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당정협의회 (서울=연합뉴스)
숫자를 보고 내 눈을 의심했다. ‘10명’. 오타가 아니다. 민주당과 정부가 대한민국 물류 판을 뒤흔들고 수만 명 배송 기사의 생계를 결정짓는 정책의 근거로 삼은 표본 수다. 야간 택배 기사 10명의 혈압과 심박수를 재보고 내린 결론이 “새벽 배송은 주 40시간만 하라”는 것이다. 초등학교 방학 숙제인 탐구생활도 이보다는 표본이 많겠다.
이 빈약하기 짝이 없는 종이 한 장을 들고 시장을 난도질하려 든다. 뼈가 부러진 환자에게 “숨 쉴 때마다 아프니 숨을 쉬지 마라”고 처방하는 돌팔이 의사와 다를 게 뭔가. 이것은 정책이 아니라, 통계의 탈을 쓴 ‘주술(呪術)’이다.
냉정하게 보자. 기사들이 새벽이슬 맞으며 남들 잘 때 무거운 상자를 나르는 이유가 무엇인가. 불면증 치료나 취미 생활이 아니다. ‘돈’이다. 한 푼이라도 더 벌어 가족을 부양하려는 치열한 생존 본능이다. 그런데 배부른 정치인과 귀족 노조 수뇌부는 책상에 앉아 이걸 ‘착취’라고 규정하고, ‘강제 휴식’이라는 족쇄를 채우려 든다.
“40시간 일했으니 강제로 쉬어라. 단, 반토막 난 월급은 네 사정이다.”
이게 그들이 말하는 ‘사회적 합의’의 실체다. 소득이 줄어든 가장이 정부가 쉬라고 한다고 집에서 발 뻗고 잘 것 같은가. 천만의 말씀이다. 그들은 당장 부족한 생활비를 메우려 대리운전 앱을 켜거나, 다른 물류센터로 뛰어가 ‘투잡’, ‘쓰리잡’을 뛸 것이다.
익숙한 트럭에서 일하는 것보다, 낯선 현장을 전전하는 게 피로도는 더 쌓이고 사고 위험은 폭증한다. 정부는 기사의 건강을 지킨다고 생색내겠지만, 실제로는 그들을 더 위험한 사지(死地)로 내몰고 있다. 보호가 아니라 ‘킬링 케어(Killing Care)’다.
노조 수뇌부와 여의도 금배지들의 현장 감각은 업데이트가 안 된 ‘윈도우 95’ 수준이다. 그들은 노동자가 ‘명분’만 있으면 밥을 굶어도 되는 줄 안다. 만약 투잡을 뛰다 과로로 쓰러지면? 원래 일하던 회사는 “우린 법대로 40시간만 시켰으니 책임 없다”며 오리발을 내밀 것이다. 죽어라 일하고 싶은 사람 손발은 묶어놓고, 사고 나면 아무도 책임 안 지는 이 기막힌 구조를 그들은 ‘인권’이라 부른다.
결말은 뻔하다. 택배사는 인력 충원 비용을 핑계로 택배비를 올릴 것이고, 그 청구서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날아온다. 기사들은 소득이 줄어 거리로 나앉고, 국민은 비싼 배송비를 문다.
고작 10명을 데리고 소꿉장난한 연구 결과로 시장을 셧다운 시키고 수만 명의 밥그릇을 걷어차는 무책임. 당신들이 강제로 멈춰 세운 그 새벽 트럭 짐칸에, 누군가의 생존이 실려 있다는 사실은 안 보이는 모양이다. 선의(善意)로 포장된 무식만큼 무서운 흉기는 없다.
음원서비스에서 낙원전파사를 만나보세요
박주현 칼럼니스트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사에 3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와.. 말이 안 나오네요
기가 막힙니다.
모든게 비정상적인것 같아 정말 짜증나요