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 위에서 받은 '종합검진' 리포트>
2월 14일이었다. 달력 위에는 연인들의 명절인 발렌타인데이와 조상에게 절을 올리는 설 연휴가 겹쳐 있었다. 세상은 달콤한 초콜릿의 향기와 눅진한 떡국 냄새 사이에서 서성였다. 그 소란스러운 명절의 한복판에서 나는 고양시 복싱 대회장 링 위에 서 있었다. 내 나이 쉰을 넘었다. 무제한급 출전자 중 가장 늙은 사내였다.
붉은색 경기복이 김남훈
30번째 경기. 링 바닥은 차고 단단했다. 캔버스 천은 앞선 경기자들이 흘린 땀과 열기로 눅눅했다. 나는 지난 대회에서 1회 기권승을 거두고 MVP를 손에 쥐었던 기억을 근육 속에 갈무리하고 있었다. 몸은 기억의 힘으로 팽팽해졌고, 승리의 예감은 독한 소주처럼 뇌를 자극했다. 그러나 링은 기억으로 싸우는 곳이 아니다. 링은 오직 현재의 물리적인 충돌만을 정직하게 기록하는 사각의 도마였다.
공이 울렸다. 첫 충돌은 둔탁했다. 주먹과 주먹이 맞부딪칠 때마다 뼈의 진동이 어깨를 타고 척추로 스며들었다. 압박이 먹혔다. 나는 상대를 세 번이나 코너로 몰아넣었다. 밧줄의 탄성이 내 등을 밀어냈고, 상대의 눈동자에는 당혹감이 어렸다. 그때 나는 흥분했다.
왼손 바디 어퍼 더블이 상대의 옆구리에 깊게 박혔다. 타격감은 선명했다. 거기서 멈추고 숨을 골랐어야 했다. 침착하게 다음 수를 풀어냈어야 했다. 그러나 내 몸 속에 숨어 있던 짐승이 고개를 들었다. 나는 난타전을 선택했다. 그것은 전략이 아니라 광기였다. 스스로 에너지를 갉아먹는 줄도 모르고 주먹을 휘둘렀다. 페라리 푸로산게는 12기통의 엔진을 품고 있다. 그 맹렬한 심장은 노면을 찢는 힘을 내뿜지만, 연료 게이지를 살피지 않으면 엔진은 금세 부조화를 일으키며 멈춰 선다. 1라운드의 마지막 10초, 그 짧은 시간 동안이라도 숨을 돌렸더라면 엔진은 다시 돌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연료를 모두 허공에 뿌려버렸다. 패배는 그렇게 왔다.
결과는 판정패였다. 심판이 상대의 손을 들어 올릴 때, 내 가슴은 찢어질 듯한 공기로 가득 찼다. 분했다. 중학교 시절 짝사랑하던 여학생의 뒷모습을 바라볼 때처럼, 놓쳐버린 승리는 아득하고 시렸다. 작년 박스원 킨텍스 개관 기념 체력 검증에서 20여 명 중 1위를 차지했던 기록은 종잇조각처럼 가벼워졌다.
시합은 '종합검진'과 같다. 링은 내 몸 구석구석을 스캔하고, 내 안의 오만이라는 용종과 게으름이라는 염증을 가차 없이 드러낸다. 판정패라는 리포트는 내게 말한다. "너는 아직 멀었다"라고.
계체량을 하던 진행요원은 내 이름을 알고 있었다. 지난 대회의 움직임이 인상적이었다며 인사를 건넸다. 경기장을 떠나 짐백을 들고 주차장으로 향할 때, 낯선 여성이 다가와 "경기 너무 잘 봤어요"라며 웃어주었다. 그 한마디가 패배로 얼룩진 땀방울을 씻어내렸다.
나는 프로 파이터가 아니다. 이 패배로 생계가 끊기거나 지구의 자전축이 휘어지지는 않는다. 인생의 항로가 아주 잠시 강풍에 흔들렸을 뿐, 배는 침몰하지 않았다. 내게는 박스원의 든든한 동료들이 있고, 내가 다시 링에 오를 이유를 묻지 않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단점을 알았으니 보완하면 그만이다. 무릎이 비명을 지르고 어깨가 삐걱거려도, 나는 다시 훈련을 시작할 것이다.
2월 14일, 나는 링 위에서 가장 값진 세뱃돈을 받았다. 그것은 '겸손'이라는 이름의 매질이었고, '다시 시작하라'는 육체의 명령이였다.
김남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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