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가 ‘민생 안정’과 ‘국민 통합’을 내걸고 특별사면을 발표했을 때, 광장의 시민들은 별다른 기대를 품지 않았다. 먹고사는 일의 지난함 앞에서, 정치인들의 사면 잔치가 내 삶을 바꿔줄 리 없다는 체념이란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체념조차 사치였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단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베일이 벗겨진 사면 명단은 단순한 실망을 넘어, 성실하게 법을 지키며 살아온 모든 시민의 삶을 정면으로 모욕하는, 한 편의 역겨운 블랙 코미디였기 때문이다.
어느 날 당신의 아버지가, 고된 노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누군가에게 멱살을 잡혔다고 상상해보자. 당신은 어디로 달려가겠는가. 의심의 여지 없이, 법이었을 것이다. 이 나라의 시스템이 힘없는 개인을 보호해주리라는 믿음. 이용구 전 차관에게 폭행당했던 그 택시기사 역시 그것 하나 붙들고 억울함을 호소했을 것이다. 그러나 2025년 8월 15일, 대한민국은 바로 그 평범한 가장의 남은 믿음에, 국가의 이름으로 침을 뱉었다.
정부가 말하는 ‘민생’의 얼굴을 똑똑히 보라. 자녀의 표창장을 위조하고 대리시험까지 동원해 입시 시스템을 파괴한 조국 전 장관이 있다. 청년들의 절망과 박탈감을 먹고 자란 그의 범죄가, 대체 이 땅의 어떤 ‘민생’을 살린다는 말인가. 그의 사면은 ‘희망 사다리’를 걷어차 버리고, 이 땅의 청년들의 이마에 ‘너희의 노력은 부질없다’는 공식적인 낙인을 찍는 행위다. 이것이 당신들이 말하는 민생인가.
‘통합’의 실체는 더욱 기가 막힌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피눈물 섞인 후원금을 개인 계좌로 빼돌려 안락의자나 사고, 갈비집에서 흥청망청 쓴 윤미향 전 의원이 버젓이 이름을 올렸다. 심지어 그날은 광복절이다. 피해 할머니들의 상처와 국민적 공분을 하나로 모아도 모자랄 판에, 그 상처에 소금을 뿌리고 국민을 둘로 갈라놓는 인물을 사면하는 것이 대체 어떤 종류의 ‘국민 통합’인가. 대체 어떤 통합이 이 폐허 위에서 가능하단 말인가.
그래픽 : 박주현 사면의 이름으로 단행된 후불 민원 처리
어디 그뿐인가. 자신의 비리 수사를 무마하려 담당 경찰관의 부정한 청탁을 들어준 ‘뇌물수수범’, 이재명의 성남시를 이어받았던 은수미 전 시장도 사면됐다. 깨끗해야 할 공직을 더럽힌 뇌물죄가 민생과 무슨 상관이며, 법치를 무너뜨린 행위가 어떻게 국민 통합에 기여한단 말인가. 성실하게 일하는 서민의 멱살을 움켜쥔 자를 풀어주는 것, 이것을 ‘민생 안정’이라 부르기로 그들은 합의한 모양이다.
이번 사면은 구색 맞추기용으로 야당 인사를 몇몇 포함시키는 교활함까지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정치적 균형이 아니라, “우리도 풀어주니 너희도 입 다물라”는 추악한 담합의 신호에 불과하다. 결국 그들, 정치인이라는 신귀족 특권 계급은 자기 동료의 범죄 앞에서는 여야 없이 한통속이 된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했다.
입시비리, 후원금 횡령, 뇌물수수, 갑질 폭행. 이 더러운 죄목들이 오늘 우리에게 묻고 있다. 이것이 과연 민생을 위한 사면이냐고. 이것이 국민을 하나로 만드는 통합이냐고. 아니다. 이것은 ‘그들만의 민생’을 위한 ‘그들만의 통합’일 뿐이다. 법치의 시신(屍身) 위에서 벌이는 이 파렴치한 연회를 걷어치우지 않는다면, ‘민생’이라는 단어는 앞으로 조롱과 혐오의 다른 이름이 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