에 잠시 우쭐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웃음기는 선고 당일, 판결문이 낭독되는 순간 얼어붙을 것이다. 친절한 재판장이 건넨 그 칭찬이, 사실은 자신들을 꼼짝 없이 옥죄는 올가미였음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윤갑희 기자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사에 5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특감의 막판 100장에서 250장으로 공소장변경, 그걸 받아준게 지귀연 재판장, 따라서 충분한 방어권을 보장해줬다는 의도는 막판에 무너졌음
친절한 귀연 씨 ㅋㅋㅋㅋ
일반 국민들은 이해하지 못했을 복선에 대한 자세한 설명 굿입니다
믿보가피
2월19일 D-100일... 유죄 나면 고성국네는 좀 찌그러 질까요? 아니면 더욱더 가열차게 악다구니 치나요?
숨겨진 신호, 재판을 읽는 선구안에 무릎팍을 탁 칩니다.
국가 수반으로 자신과 국정 파트너들의 운명을
지하세계에 매장시킨 윤이 가련하기까지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